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관련 블로그 캡처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살해하려 했을 때 살해의 내심까지 주변 사람들은 낌새를 챌 수 없다. 그러나 2054년 미국 워싱턴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다르다. 그 도시는 범죄가 일어나기 전 범죄를 예측해 범죄자를 미리 처단하는 예방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시스템에는 음모가 있었고 그것이 밝혀지며 결국 시스템은 폐기된다.
우리는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큰 사고나 재해가 발생하기 전까지 반드시 그와 관련한 경미한 사고나 징후들이 수없이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1930년대 당시 보험 회사 관리 감독자였던 하인리히가 5천 여건의 산업 재해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주장한 내용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나 재난은 하인리히 법칙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의자 전주환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전주환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특가법) 보복살인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류영주 기자'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에서도 이 법칙은 예외가 아니었다. 신당역 사건에서 정부 당국자 가운데 제일 먼저 현장을 찾은 한동훈 법무장관은 '스토킹 처벌법'의 맹점인 '반의사불벌죄'를 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법의 제도적 부실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결코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토킹 법은 보완돼야 한다. 하지만 비극이 반복되는 스토킹 사건에서 법 강화로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매우 회의적이다.
스토킹 살인 피의자 전주환이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까지 협박과 강요로 인한 공포, 두려움, 불안 같은 전조들이 피해자에게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피의자 영장 청구에 대한 법원의 기각, 피해자의 2차 경찰 신고, 영장 재청구 누락 등 수사.사법 기관은 피해자의 호소를 번번이 외면했다. 피의자와 피해자가 소속했던 서울교통공사와 범죄 피해로부터 여성을 돌봐야 할 여성가족부는 또 어땠는가.
연합뉴스서울교통공사는 택시 운전기사 폭력과 음란물 유포 전과 기록을 가진 자를 거르지 못했고, 1년 전 성범죄로 직위 해제된 그가 역사 내부 시스템에 접근했지만 무방비였고,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피해자 당직 일정 파악만 허락되지 않았다면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20일 국회서 열린 '신당역 살인 사건'에 대한 여성가족위원회 회의에서 '여가부 부처 해체'가 유일한 목표인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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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굉장히 답답하다고 느끼는 것은 여가부 장관이 피해자 보호에 대해서 상당한 역할을 해야 되는게 분명한데, 이 피해자가 어떻게 돼 있는지에 대해 (서울)교통공사에서 통보를 받지 못했습니다. (공사로부터) 통보를 받지 못했을 때 거기에 대해 제재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제가 정말 가슴 아픈 것은 살해된 우리 피해자가 여가부의 다양한 1366이나 그런 걸 통해서 갖고 있는 상담이나 주거나 법률 지원을 받고 자기 자신을 얼마나 보호 받을 수 있는지 충분한 상담을 받았다면 이렇게 까지 비극적인 사건으로 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지금이라도 경찰청에서 개인 정보를 노출하라는 얘기가 아니고 어떤 사건이 있을 때 여가부의 인프라를 갖고 피해자가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피해자) 정보가 즉시 제공되지 않으면 (여가부가) 언론 기사를 통해 본다든가 통보할 때까지 기다릴 경우, 이 같은 사건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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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방지법상 공공기관장은 해당 기관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명시적 반대가 없으면 여가부에 통보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경찰이나 교통공사에서 관련 통보를 받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장관의 말을 듣고 보니 한심하고 착잡해서 한숨만 나온다. 참극에서 무엇을 짚어보고 무엇을 배우겠다는 것인가. 책임을 회피하면 시간이 그 책임을 잠재우고 가는 것인가.
왼쪽부터 우종수 경찰청 차장, 전주혜 의원. 윤창원 기자·연합뉴스다음 질의 응답을 보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의무를 가진 공권력 책임자들이 어떤 태도로 임무에 임하고 있는지 암담하다. 피해자 온정 주의는 고사하고 피해자를 중심에 놓고 상황 파악하려는 개념 자체가 보이질 않는다.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녹을 먹고 사는 사람의 민낯이지 않나 싶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20일) |
전주혜 의원: (1차 영장 기각되고 가해자가) 한 달 후에 피해자에게 다시 문자질 합니다. 문자를 보내지 말라고 한 건데…1차 영장 기각될 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350 번 문자를 보냅니다. 영장 기각 한 것은 법원이 속아서 였든지 믿었든지 했겠죠. 그리고 무슨 일이 났습니까. 한달도 안 돼 또다시 문자질을 해요. 그러면 영장 재청구 사유가 아닌가요? 우종수 경찰청 차장: 아닙니다. '당시에'… 전주혜: 지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네! '당시'가 아니라 경찰청이 반성해야 합니다. 이 정도로 피해자가 참다참다 못해서 올 1월 신고를 다시 할 정도면 이거는 스토킹이 재발 한 거에요. 당연히 그러면 영장을 청구했어야지요. 영장 청구도 안하고 그러면 대체 누구를 기준으로 영장 청구 기준을 생각하는 겁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의 발생에서 살인까지 경찰의 책임이 굉장히 큽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종수: 음… 어쨌든 당시 영장이 청구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다소'….. 전주혜: '다소'가 아니에요! 지금 '다소' 라니요!. 무슨 말씀하시는 거에요. 다소 라니요!!!. 그러면 앞으로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앞으로도 영장 청구 안 할 겁니까? 우종수: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서…. 전주혜: '반면교사'가 아니에요. 지금! 이러니 지금 경찰청에 스토킹 피해자들이 믿고 맡길 수 있겠습니까.. 반면교사라니요!!! 지금. 보세요! 네에! '피해자 감수성'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 비극적인 사건의 1차 책임이 경찰에 있다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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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이미지 제공'신당역 사건'에서 경고와 징조는 하인리히 법칙처럼 무수하게 많았다. 그러나 법과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들은 그 징조를 무시했고 피해자 입장에서 그 불안에 휩싸인 호소를 누구도 눈 여겨 보지 않았다. 어떤 범죄자가 감히 경찰청 차장님과 법관님을 스토킹 하겠는가.
법과 제도의 미비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제도를 운용하고 시민의 안전과 신뢰를 책임져야 할 공권력 운용자들의 여성 폭력 사건에 대한 무감각한 감수성이다. '반의사불벌죄'를 보완하고 형량을 높인들 그들의 호소를 절실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는 한 폭력의 악순환을 걷어낼 수 있는 것일까. 여성이 남성을 자꾸 '잠재적 가해자'로 내몬다고 타박만 할 것이 아니고 역지사지의 마음에서 사건을 들여다 볼 때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제발 호소를 외면하지 말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