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임 >한 주를 팩트체크로 정리하는 모아모아 팩트체크입니다. 오늘도 팩트체크 전문미디어 뉴스톱 선정수 기자와 함께 합니다. 오늘은 어떤 주제를 준비했나요?
◆ 선정수 > 유사 이래 한반도에서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대량으로 특정 야생동물 종(種)이 사라진 적이 있을까 싶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 발병 이후 정부가 멧돼지 포획 정책을 추진하면서 전국 서식 멧돼지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마릿수로는 27만 마리 정도 된다고 합니다.
[청원경찰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조태임 > 27만 마리요. 그렇게 많은 멧돼지가 서식하고 있었군요. 어마어마하네요. 이 얘기는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가요?
◆ 선정수 > 지난 2일 중앙일보는 <490억 풀린 멧돼지 포상금…가장 많이 잡힌 곳, 강원 아니다>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 2019년 10월 15일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전국에서 ASF와 관련해 포획·사살한 야생 멧돼지가 모두 26만9521마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환경부에 사실여부를 확인했습니다. 환경부 남형용 야생동물질병관리팀장은 "중앙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자료를 요청했다. 보도된 내용은 사실"이라고 확인했습니다.
◇조태임 > 그런데, 이렇게 많이 포획하는게 맞는건지 의아한대요. 야생동물 전문가들의 의견 있을까요?
◆ 선정수 >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ASF 발병 이전 우리나라에 살고 있던 멧돼지를 40만~50만마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ASF 발병 이후 포획 또는 사살한 멧돼지가 원래 서식하던 멧돼지 전체의 절반이 넘은 셈이죠.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장은 "수시로 관찰 카메라에 촬영되던 멧돼지들이 ASF 대책 이후 한 달에 한두 차례 찍힐까 말까 하는 수준으로 사라졌다"고 전했습니다. 산에서 멧돼지가 사라졌다. 이런 반응입니다.
◇조태임 >절반 이상이 이번에 포획되거나 사살된건데….왜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멧돼지를 그것도 아주 대량으로 잡은거에요?
◆ 선정수 >
ASF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출혈성 돼지 전염병입니다. 심급성형 ASF는 임상증상이 시작된 지 1-4일 만에 돼지가 갑자기 죽고, 급성형은 발열이 시작된지 1주일만에 죽는다고 합니다. 한
무리 안에서 감염 돼지가 생기면 감염되는 비율이 매우 높고 급성형에 감염되면 치사율이 거의 100%에 이르기 때문에 양돈 산업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질병입니다.
◇조태임 > 양돈 업계에는 굉장히 큰 피해를 줄 수 있겠군요
아프리카돼지열병 돼지 살처분 (사진=CBS노컷뉴스) ◆ 선정수 > 국내 양돈 농가에서 ASF가 처음 발병한 것은 지난 2019년 9월 16일이었고, 비무장지대(DMZ)에서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되자 정부는 2019년 10월 15일부터 멧돼지 총기 포획을 허용했습니다.
멧돼지가 직간접적으로 사육 돼지에게 ASF를 전파시킬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입니다. ◇조태임 >실제로 멧돼지가 가축용 돼지 우리로 들어와서 바이러스를 퍼뜨린 건가요?
◆ 선정수 >
여태까지 ASF가 발병한 28곳에 대해 역학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멧돼지가 사육 돼지 우리로 들어왔다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멧돼지 사체에서 퍼진 바이러스가 주변 토양을 오염시키고 새나 쥐 같은 작은 동물들이 드나들거나 사람이나 차량이 주변 토양을 밟고 제대로 소독을 안 한 상태로 돼지 우리로 들어가면서 바이러스를 옮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조사됐습니다.
◇조태임 >그런데 좀 극단적으로,,,아프리카돼지열병 ASF 방역을 위해 멧돼지를 모두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면서요?
◆ 선정수 >
대한한돈협회는 2020년 10월 14일 성명서를 통해 "2019년 10월 9일 연천 한돈농가에서 ASF가 발생한 후 재발 방지를 위한 한돈농가와 방역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1년 만에 강원도 화천 사육돼지에서 발생했다"며 "이번 화천 ASF 발생은 ASF 야생멧돼지 통제에 책임을 지는 환경부의 정책 실패가 원인이다. 환경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책무를 다하고, ASF 확산과 재발방지를 위해서 하루 속히
야생멧돼지를 완전 소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ASF 국내 발병 초기부터 ASF 매개체를 멧돼지로 지목하고 야생멧돼지를 완전 소탕하라고 주장해왔습니다. 2020년에는 3년 동안 매년 75%씩 감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당초 50만 마리였던 멧돼지는 7800마리로 줄어들게 됩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연합뉴스◇조태임 > ASF 방역을 위해 멧돼지를 박멸해야 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국제기구들의 입장이 있을까요?
