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
우리나라 금리 인상 결정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미국의 긴축 움직임이 예상보다 더 빨라지고 물가도 연일 고공행진하면서 가계부채를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시선이 착잡하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덩달아 빨라지면 가계부채 부실 위험성도 커질 수 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일부 완화하겠다는 계획인 데다,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출의 9월 연착륙 방안도 안정적으로 실현해 내야 한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그야말로 호랑이 등에 타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역설했다.
'점보 스텝' 예상까지…가계부채 부실화 빨라지는데 물가·환율도 챙겨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류영주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이후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올릴
것으로 보이면서, 차주의 이자 부담 역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달 연준은 금리를 한꺼번에 0.75%포인트 인상하는 일명 '자이언트 스텝'을 강행했다. 당초 6월은 빅스텝(한꺼번에 0.5%포인트 인상), 7월 자이언트 스텝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왔던 터라, 당시 금리 인상 결정은 적잖은 충격파를 남겼다.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인상으로 미국의 금리가 우리 기준금리를 역전하면 국내에 있는 외국자본이 유출될 수 있기 때문에, 한은도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준은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3.4%로 끌어올리겠다고 공개한 상태다.
금융당국으로서는 날로 높아지는 물가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금리 인상 역시 결국 물가를 잡기 위한 것이다. 물가 상승세는 다시 금리 상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지난 23일 환율마저 1300원이 무너지면서 한은의 금리 인상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한은 이창용 총재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 급등기였던 2008년의 4.7%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물가상승 압력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인데, 이 총재는 "이처럼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적절하게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될 수 있다"고 했다. 한은의 '빅스텝(한번에 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사실상 시사한 것이다.
우리나라로서는 고금리·고환율·고물가의 이른바 '3고(高)' 상황에서 가계부채의 뇌관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물가도 잡아야 하는, 즉 어느 것 하나 치우치지 않도록 조율해 나가야 하는 '복합위기'에 놓여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겨우 증가세가 잡힌 가계부채가 또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준금리 상승 속도가 빨라질수록 취약 차주들은 어려움에 처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은 소득 대비 가계부채의 비율이 높은 데다, 중소상공인의 대출 잔액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다중채무, 과다채무 등을 안고 있는 취약 차주들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부실 위험에 내몰리는 상황도 우려된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가 더욱 까다로워졌다는 뜻이다.
가계부채 관리 방안 발표한 금융당국 고민 깊어…'부채 부추기나' 비판도
사진은 서울시내 한 은행 대출창구 모습. 황진환 기자금융당국은 우선 차주별 총부채상환비율(DSR) 규제를 예정대로 시행하겠다고 못박았다. 당장 오는 7월부터 DSR 3단계가 시행되면 어느 정도 가계부채가 안정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취임 후 기자간담회에서 "DSR을 기본으로 하는 가계부채 안정화 정책을 유지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갚을 수 있는 능력, 범위 내에서 돈을 빌리라는 것이니까 상식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DSR규제는 현재로선 가계부채 부실을 막기 위한 마지막 안전판인 셈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내 집 마련'을 위한 실수요자나 취약계층에 대해 대출 규제를 일부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강력한 대출 총량규제로 '내 집 마련'의 기회가 과도하게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일부에 한해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세부 내용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출 총량규제에 대한 여론이 들끓을 당시 야당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기도 했다.
앞으로 생애 최초로 집을 구입할 때에는 주택 소재 지역이나 주택가격, 소득을 따지지 않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80%까지 인정해 준다. 현재 4억원으로 제한된 대출한도는 6억원으로 늘어난다. DSR 역시 청년층 장래소득 반영폭을 확대해 보완하기로 했다. 신용대출 한도의 연소득 범위 내 제한도 폐지된다. 대출 상환 기한을 50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초장기 정책 모기지 상품도 도입한다. 보금자리론과 적격 대출의 최장 만기는 청년·신혼 부부의 경우 40년까지였는데, 이를 10년 더 연장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고금리는 유지하면서 결국 대출을 유도하는 정부 정책이 자칫 무주택자의 무리한 대출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아파트값이 떨어지면 고금리 이자는 이자대로 부담하면서 차익 실현을 통해 이익도 볼 수 없어 더욱 큰 이중고에 처할 수도 있다.
한 부동산 관련 카페에는 LTV 80% 정책과 관련해 "금리는 올리는데 청년들한테 변동금리로 주담대 LTV를 80%까지 해주면 결국 집에 메여 평생 살라는 뜻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올라오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롤러코스터 같은 시장에서 안전띠를 잘 매야 하는 상황인데, 결국 변동금리로 대출을 더 많이 받게 해준다는 것은 안전띠 없이 더 빨리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 고정금리로 괜찮은 수준의 대출을 받게 하겠다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금리 리스크를 떠안으며 대출을 더 받게 하는 것은 개인의 재무건전성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안전띠'의 역할이 아직 충분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염려를 의식하듯 LTV완화가 가계대출 관련 규제 완화 시그널로 비춰질 것을 강하게 경계하는 모양새다.
금융위는 지난주 정리한 '새 정부 가계대출 관리방향 및 단계적 규제 정상화 방안'에서 가계부채 건전성을 해칠 염려와 관련해 "금번 방안은 가계대출 건전성을 위한 기본원칙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긴박하게 도입된 과도한 규제를 점진적으로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차주와 대출 기관이 스스로의 판단과 책임 하에 주택 매입, 대출에 대해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등 시장 기능이 정상화되도록 제도적 제약을 해소하는 조치"라며 차주와 금융회사의 역할도 강조했다.
금리인상 등 경제 상황 막을 수 없어…전문가들 "정책금융 강화"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가계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가계부채 건전성을 관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특히 올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더 오를 가능성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만큼, 현 상황보다 최악을 상정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다. 특히 금리가 오르고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는 저신용, 부채 과다 가계와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미 간 금리 격차 축소에만 집중해 가계부채 상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면서 "오는 9월 이자 상환 유예 종료를 맞는 자영업자 대출 등, 대출 부실 가능성을 더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앞서 DSR을 강화해 가계부채를 관리해왔고 그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폭등을 못하도록 관리했는데, 우리는 대출을 경기조절 수단으로 접근해 왔다"면서 "DSR 등 기본적인 가계부채 대책을 원칙으로서 정립하고 (자영업자 등에 대한) 정책 금융을 유연하게 해서 연착륙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센터장은 "현재 정부의 가계부채 완화 정책은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준 것으로, 집값이 하락세고 투자할 곳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대출이 늘만한 유인은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취약 차주에 대해 대환대출이나 분할상환 프로그램을 안내해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갚을 수 있도록 하고, 만일 갚을 수 없다면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가동해 지속적으로 경제 활동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 그런 부분의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