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현행 상속증여세법을 보면 중소·중견기업주가 기업을 상속하면 상속 재산가액에서 최대 500억원을 공제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치가 1천억원인 기업을 상속하면 기업 가치에서 최대 500억원을 공제한 나머지 500억원에 대해서만 상속세를 낼 수 있다. 기업 가치가 500억원 이하면 기업 운영 햇수에 따라 상속세를 한푼도 내지 않을 수 있다.
이같은 혜택을 준 것은 중소기업을 '가업'으로 승계해 기술력과 경영 노하우도 전승하고 명문 장수 기업을 만들어 고용 창출 등 국가 경제에도 이바지하라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상속세를 공제받으면 여러 조건을 지켜야 한다. 7년동안 현재의 업종을 유지하고 정규직 고용도 100% 유지해야 하는 것은 물론 상속 자산도 20% 이상 처분할 수 없다.
그럼에도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부의 대물림'과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는 대표적인 세금 특혜로 비판을 받아왔다. 한번에 500억원씩이나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중소기업계의 거듭되는 혜택 확대 요구에도 기획재정부는 '과세 형평성'을 내세워 법 개정에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출범 두달 만에 정부가 기존 혜택을 2배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주 기재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우선 상속세를 공제받을 수 있는 대상 기업이 크게 확대됐다. 기존 연매출액 4천억원 미만 기업에서 1조원 미만 기업으로까지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이 확대됐다. 2020년 기준 국내 대기업의 연 매출 평균이 5452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기업급 중견기업까지 상속세 혜택을 열어준 것이다.
공제 금액도 대폭 확대해 기존 200억~400억원이던 공제 금액 한도를 400억~1천억원으로 상향조정했다. 1천억원 짜리 기업을 상속하더라도 상속세를 한푼도 안낼 수 있는 셈이다.
세금을 깎아주는 대가로 지켜야 하는 '사후 관리' 요건도 대폭 완화됐다.
우선 사후 관리 기간이 현재의 7년에서 5년으로 줄어들었다. 이 기간 동안 현재의 업종을 유지해야 하는데, 현행 업종 규정은 표준산업분류상 '중분류 기준'인데 이를 '대분류 기준'으로 완화했다.
고용 유지 조건도 크게 풀어졌다. 현재는 7년 통산 정규직 근로자 수나 급여총액을 100% 이상 유지하고 매해 기준으로도 80% 이상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 법안은 매년 규정은 아예 없애고 5년 통산 정규직 근로자 수나 급여총액도 90%로 낮췄다.
상속받은 재산도 현재는 20% 이상 처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40%로 확대했다.
최악의 경우 상속세 공제 혜택을 받은 뒤 고용은 줄이고 승계받은 가업도 40% 직전까지 팔아 치울 수 있는 '세금 먹튀'가 나올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속세 공제 자격이 있는데도 공제받지 않으면 상속세 납부를 상당 기간 미룰 수 있는 '가업승계 상속세 납부 유예제도'까지 신설했다. 상속받은 기업을 다시 상속하거나 제3자에게 팔 때까지 상속세 납부를 미룰 수 있는 제도다.
김용원 나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가업상속공제 제도 개편안에 대해 "부의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같은 특혜를 확대하는 것은 불평등을 확대하는 것과 같다"며 "기업주들이 회사 하나 만들어 '가업 승계' 명목으로 자식들에게 자산을 물려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개편안이) 제도 취지를 무시한 채 사실상 상속세 우회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며 "부의 대물림을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양대학교 정책학과 강성훈 교수는 "정부가 가업 상속 공제를 해주는 이유는 사후 관리를 통해 기업으로 하여금 경제에 이바지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며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공제 대상 및 공제 금액을 확대한 것에 더해 사후 관리 요건까지 완화한 것은 성급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