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연설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은 오는 25일 현 정부출범 이후 첫 예산안 시정연설에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대장동 특검'과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수용하지 않으면 시정연설 보이콧을 예고하고 있어 막판까지 윤 대통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25일 국회를 찾아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은 한다. 시정연설은 대통령이 국민의 대의 기관인 국회를 찾아 국정 전반에 대해 정부의 국정기조와 정책 방향, 경제·재정에 관한 계획 등을 설명하는 연설을 뜻한다.
윤 대통령에게 예산안 시정연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5월 16일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은 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추경 규모는 59조 4천억원, 내년도 예산 규모는 639조원으로, 규모와 내용 등 모든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윤 대통령은 이번 시정연설에서 자유와 시장경제에 기반한 경제와 사회 취약 계층 지원강화 등 예산 전반에 대한 연설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기조는 자율과 창의에 기반한 시장경제 그리고 취약계층에 대한 세심한 배려"라며 "이런 철학과 방향이 연설에 녹아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시작 전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야당에서 윤 대통령에 특검 수용과 대국민사과를 수용하지 않으면 시정연설을 보이콧하겠다고 경고했는데, 대통령실과 여당은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대장동 사건 관련 검찰 수사가 편파적이라며 특검을 통해 정확한 진상규명을 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은 23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떳떳하다면 대장동 특검을 즉각 수용해야한다"면서 25일 시정연설 전까지 특검 수용 여부를 알려달라고 했다.
이어 "화천대유와 50억 클럽으로 시작한 수사는 대장동 특혜 비리로 변질되고 급기야 불법 대선자금 사건으로 둔갑했다"며 "이 대표의 개입을 밝히겠다고 1년 동안 탈탈 털었는데도 나오는 게 없자 대선 끝나고 얼토당토않게 대선자금으로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지난달 해외 순방외교에서 비속어를 사용했던 것과 관련해서도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국회를 무시하고 야당탄압이 끊이지 않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시정연설 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며 "만약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부득이 시정연설에 순순히 응할 수가 없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박종민 기자그러나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두 가지 요구에 모두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특검 요구에 "특검은 (검찰이) 수사를 뭉갤 때 필요한 것이지, 수사를 제대로 하고 있는데 그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특검을 한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면서 "속이 보이는 물타기, 수사지연, 증거인멸 시도라고 판단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대장동 사건은 우리당이 문제제기를 한 것이 아니고 민주당의 경선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라며 "정권이 바뀌고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팀이 구성돼서 수사하니 위기의식과 절박감을 느낀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실은 여야의 설전에 공식적으로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국민의힘과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특검과 관련해서는 여야가 합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신중하게 논의해주길 당부드린다"고만 밝혔다.
그러면서도 "시정연설이라고 하면 내년도 예산안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정부의 정책기조를 설명드리는 자리"라며 국회법에서도 관련 규정이 있다는 사실을 부각했다. 시정연설은 절차와 규정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고,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검찰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되는 것이고, 시정연설은 국정운영에 대한 것인데 어떻게 연계가 되느냐"고 반문하며 "민생을 볼모로 잡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보이콧을 하더라도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국회 본회의는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의 출석으로 개의되기 때문에 국민의힘 단독으로도 본회의 개최가 가능하다. 하지만 민주당의 보이콧으로 상황이 복잡해진 국회에서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는 것에 대해 대통령실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대통령이 여야 정쟁의 한복판에 서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오늘 국회 상황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면서도 "국민의 대표가 국민의 대표 기관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설명할 기회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여야가 원만한 합의로 시정연설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의지도 막판 변수가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단독으로 본회의 개의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절차상 하자가 없는 만큼 무난하게 김 의장이 본회의를 열어줄 것이란 예상도 있지만, 민주당 출신인 김 의장이 다른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국회 관계자는 "25일 전까지 여야의 협상 상황을 지켜보면서 최종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