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옆집사람' 스틸컷. ㈜디스테이션 제공※ 스포일러 주의
돈을 둘러싼 욕망과 요즘의 현실은 씁쓸함 그 자체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언제나 무거울 필요는 없다. '코믹 스릴러'라는 큰 틀 안에 1인극, 소동극, 슬랩스틱, 블랙 코미디, 찰나의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가 복합적으로 녹아들어 있는 '옆집사람'은 한정된 공간을 무한하게 활용하며 현실을 풍자한다.
지독한 숙취와 함께 깨어나 보니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 낯선 원룸 안에서 깨어난 찬우(오동민)는 자신이 있는 곳이 그간 지독한 벽간소음으로 나를 환장하게 만든 옆집 404호라는 걸 알게 된다.
더욱 기가 막힌 건 눈을 뜬 자신 앞에 피 흘리며 죽어 있는 시체가 누워있다는 점이다. 죽어 있는 사람이 집주인인지 아닌지도, 자신이 죽인 건지 아닌지도 모르는 찬우의 경찰 공무원 시험 원서 접수 마감일은 그렇게 시작한다.
영화 '옆집사람' 스틸컷. ㈜디스테이션 제공염지호 감독의 스크린 데뷔작 '옆집사람'은 원서 접수비 만 원을 빌리려다 시체와 함께 원룸에 갇힌 5년 차 경시생(경찰공무원 준비생) 찬우의 하루를 그린 작품으로,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관왕을 달성하는 등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다.
영화는 통장에 원서 접수비 1만 원은커녕 단돈 1680원이 전부인 고시 장수생 찬우가 시체가 있는 낯선 공간에서 눈을 뜨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옆집사람'은 찬우의 옆집 404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장르는 무한하고 재미는 다채롭다. 요즘 세대와 자본주의 사회를 그려내는 우왕좌왕 풍자극은 정색하고 다가갈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5년째 경찰 공무원 준비 중인 고시 장수생 찬우는 거듭된 낙방에 원룸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통장 잔고 이천 원도 안 되는 찬우는 필름이 끊긴 후 하필이면 원서 접수 마감일에 살인사건 현장이 된 옆집사람의 집에서 눈을 뜨게 된다. 그렇게 찬우는 극한의 상황에서 극단에 놓인 선택지를 받아든다.
주인공 찬우의 정신없는 옆집에서의 하루를 따라가는 동안 영화는 여느 고시생의 삶, 그들이 맞닥뜨린 현실, 벽간소음, 보이스 피싱 등 다양한 현실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벽 하나를 두고 붙어 있는 사이지만 찬우에게 옆집사람은 이름도 얼굴도 성별도 모르는 그저 소음의 주범일 뿐이다. 그러나 나와 엮이며 옆집사람은 그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일 수 없게 된다.
영화 '옆집사람' 스틸컷. ㈜디스테이션 제공벽간소음에도 그저 벽 너머로 조용히 하라고 하거나 건물주를 통해 항의했던 찬우는 어처구니없게도 옆집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옆집사람에 관해 하나둘 알아가게 된다. 알고 보니 여성이었고, 이름은 현민이라는 등의 정보 말이다. 자신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한 옆집과의 접점이란 그저 '옆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살인사건의 현장에 놓인, 그것도 어쩌면 자신이 유력한 용의자로 몰릴 상황에서 찬우에게 중요한 건 여러 의미로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과 당장 몇 시간 뒤 마감될 원서 접수다. 재밌는 건 찬우가 경찰 공무원 준비생이라는 점이다. 범죄 수사를 통해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경찰을 꿈꾸지만 막상 자신이 용의자라고 생각하자 갈등에 휩싸인다. 신고할 것인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신고하지 말 것인가.
이때부터 영화는 주인공의 거듭된 딜레마와 선택을 보여준다. 통장 잔고 1680원, 당장의 원서 접수비마저 아쉬운 경시생 찬우는 벼랑 끝 상황에서도 옆집사람의 저금통을 털고, 시체의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든다. 통장 잔고와 보이스 피싱으로 시작한 '돈'이란 키워드는 옆집사람 현민까지 404호에 모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욕망을 드러낸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구는 현민은 돈으로 찬우를 매수하려 하고, 주인공은 자신의 미래와 텅 빈 통장을 떠올리며 시신 유기에 동참하고자 하고, 시체인 줄 알았던 남성 기철은 돈으로 얽힌 관계 안에서 칼부림한다. 이름도 성별도 모른 채 만났던 인물들을 하나로 묶어낸 돈, 즉 자본주의가 만든 그림자는 자본주의 피라미드에서 아래에 속하는 사람들이 사는 옆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가장 짙게 드리워진다.
영화 '옆집사람' 스틸컷. ㈜디스테이션 제공이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옆집사람인 찬우와 현민, 그리고 옆집으로 찾아 들어온 기철을 통해 본 요즘사람들과 요즘사회의 자화상은 분명 씁쓸하고 어둡다. 그러나 이를 그려내는 방식은 위트가 넘친다. 그렇게 현대 사회와 돈을 향한 사람들의 욕망, 선택이 만든 결과는 짜임새 좋은 블랙 코미디로 완성됐다. 옆집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의 선택을 보면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가 발 디딘 곳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배우상 심사위원 특별언급의 주인공답게 오동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채 양심과 욕망 사이를 오가는 인물의 폭넓은 감정 스펙트럼을 풍부하게 표현해냈다. 그의 연기를 보면 찬우의 상황을 대변하는 '우왕좌왕'이란 단어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현민을 연기한 최희진은 피해자인 듯 가해자인 듯, 살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하며 이뤄내려는 인물을 잘 포착해냈다. 특히 살기 위해, 미래를 위한 욕망에서 비롯한 현민의 서늘한 얼굴을 그려낼 때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정현은 영화의 반전 이후 얼굴을 드러내며 짧지만 강렬하게 극에 긴장을 순식간에 불어넣는다.
93분 상영, 11월 3일 개봉, 15세 관람가.
영화 '옆집사람' 메인 포스터. ㈜디스테이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