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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가계부채의 역습…달콤한 미래 약속과 생계형 늪에 '허우적' (계속) |
중학생 아들 한 명을 둔 김대성(가명·43)씨는 지난 2020년 10월 경기 고양시에 살던 아파트를 팔고 서울 목동으로 이사했다. 김씨는 시중 은행에서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합쳐 약 4억원의 빚을 냈다. 고양에 있던 아파트는 112제곱미터였지만 새로 이사한 목동 주변 아파트는 69제곱미터다. 살림을 줄여서라도 목동으로 이사한 이유는 중학교에 들어갈 아들의 교육 문제가 가장 컸다. 이사 당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연 0.5%. 현재는 1.75%까지 올랐다. 공무원인 김씨는 소속 기관과 시중은행의 약정으로 그나마 시세보다 싼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이 커져 현재 매월 140만원 이상을 이자로 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올해 안에 한국은행 또한 기준금리를 최소 연 2.75%까지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김씨의 부담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사실상 외벌이라 아이가 좋아하는 외식도 줄이고 개인적으로는 돈이 들어가는 모임과 약속 횟수도 줄이고 있다"며 "금리가 더 올라가면 이자 부담이 커지니까 살림을 더 팍팍하게 운영해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서울 강남구 빗썸고객센터 전광판에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박종민 기자한국사회의 가계부채 문제가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면서 통화당국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도 불가피해 가계부채 부실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에 전세계적으로 시중 유동성이 넘치면서 빚을 내기 쉬워졌고, 이는 부동산과 주식, 가상화폐 등 미래 가치로 환원돼 가계 대출을 늘렸다.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1860조원에 달한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이달 초에 발표한 '세계 부채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04.3%로 집계됐다. 조사 대상 36개 국가 가운데 가계 부채가 GDP를 웃도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주요 도시 봉쇄 영향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전세계를 덮치고 있는 모양새다. 물가상승 압력이 거세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시중에 풀린 유동성 회수에 들어갔고, 이제 시장에서는 '달콤했던 빚잔치는 끝났다'는 말이 나온다.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을 차치하더라도 가계부채 상당 부분이 부동산과 주식, 가상화폐 시장으로 유입된 만큼, 한국은행의 긴축에 따른 시중 금리 인상은 우리 경제에 적신호다. 금리 인상은 고스란히 이자 상환 부담으로 이어져 소비를 위축시키고 이는 또다시 경제성장률을 좀먹는 악순환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부터 이번 달까지 기준금리가 5차례에 걸쳐 1.25%포인트나 급등하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8%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17일 기준 KB국민과 신한, 하나, 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고정형(혼합형) 금리는 연 4.33~7.14%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3.60~4.97%)과 비교해 약 6개월 만에 상단이 2.16%포인트나 올랐다. 한은이 올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최소 1%포인트 올릴 경우, 주담대 상단이 8%대에 진입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럴 경우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만에 주담대 금리가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게 된다.
스마트이미지 제공한은의 추산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마다 가계대출 이자 부담은 연간 3조 2천억원씩 늘어난다. 한은이 현재 연 1.75%인 기준금리를 올해 말까지 2.75%까지 올리면 1인당 이자부담은 64만원 넘게 추가된다. 지난해 8월부터 현재까지 기준금리가 5차례 인상됐기에 최근 10개월 사이에 1인당 연평균 이자는 이미 80만원 넘게 늘어난 상태다.
한은은 지난 4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에서 "지난 하반기 이후 가계대출 증가세와 주택가격 상승세가 둔화되고는 있으나 금융불균형 누적 위험에 대한 경계를 늦출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간의 레버리지 누적을 통해 소득대비 가계부채 및 주택가격 비율이 여전히 주요국이나 장기추세에 비해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는데다,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가운데 최근 들어 금융기관의 대출 태도가 다소 완화되고 주택가격 기대가 하락세를 멈추는 모습이 관찰되는 등 불안요인이 상존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고 정부의 금융지원 정책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역시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정부가 시행 중인 이자와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가 시장의 예상대로 오는 9월 종료될 경우, 잠재 부실이 한꺼번에 터져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및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6조 880여억원이 늘어난 837조 9880억원으로 집계됐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고금리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들이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도록 대환 대출을 전격 시행한다고 밝혔지만, 한계에 몰린 모든 자영업자들을 지원책 안으로 모두 끌어들일 수는 없는 상황이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대출을 크게 늘렸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매출은 크게 감소해 상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다. 여기에 금리인상기를 맞아 가계의 소비 위축이 본격 시작될 경우 자영업자들의 부실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금융당국은 은행 등 금융기관을 상대로 잠재 부실 채권 흡수를 통한 금융 안정을 위해 대손충당금을 더 쌓는 등의 내부 관리 강화를 유도하고 있다. 실제로 이복현 금감원장은 20일 시중 은행장들과 만나 "은행의 건전성과 유동성 등 시스템 리스크 관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며 "경제충격으로 인한 신용손실 확대에 대비해 손실흡수 능력을 계속 확충해 나가야 한다. 보수적인 미래전망을 부도율에 반영해 잠재 신용위험을 고려한 충분한 규모의 충당금이 적립되도록 협조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당장 할 수 있는 건 금융위와 금감원의 가이드라인과 과거 부실 채권 관리 비율 데이터에 따라 대손충당금을 쌓는 것뿐"이라며 "실제로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부채나 소상공인 대출 부실 채권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정부가 다중채무와 연체 이력 등을 근거로 향후 잠재 부실채권 규모를 30조원으로 상정하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부실채권 매입에 나선다고 밝혔지만, 금리인상이 실물 경제에 본격적으로 전이되면 부실 규모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금리인상에 따른 이자 상환 부담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내수 회복 속도가 더뎌지면서 경제성장률까지 떨어뜨리는 등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 전반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