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15일 서울 양천구 CBS사옥을 방문,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앵커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황진환 기자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13일 여권에 대한 전방위 비판 기자회견에 이어 15일 언론인터뷰 등 장외여론전에 본격 돌입했다. 당내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을 직격하며 스스로 퇴로를 끊은 이 전 대표의 행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예상 범위 내였던 이 대표의 돌출 행동을 제어할 방안도 실종 상태다. 무엇보다 '왜 분란을 자초하느냐'며 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 머무는 당의 입장은, 비상대책위 출범을 통해 새출발을 하겠다는 각오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준석, 尹 향해 "앞뒤 달라, 제가 100년 만에 나올 만한 XX냐"
이 전 대표는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윤 대통령과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여당을 향해 재차 공세에 나섰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을 향해 앞뒤가 다른 태도를 보인다며 "(제가) 100년 만에 나올 만한 XX라는 거냐"라고 비판했다. 앞서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자신을 '이 XX, 저 XX'라고 했다고 주장했는데, 여기에 윤 대통령이 과거 자신을 추어올렸던 발언을 조합한 것이다.
이 전 대표는 "그걸 듣고 나서 '아, 대통령이 이준석을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그러니까 쟤 때려도 되겠다' 하면서 소위 윤핵관과 윤핵관 호소인들이 저를 때리기에 들어오는 지령 비슷한 역할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서는 한국갤럽의 최근 조사를 인용해 100점 만점에 25점을 줬다.
이 전 대표는 정규방송 이후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에 출연해서도 "제가 만약 지금 (차기 당대표 선출) 전당대회에 출마한 사람이라면 '저는 이번 전대를 통해 윤핵관과 그 호소인의 성공적 은퇴를 돕겠다'는 한마디로 선거를 이끌 것"이라며 "그 말을 할 수 있는 자들을 국민이 주목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출구 없는 이준석…"선 넘은 李, 정치적 미아될 것"
이처럼 "돌아올 배까지 불에 태운 듯" 혹은 "퇴로를 끊은 듯"하다고 평가를 받는 이 전 대표의 행보는 향후 국민의힘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17일로 예정된 당 비상대책위원회 출범부터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위원 인선 추천을 받은 인사들 중에는, 화력이 센 이 전 대표와 공개 갈등을 빚는 게 부담스러워 합류를 거절한 사례도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전 대표가 집권 초기에 사실상 '반윤 정치인'을 선언하며 향후 당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자기 생각은 밝혔는데, 이제 어쩌겠다는 건지 플랜비(Plan B)가 없다"며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과 여당 대표 중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자는 식인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냐"라고 말했다. 한 재선의원도 "선을 넘어도 너무 지나치게 넘었고, 악순환이 더 커지기만 하는 상황"이라며 "이 전 대표가 정치적 미아가 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책 없는 與, 李 태도 공격만…"싸우기만 하면 어쩌나"
더 큰 문제는 국민의힘이다. 이 전 대표가 예고한 전면전은, 기존 정치문법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그의 기존 행적을 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 전 대표의 공세에 대한 정무적 대응이나 여론전을 이끌 수단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모습이다. 당 지도부는 이 전 대표의 최근 행보에 대한 공개 언급을 일절 삼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 전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주장한 핵심 내용에 대한 논리적 반격 대신, 윤 대통령과 윤핵관을 공격한 것에만 집중하는 협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전 대표의 거친 표현과는 별개로,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주요 내용은 대통령의 위기가 유튜브 음모론과 반공이데올로기 등에 기대는 '자유한국당 식 정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었다. 또 차기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보수정당이 이런 모습에서 바뀌어야 하는데, 기존 강성 보수층과 지역구도에 의지하면 되는 이른바 '윤핵관'들이 현실에 안주하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에 대한 충성경쟁만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난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그러나 당 안팎에서 주력하는 부분은 이 대표의 '태도'에 대한 공박이다. '어떻게 정부 출범 초기부터 대통령을 공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다른 얘기는 하지 말고 함께 힘을 합치자'로 마무리되는 이 입장들에서는,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당이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나 내용은 쉽게 찾기 어렵다. "보수 혁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자(김기현 의원)"는 주장 정도가 가장 구체적인 상황이다.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 징계를 받은 평당원일 뿐(국민의힘 관계자)"이라거나 "독선적으로 자기 말만 맞다고 하는 정치인은 결국 국민에게 외면받을 것(국민의힘 의원)"이라는 의견이 당내 주류다.
차기 당권주자 등 유력인사의 발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경원 전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본인으로서 억울한 점도 있고 화도 나겠지만 정치인은 해야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될 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은 "정치판의 천변만화가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1년 전 상황으로 착각하고 막말을 쏟아내면서 떼를 쓰는 모습은 보기에 참 딱하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은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내부의 분열"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민생의 안정이란 사명 앞에서 각개의 의견과 고집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발언에 동조를 못하겠다면 차라리 여권에서 명확한 원인 진단을 통한 쇄신 이슈를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의원은 "당이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두패로 갈라져서 싸우기만 하면 지지율이 더 떨어지고, 아예 정권 유지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며 "이 전 대표만 잘라 낸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 호가호위하는 세력들을 걷어내는 대대적인 인적 쇄신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