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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모순과 환상에 빠진 북핵 접근법

기자수첩

    [뒤끝작렬]모순과 환상에 빠진 북핵 접근법

    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진과 토니의 북핵 백일몽에 부쳐

    박진 외교부장관(좌)이 13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 청사에서 토니 블링컨 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박진 외교부장관(좌)이 13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 청사에서 토니 블링컨 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어제 블링컨 장관과는 첫 만남이었지만 마치 오래된 사이처럼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격 없는 대화를 진행했습니다. 2시간 반 동안 다양한 사안에 대해 심도 있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서로 퍼스트 네임(이름)을 부르며 '진-토니' 관계를 다졌습니다."
     
    워싱턴DC를 방문중인 박진 외교부장관이 14일(현지시간) 특파원 간담회에서 전날 있었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회담을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토니는 진이 미국 대학에서 하나도 아닌 두 개의 학위를 받은 능력 있는 분이라며 기자들 앞에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진은 토니를 만나 굉장히 반가웠고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개인적 친분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며 화답했다.
     
    진과 토니가 2시간 30분을 함께 하면서 나눈 핵심 이야기는 역시나 북한 문제였다.
     
    토니는 북한이 핵실험으로 도발하면 강력 대응하겠다면서도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북한에 그 어떤 적대적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북한용 메시지를 이날도 어김없이 내놨다.
     
    그러나 '적대시 안 한다'는 바이든 정부의 말은 말로써만 존재해 왔다. 북한을 적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행동으로 증명한 적은 없다. 미국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에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중국도 미국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도 8일 유엔총회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미국은 특정 영역에서의 대북 제재 완화와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비롯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단지 전제조건 없이 대화할 준비가 됐다고 말만 하지 말고 행동에 나서는 것이 핵심이다."
     
    장 대사는 나아가 "북한이 2018년 비핵화 조치에 나선 이후 미국 측은 상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북한의 적법한 우려에 대응하지 않았다"며 북한 문제가 꼬여가고 있는 책임은 오히려 미국에 있다는 점을 짚었다.
     
    북한에 적대 의사가 없다는 토니의 발언에 진도 껄끄러웠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은 전날 기자회견장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려는 계기가 무엇인지', '한미합동군사 훈련으로 북한이 핵실험에 나서는 것은 아닌지'를 묻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내놓지 않고 넘어갔다.

    박진 외교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 있는 미 국무부에서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박진 외교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 있는 미 국무부에서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과 토니는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강조했다. 북한에는 전제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라면서 비핵화라는 조건을 단 것이다.
     
    사실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은 무장해제를 요구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북한이 핵개발에 나선 것은 미국의 핵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북한의 엄청난 재래식 무기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했고, 이것이 다시 북한에게 핵무기 개발에 나서게 한 것이다.
     
    때문에 후발 핵강대국들이 억제용으로 핵무기를 개발한 것처럼 북한의 핵무기도 선제공격용이 아닌 억제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억제용 핵무기를 해체하라는 말은 지금과 같은 신냉전 체제하에서는 더더욱 현실적이지 못하다.
     
    또 한 가지 결정적인 모순은 한미 양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하면서도 북한의 핵무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진-토니 회담이 열린 다음날 우리측 고위 관계자와 한국 워싱턴 특파원들과 간담회에서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북핵문제 해법이 비핵화로 가기는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회의론이 미국에 많다. 그래서 군축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제안도 있다. 한국에서는 북핵문제 해법으로 핵자강론이 나오고 여론도 여기에 우호적이다. 이런 제안들을 어떻게 평가하나?"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군축이나 핵자강은 북한의 핵보유를 공식 인정하는 것이고, 확장억제라는 동맹에 기반한 정책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이론적으론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필요한 정책은 북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억제력을 강화하면서 일관된 원칙에 입각한 대북 정책을 펴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미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부터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했다.
     
    미국의 초당적인 비정부기구인 군축협회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숫자를 올해 1월 현재 40~50개로 파악하고 있다.
     
    수년간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오히려 북한의 핵무장력만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바로 한미 당국이 이런 일련의 모순과 현실부정, 환상 속에 갇혀있는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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