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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박원순 성희롱' 인정한 법원…'피해자다움 주장'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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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법정B컷]'박원순 성희롱' 인정한 법원…'피해자다움 주장' 비판했다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지난 2020년 7월 13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운구행렬이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영결식을 마친 뒤 추모공원으로 출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지난 2020년 7월 13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운구행렬이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영결식을 마친 뒤 추모공원으로 출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동료 직원에 대한 성폭력 의혹을 남기고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1년 10개월 만에 다시 "성희롱 행위가 맞다"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이번엔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닌 법원의 결정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해 박 전 시장의 유족 측이 법원에 인권위의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지만, 법원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늘 법정B컷은 1년 넘게 치열한 변론이 오간 이 재판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는 이래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라는 박 전 시장측의 주장을 이른바 '피해자다움의 강요'라고 지적한 재판부의 판단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을 중심으로 '피해자다움'을 배척하는 최근 법원 분위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부실조사, 피해자 말만 들어" vs "51명 조사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지난 2020년 7월 10일, 서울 성북구의 한 공원에서 숨진채 발견됐습니다. 비서로부터 성추행 피소를 당한 지 약 하루 만입니다.

    박 전 시장이 숨지면서 '성추행 고소 사건'은 자연스레 불기소 처분됩니다. 피고소인인 박 전 시장이 사망함에 따라 공소권이 없어졌기 때문이죠. 그렇게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은 수사당국의 손을 떠납니다.


    그러던 와중에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7월 30일,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에 나섭니다. 그리고 인권위는 2021년 1월 25일, 박 전 시장의 행위에 대해 성희롱이란 결정을 내렸습니다. 인권위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업무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인권위는 서울시에 피해자 보호 조치와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울 것을 권고합니다.

    이에 박 전 시장 유족 측이 반발하면서 이번 소송(서울행정법원 행정8부, 이정희 부장판사, 인권위 권고 결정 취소 소송)이 시작됐습니다.

    박 전 시장 측은 '인권위가 절차를 어기고 직권 조사했고, 또 이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의견 진술할 기회도 주지 않아 위법하다. 또 '수사 기관도 결론 내리지 못한 사건에 대해 인권위가 성희롱 혐의를 인정한 것은 권한에 없는 행위이며, 인권위가 인정한 피해자의 주장도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22.08.22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 '인권위 권고 결정 취소 소송' 中
    박 전 시장 측 변호인

    "피해자가 직권조사 요청서를 제출했더라도 인권위법상 '직권조사 요청'이라는 절차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제출한 직권조사 요청서를 그 성질상 '진정'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인권위는 법률에 위반해 이를 직권조사로 진행했는데, 이러한 절차에 중대한 절차 위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명백히 진정이 제출됐는데 이를 무시하고 진정사건을 직권조사 절차에 따라 진행한 것은 위법입니다"

    "수사기관조차 사실 확인이 불가능해 공소권없음 결정한 사안에 대해 인권위가 강제추행 또는 성폭력특별법 위반 혐의를 인정한 것은 권한에 없는 행위입니다"

    "인권위는 이 사건 결정에 있어서 피조사자(박 전 시장) 또는 피조사자 측의 의견진술도 없이 불과 5건의 참고인 진술과 포렌식 자료 만으로 피조사자의 성희롱 행위를 인정했고, 회의록 등 어떤 방식으로 심리가 진행됐는지 알 수 있는 자료조차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인권위는 아래와 같이 맞섰습니다.

    22.07.04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 '인권위 권고 결정 취소 소송' 中
    인권위 측 변호인

    "인권위 조사는 당사자의 '진정'이  아니라 (인권위의) '직권조사'로 진행됐습니다. 진정을 넣은 당사자가 없음에도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를 적용해 인권위가 스스로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리는 것은 법률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박 전 시장 측은 인권위가 '피해자와 관련 기관 종사자에 대한 의견 진술'만으로 조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하지만, 결코 아니며 2020년 8월 21일부터 11월 16일까지 이 사건과 관련된 총 51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진행해 그 사실관계를 확인했습니다. 
    참고인들 중에는 박 전 시장 측이 주장하는 서울시 비서실 직원들이 다수 포함됐고, 사건에 대해 알고 있을 것으로 상정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포함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판 말미 공개된 '비서의 문자'… 재판부의 판단은? 

    인권위가 권한 밖 일을 한 것인지, 또 피해자의 일방 주장만 듣고서 결론을 내린 것인지를 두고 양측의 기싸움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박 전 시장 측은 인권위가 박 전 시장의 행위가 성희롱이라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인지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했고, 인권위는 2차 가해가 우려된다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자료 제출을 두고 양측의 기싸움이 계속 이어지자, 구두로 자료 제출을 요구하던 재판부도 결국 올해 1월 14일 일부 자료 제출을 명령합니다.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해당 자료에는 박 전 시장과 피해 비서가 주고 받은 텔레그램 메시지 일부가 첨부됐습니다. 비서가 박 전 시장에게 '사랑해요', '꿈에서는 돼요'라고 보낸 메시지 등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재판 선고를 앞두고 있던 지난 10월 17일, 정철승 변호사가 SNS에 공개했습니다. 법정에 제출된 증거 그대로 말입니다. 지금까지 박 전 시장과 피해자가 주고받은 문자 내용은 주로 피해자의 진술을 근거로 파악돼 왔습니다. 이렇게 텔레그램 메시지 원본 자체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첨언하자면 이번 소송에서 박 전 시장 측을 변호한 이종일 변호사는 해당 메시지가 공개될 줄 몰랐다고 합니다. 이 변호사는 취재진과 만나 "텔레그램 메시지는 저희와 상의하고 공개된 것이 아니어서 제 입장에선 당황스러웠다. 이게 어떤 식으로 재판에 작용할지 몰라서 걱정스러웠다. 현재는 당황스럽다는 말 밖에 드릴 수 없다"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재판 말미 피해 비서의 문자가 변수로 떠올랐지만 재판부는 인권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박 전 시장의 행위는 성희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 겁니다.

