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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각자도생 시대의 공상(空想)

    포격으로 파괴된 우크라 키이우의 국경수비대 시설. 연합뉴스포격으로 파괴된 우크라 키이우의 국경수비대 시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 한지 180일, 만 6개월이 됐다. 당초 이 전쟁은 짧고 굵게 끝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완전 빗나가고 있다.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지리적으로 730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그러나 이 전쟁은 한국인 뿐 아니라 지구촌 개개인에게 미치는 실질적 거리에 관계없이 체감 도는 '0' 킬로미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방으로 노출돼 있다.
     
    전쟁 전, 빵집에서 6천 원 이었던 '바게트샌드위치'가 현재 9천 원이 되었다. '런치플레이션'(점심+인플레이션)은 말할 것도 없다. 순댓국은 6,7천 원짜리가 8,9천 원으로 싹 다 올랐다. 심지어는 라면 한 봉지 가격이 1천 원에 이르게 되었다. 상추는 열 장 남짓에 2,3천 원이다. 폭등하는 물가에 속수무책이다.
     
    폭등하는 물가.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지리적으로 730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음에도 전쟁은 거리에 관계없이 영향을 미치는 듯 하다. 황진환 기자폭등하는 물가.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지리적으로 730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음에도 전쟁은 거리에 관계없이 영향을 미치는 듯 하다. 황진환 기자
    6개월 전황을 토대로 한 전쟁 예측은 태반이 비관적이다. 앞으로 2년이 갈지 3년이 더 갈지 알 수 없다는 분석이 서방 언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유럽에 나가 있는 한 외교관은 한국전쟁이 1950년 6월에서 9월까지 싸우고 나서 정전 협상 한다며 3년을 끌었던 것처럼 이 전쟁도 지루하게 계속될 것 같다는 예측이 현재로서는 많다고 전했다. 미 중간 선거를 앞두고 올 가을 쯤 총 소리가 멈출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관측이 있었지만 미국은 인플레이션 말고는 지금 잃을 것이 없다는 태세다.
     
    도덕론자 칸트는 <영구 평화론>에서 영원한 평화 달성을 위해 국가 간의 전쟁을 끝낼 국가 연합을 제안했다. 국제 평화에 대한 칸트의 믿음은 반대 편에서 무지와 낙관주의라고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국가들의 국제적 연합에 대한 칸트의 계획은 그가 사망하고 한 세기가 지나 우드로 윌슨의 '14개조 평화 원칙'으로, 국제연합의 탄생으로 결실을 맺었다. 심대한 타격을 받은 20세기 초 1차 세계 대전의 결과였다. 그러고도 인류는 더 잔인한 세계 전쟁을 한번 더 벌이고 말았다.
     
    그로부터 백 여 년이 안된 2022년, 국가를 초월하려는 칸트의 야망은 또다시 순진하고 반정치적인 것이 되고 있다. 20세기에 1915년부터 45년까지 그런 난리를 치고 반성을 하고 21세기에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랐는데 똑같이 백 년 뒤에 역사가 반복되면서 칸트의 논리는 기껏 '소망'에 불과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만인 대 만인이 늑대와 같이 경쟁하는 자연 상태'라는 4 백 년 전의 정치 철학자 토마스 홉스의 논리를 어쩔 수 없이 수긍해야 하는 처지가 된 느낌이다.
     
    바야흐로 전 지구적이든, 국내적이든, 사회적이든 각자도생 시대가 풍토병처럼 되어가고 있다.
     
    국제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도 심란한데 미중 간 세력 대결의 후폭풍은 너무나 혹독하다. 연합뉴스국제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도 심란한데 미중 간 세력 대결의 후폭풍은 너무나 혹독하다. 연합뉴스
    국제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도 심란한데 미중 간 세력 대결의 후폭풍은 너무나 혹독하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만 해도 '자기들이 유리하면 자유 무역, 불리하면 보호 무역'을 들고 나와 시장 규칙을 제멋대로 요리하더니, 이제는 그 잘난 자유무역도 보호무역도 아니고 '나한테 한 줄로 서라'고 새로운 질서 규칙을 압박한다.
     
    미국 대통령은 한국 기업가들을 수시로 불러 '오라 가라' 한다. 한국 대통령 보다 더하다. 희한하고 새로운 규칙이다. 미국에 투자하면 '땡큐'라 어깨를 다독이고 한국 기업가가 미국에서 대우를 받는가 보다 라고 착시 하는 순간, 전기차 보조금에선 뒤통수를 내리친다. 한국 기업이 아니고 미국 기업이 되라는 것이다.
     
    전염병이 사라지지 않은 올 여름 기후 환경은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던가, 유럽에선 산불과 가뭄으로 강바닥이 타 들어가고 2차 세계 대전 시 군함이 드러나는가 하면, 중국에서 유적이 돌출되고, 서울에서는 집중 폭우가 내려 한두 시간 만에 도심지가 물 바다가 되는 수난을 겪었다. 여기에서도 시민들이 나서 배수구 쓰레기를 치우고, 옆집을 구조해 주고 국가는 어디에 있냐는 외침이 들려 온다.
     
    삶과 관계를 떠나 시절이 불순해서 '공상'을 해본다. 변화 시킬 수 없는 세계 속, 자신의 삶에 더 충실한 것이 이익일 것이다. 사진은 선선할 날씨를 보인 24일 오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삶과 관계를 떠나 시절이 불순해서 '공상'을 해본다. 변화 시킬 수 없는 세계 속, 자신의 삶에 더 충실한 것이 이익일 것이다. 사진은 선선할 날씨를 보인 24일 오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
    삶과 관계를 떠나 시절이 불순해서 '공상'을 해본다. 인간은 목표 지향적으로 번성을 목표로 움직이는 것일까, 아니면 삶과 죽음, 혼돈과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 악을 피하려는 것이 본성일까. 변화 시킬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개인의 생각은 쓸모 없고 무력하다. 그러니 자신 삶에 더 충실한 것이 이익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과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이치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자아의 세계이든, 국제 사회든, 국가 사회든 각자도생 보다 통합과 연대의 가치가 더 무너지지 않기를 소망 해 본다. 팬데믹 이나 기후 변화 위기가 너무 커지는데 엄청난 재앙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적어도 힘을 합치는 비전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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