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윤창원 기자20일 국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안이 표결에 부쳐지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 당초 부결 기류가 강했지만 친이재명계를 중심으로 지방선거를 고려해 인준해줘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한 후보자가 국회에서 인준을 받는 게 최선이지만, 설령 받아내지 못하더라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쁠 게 없다는 반응이다. 다만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거취와 이에 대한 민심 악화에 대한 우려는 만만찮은 과제다.
"尹 독선 견제해야" vs "선거 망한다"…내부 회의서 '팽팽'
여야는 20일 오후 4시 본회의를 열고 한 후보자에 대한 인준 표결을 진행한다. 총리 인준에는 국회 과반 출석과 과반 찬성이 필요해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한 후보자를 통과시켜줄지 여부를 두고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도부는 전날 저녁까지 내부 회의를 통해 인준 여부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이날 본격적으로 의원총회를 열기 앞서 한 차례 교통정리를 한 것이다.
회의에서 부결 의견을 피력했다는 한 초선 의원은 "후보자 면면을 볼때 공직자로서 자격이 부족하다고 본다"며 "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각종 논란을 볼 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강병원 의원은 부결 표를 던져달라고 동료 의원들에게 친전을 돌리기도 했다. 강 의원은 "한 후보자를 인준하면 대통령의 독주에 어떤 쓴소리도 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총리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불 보듯 뻔하다"며 "부적격을 주장해온 우리 스스로 인사청문회는 무의미한 절차라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박홍근 원내대표도 전날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지나친 욕심으로 협치와 신뢰의 버스는 이미 떠났다"며 "민주당은 국민 눈높이에 맞게 (한덕수 후보자의) 임명 문제를 매듭짓겠다"라고 못박았다.
이같은 부결 의견은 지난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임명 강행으로 정면돌파에 나서면서 한층 더 강해졌다. 대통령실은 한 후보자 인준 전까지 자진사퇴 여론이 높은 정호영 후보자 거취 결정도 보류하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정권 초기부터 야당을 상대로 정면돌파에 나서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중이다. 민주당은 한 장관 임명 강행에 이어 정 후보자 카드까지 꼭 쥐고 있는 상황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그럼에도 한 후보자 인준을 해줘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당초 파편적으로 나오는 수준이었지만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이 직접 입을 떼면서 빠르게 구심점이 잡혔다. 이 위원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가) 첫 출발하는, 새로운 진영을 준비하는 단계라는 점도 조금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 국회사진취재단전날 내부 회의에서 인준 찬성 의견을 냈다는 한 의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발목잡기라고 공세를 펴면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며 "한 후보자가 못마땅한 점이 있지만 윤 대통령의 부족한 인재풀에서 어떤 차기 총리 후보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전까지 부결을 주장했다.
우상호 의원은 BBS라디오 인터뷰에서 "당 의원총회 결의로 정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그 요구에 대한 대통령실의 반응을 본 후에 표결 일시를 결정해도 된다"며 중재안을 내놓기도 했다.
공교롭게 박 원내대표와 이 위원장의 의견이 대립하는 모양새가 취해지면서 내부에서는 난감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대립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개인 의견이 갈린 것일 뿐"이라면서도 "당이 여러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있는데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해 상당히 유감스럽다"고 전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서 어떻게 의견이 정리될지 주목된다. 민주당은 오후 2시 의원총회를 열고 총의를 모은 뒤 4시에 인준 표결에 들어갈 계획이다.
당내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의원총회에서 인준 여부가 당론으로 채택되는지도 관전 포인트다. 총리 인선 표결은 익명으로 실시되기 때문에 당론으로 못 박지 않을 경우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결과가 나오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긋한 국민의힘…"통과되면 고맙고, 안 통과돼도 고맙다"
표결을 앞둔 국민의힘의 표정은 다소 느긋하다. 민주당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의 '신중론' 등으로 민주당 내 부결 기세가 최근 들어 다소 꺾였다는 점은 통과 희망을 키우고 있고, 만일 부결되더라도 '발목 잡기' 프레임을 걸어놨다는 점에서 여론에 나쁠 게 없다는 판단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상임선대위원장(왼쪽)과 권성동 공동선대위원장이 19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후보자 사무실에서 열린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인천 현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한 후보자를 인준해주면 고맙지만, 안 해줘도 솔직히 고마운 일"이라며 "우리로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을 몰아세울 기회 아니냐. 박홍근 원내대표 등 민주당 측이 한 수 너머를 내다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당 정권의 사람이었던 한 후보자를 택한 것 자체가 협치를 고려한 것이었는데, 민주당이 한 후보자 인준안을 부결시킬 경우 협치를 거부하는 발목잡기로 귀결돼 국민의힘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다는 설명이다.
당내 또 다른 의원 역시 "부결된다면 우리는 민주당이 정권 출범 초창기에 발목 잡기, 힘 자랑을 한다고 국민에게 호소할 텐데, 그들이 맘대로 강행할 수 있겠냐"라며 "민주당은 결국 부결을 당론으로 정하지 못하고 자유투표를 선택하는 형태로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만약 실제 이렇게 한 후보자에 대한 인준이 이뤄진다면 국민의힘 입장에선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거취 문제가 다시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우리로서는 당연히 한 후보자가 인준되는 게 최선"이라면서도 "만약 인준이 된다면 정 후보자를 두고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은 고민"이라고 말했다.
한 후보자가 인준됐는데도 만일 정 후보자가 자진 사퇴나 윤 대통령의 지명 철회 없이 임명 수순을 밟는다면 정 후보자에 대한 부정 여론을 고려했을 때 또 다른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당이 인준안 통과를 통해 지선을 앞두고 갑자기 '협치'로 전환한다면 우리로선 머리가 아플 수 있다"며 "차라리 먼저 정 후보자의 거취에 대한 결단을 내린 뒤에 민주당의 결정을 보는 게 모양새가 훨씬 나았을 텐데, 아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