    사진공동취재단사진공동취재단
    22.11.15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 '인권위 권고 결정 취소 소송' 中
    재판부
    "관련 참고인들의 진술은 피해자의 주장에 부합하고, 해당 진술은 자신들이 직접 목격한 것을 내용으로 하며 시간, 장소, 상황 등을 상세히  밝히고 있어서 경험하지 않고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구체성이 있습니다"

    "피해자로서는 망인(박 전 시장)에게 거부 의사나 불쾌감을 표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자가 그동안 망인의 위 각 행위를 묵인한 것은 시장의 심기와 컨디션을 보살펴야 하는 비서 업무의  특성상 망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망인의 행위로 인해 초래된 불편함을 자연스레 모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결국 망인의 행위는 성적인 언동에 해당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성적인 굴욕감이나 불쾌감을 주는 정도에 이르러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특히 재판부는 박 전 시장 측이 주장한 '피해자다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진짜 피해자라면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박 전 시장 측의 주장을 지적한 것이죠.

    22.11.15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 '인권위 권고 결정 취소 소송' 中
    재판부
    "박 전 시장 측은 △피해자가 망인(박 전 시장)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했고 △해외 순방을 떠나는 망인에게 존경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손으로 직접 쓰기도 했고 △망인과의 셀카 촬영을 즐거워했으며 △피해자가 네일 아트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망인에게 자랑하기도 했으며 △4년 동안 피해를 호소하지 않았다는 등으로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고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합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대응 방식은 오히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망인(박 전 시장)은 피해자의 직장 상사 관계를 넘어서 피해자의 신분상 지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피해자로서는 자신의  성희롱 피해를 공론화하는 경우 자신에게 발생할 수 있는 직무상, 업무상  불이익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또 성희롱 피해를 받은 수치심으로 인해 피해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박 전 시장 측 주장은 '성희롱 피해자는 피해를 보는 즉시 어두워지고 무기력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성희롱 피해자라면 '이러한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라는 자의적인 생각에 기초한 것으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성희롱 피해자들의 양상을 간과한 것입니다"

    재판 말미 공개된 '사랑해요', '꿈에서는 돼요' 등의 메시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캠페인 차원에서 활용된 것이자 피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행위였다고 봤습니다. 실제로 '사랑해요'는 박 전 시장 지지 단체에서 캠페인 성 구호로 통용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22.11.15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 '인권위 권고 결정 취소 소송' 中
    재판부 
    "'사랑해요'라는 단어는 이성 사이의 감정을 나타낼 의도로 표현한 것이라기보다는 피해자가 속한 부서에서 동료 내지 상·하급 직원 사이에 존경의 표시로 관용적으로 사용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꿈에서는 된다'는 취지도 망인이 밤늦게 피해자에게 연락하는 것이 계속된 것에 비춰 보면 이를 회피하고 대화를 종결하기 위한 수동적 표현으로 봤습니다"

    대법도 "피해자의 다양한 모습 간과 말라"…법원의 변화

    결국 박 전 시장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이어 법원에서도 성희롱이 맞다는 판결을 받게 됐습니다. 박 전 시장 측이 법정 안팎에서 주장한 '피해자다움'도 법원의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최근 법원 판결을 보면 확실히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피해자라면 이래야 해',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피해자라고 보기 어려워'라고 하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배척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1심과 2심이 무죄로 판단한 강제추행 사건 등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며 사건을 되돌려 보냈습니다. 피해자다움을 인정한 원심 판결은 잘못됐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22.08.19 대법원 제3부, 강제추행 상고심 中 
    재판부
    "성폭력 범죄는 성별에 따라 차별적으로 구조화된 성을 기반으로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므로, 피해자라도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 전까지는 피해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고,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피해상황에서도 가해자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나이, 성별, 지능이나 성정, 사회적 지위와 가해자와의 관계 등 구체적인 처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아니한 채 통상의 성폭력 피해자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을 상정해 두고 이러한 통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섣불리 경험칙에 어긋난다거나 합리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22.09.29 대법원 제2부, 군인 등 강제추행 상고심 中
    재판부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범행 후 피해자의 태도 중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만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 사정이 존재한다는 이유 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 그리고 서울시장이자 대권 후보였던 박 전 시장은 유족이 낸 소송에서도 불명예를 벗지 못했습니다.

    피해자는 법원 결정으로 피해 사실을 인정받았지만, 텔레그램 메시지 논란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서로 상처뿐인 씁쓸한 결과만 남은 셈입니다. '피해자다움'을 보는 양측의 첨예한 시각차도 좁혀지지는 않은 듯 합니다. 박 전 시장 유가족들이 항소를 택한다면 이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가열될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법정B컷: 뉴스가 놓친 법정의 하이라이트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 CBS노컷뉴스 법조팀 기자들이 전하는 살아 숨 쉬는 법정 이야기 '법정 B컷'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법정B컷: 뉴스가 놓친 법정의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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