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을 포함한 중부지방에 누적 강수량 500㎜ 넘게 폭우가 쏟아지면서 곳곳에서 인명·재산 피해가 속출한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침수로 피해를 입은 상인들과 군인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큰 불엔 잿더미라도 남지만 물난리엔 남는 게 없다'는 말이 있다.
불이나면 타다 남은 흔적이라도 있으나 홍수는 모든 것을 휩쓸고 가버릴 만큼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얘기다.
지난 8일과 9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등 중부지방에 엄청난 양의 집중호우가 내렸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115년만의 폭우로 도심 곳곳이 마비되다시피 한 서울에는 500mm 이상이 내려 장마철 전체 기간에 내릴 비가 하루에 쏟아졌다.
동작구에는 시간당 141mm가 퍼붓는 등 시간당 강수량 역시 80년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물 폭탄'이 떨어진 셈이다.
갑작스런 집중호우로 인명피해가 커 서울·경기·강원에서 16명이 사망·실종되고 이재민 398세대 570명이 발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한 모습. 연합뉴스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는 반 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인 등 가족 3명이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고립됐다 사망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하천이 범람하면서 발생한 침수피해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하철 역사와 선로에 빗물이 들어차면서 열차 운행이 중단됐고, 주요 도로가 통제되면서 출·퇴근길 엄청난 교통 대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특히, 서울의 고질적 침수 지역인 강남역 일대는 또다시 물에 잠겼다.
지난 2011년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를 비롯해 불과 10여년 사이에 5차례나 강남 역 일대가 집중호우로 인해 침수됐다.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면서 서울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지만 큰 비만 오면 물난리가 나는 상습 침수 지역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소셜미디어(SNS) 등에는 강남역과 대치역, 서초구 반포동 인근에서 침수 상태로 버려진 채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둥둥 떠다니는 차들 사진이 잇따라 올라오기도 했다.
보험업계 집계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을 강타한 폭우로 9일 단 하루 만에 고가의 외제 차 800여 대를 포함해 3천여 대의 차량이 침수돼 손해액만 384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고 해도 사전에 대처해 피해를 줄일 방법은 없었을지 의문이 든다.
보통 대도시의 하수시설은 시간당 100mm가 넘는 집중호우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수 처리 용량을 넘어 내린 강우량이 일차적인 원인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인 이상기후로 국지성 호우가 잦아지는 상황에서 그에 맞는 예방 대책을 제대로 강구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9일 서울 구로구에서 전날 내린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우연의 일치겠으나 유독 오세훈 시장이 재직하면 서울에는 큰 물난리가 났다.
오 시장이 제 34대 서울시장으로 있던 지난 2010년 9월에는 광화문과 강남일대에 큰 침수 피해가 발생했고, 이듬해에는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오 시장에게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빗대 '오세이돈'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오 시장 퇴임이후 서울시는 지난 10년간 수방·치수 예산을 꾸준히 확대해 지난해까지 관련 예산은 5천억 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오 시장이 다시 시정을 책임지게 되면서 서울시의 올해 수방 및 치수 예산은 전년도에 비해 900억 원 가량 줄었다.
게다가 최근 인사로 인해 재해·안전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안전총괄실의 국·실장 자리도 공석이다.
서울시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틀 간의 폭우가 지나간 후 출근 시간 시민들이 붐비는 서울 1호선 시청역을 빠져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행정안전부는 9일 서울·인천·경기지역 행정·공공기관과 그 산하기관 및 단체에 오전 11시 이후로 출근 시간을 조정하도록 요청했다.
교통정체를 우려한 것이라는 설명이지만 재난상황에서 가장 먼저 비상 소집돼 피해 수습과 복구에 나서야할 공무원들에게 늦게 출근하라는 게 옳은 조치였느냐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물 폭탄이 쏟아지던 8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재택근무'를 놓고도 공방이 벌어졌다.
당시 윤 대통령은 현장이나 상황실이 아닌 서초동 사저에 머물며 한덕수 국무총리 등으로부터 전화로 피해상황을 보고받고 관련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현장이나 상황실로 이동하면 대처 역량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집에서 전화로 보고 받고 지시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당은 이에 대해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현장에 머물며 진두지휘를 하느냐 안 하느냐에 큰 차이가 있다며 멀쩡한 청와대는 왜 비우고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하천홍수 및 도심침수 대책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서울시는 이번 집중호우를 계기로 도시 홍수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강남대로 상습 침수를 막기 위해 진행 중인 사업에 막대한 예산이 우려된다면 중앙정부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매년 폭우에 대비한 한강 준설공사는 물론 각종 쓰레기와 낙엽 등으로 도심 배수구가 막히지 않도록 평소에도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수도권을 포함한 중부지방에 누적 강수량 500㎜ 넘게 폭우가 쏟아지면서 곳곳에서 인명·재산 피해가 속출한 가운데 10일 오전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 방앗간 주인이 복구작업 도중 한숨을 쉬고 있다. 황진환 기자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인류 문명을 탄생시킨 것도 물로 이집트와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등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모두 큰 강 주변에서 태동했다.
그래서 옛날부터 위정자들은 물을 다스린다는 뜻의 '치수'(治水)를 강조했다.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지역에 대해선 빠른 복구가 필요하고 침수나 산사태 등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은 서둘러 예방해야 한다.
아무리 인류가 자연의 불편함을 극복하며 발전을 이뤄왔어도 자연만큼 위대하고 무서운 것은 없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자연의 역습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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