◆ 선정수 >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 관련 국제기구에 따르면 "질병 유행 단계에는 감염된 멧돼지의 수가 많기 때문에, 개체군 감축으로 질병을 박멸할 가능성(조금이라도 있다는 가정 하에)은 낮으며,
오히려 바이러스를 지리적으로 더 멀리 확산시킬 위험성이 높다"고 합니다. 멧돼지 규모를 감축시키는 방법은 고려할 수 있지만 박멸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는 입장입니다.
◇조태임 > 이 얘기는 지금 포획하고사살하는 방법이 오히려 지역적으로는 더 멀리 확산 시킬수 있다는 거네요.
◆ 선정수 > 자연생태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멧돼지가 우리나라 생태계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거든요.
나무 열매를 먹고 배설물을 통해 씨앗을 퍼뜨려 숲을 가꾸는 역할도 하구요. 덩치가 큰 멧돼지들이 지나다니면서
길을 만들어 작은 야생동물들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만들기도 하구요. 양돈농가 입장에서 보면 멧돼지는 철천지 원수로 느껴지겠지만 멧돼지는 그저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조태임 >저는 사진으로 보긴 했는데… 멧돼지가 이동하는 걸 막기 위한 철조망을 굉장히 많이 설치했다고 하던데요.
◆ 선정수 > 정부는 2019년부터 ASF에 감염된 멧돼지의 이동을 막기 위해
파주 휴전선 접경 지역을 시작으로 강원도 화천~고성, 홍천~양양, 경북 문경~울진 등 태백산맥 동서 지역을 가로지르는 2806km 구역에 광역 차단 울타리를 세웠습니다. 관련 예산으로 1,622억원이 투입됐습니다. 철조망을 설치해 멧돼지가 이동하는 것을 막아 ASF 확산 속도를 늦추겠다는 복안이었는데요.
산악지역인 우리나라 지형 특성상 멧돼지의 움직임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설치하는 것이 어렵구요. 도로 배수로 등 뚫려있는 부분이 있는데다가, 멧돼지가 힘이 세서 웬만큼 튼튼히 설치하지 않으면 넘어뜨려 버리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기존에 사람들이 다니던 곳은 통행 불편으로 인해 사람들이 뜯어버린 곳도 있구요.
◇조태임 > 실효성이 있지는 않았네요
◆ 선정수 >
그래서 5차 광역울타리 설치 이후 추가 설치는 중단된 상태입니다. 여기에 다른 야생동물 이동을 막아서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구요. 그런데 이게 뜯자니 또 막대한 비용이 들게 생겼습니다.
◇조태임 > 지금 철조방 비용도 그렇지만…ASF 방역에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고 하던데요?
◆ 선정수 > 1600억원을 들여서 철조망을 세우고, 멧돼지 포획 포상금으로 490억원이 지출됐거든요. ASF 관련 사육돼지 40만 마리가 살처분됐고요. 이 보상금으로 1380억원 정도 지출됐습니다. 합하면 3500억원 정도 됩니다.
이 돈을 양돈 농가의 차단방역 대책에 지원했더라면 이번 ASF 뿐만 아니라 다음 번에 다가올 가축전염병은 좀 더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결국 축산 농가가 외부 오염원으로부터 철저히 방벽을 쌓으면 가축전염병 우려는 굉장히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조태임 > 앞서 구제역 사태도 있었구요. 조류인플루엔자도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는데요. 매번 대량 폐사 소식이 들리고 농가들의 피해도 너무 크고 안타까운데..가축방역에 뾰족한 수는 없는 건가요?
◆ 선정수 > 네 앞선 사례들로 인해 우리 축산농가의 방역 수준과 의식이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조류인플루엔자 사태를 돌아보면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야생조류가 AI 바이러스를 품고 돌아다니다가요. 똥도 싸고 깃털도 묻히고 사체가 발생하기도 하면서 바이러스가 사육농가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개별 농가가 얼마나 철저히 외부와 차단을 하느냐에 따라 방역 성패가 갈립니다. 방역 시설 갖추고 방역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는 곳은 가축전염병 피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이번 ASF 감염 사례에 대한 정보가 모두 공개돼 있는데요. 하나같이 방역이 미흡했던 점이 지적됩니다. 사육장 주변에서 텃밭을 일군다든지, 작업자들이 각기 다른 돈사를 출입할 때 장화를 갈아신지 않는다든지, 출입하는 차량 소독이 미흡했다든지 하는 방역 허점들이 드러났습니다.
◇조태임 >
AI 바이러스가 야생조류에서 검출된다고 해서 야생조류를 다 박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잖아요. 야생조류가 AI 바이러스를 축사 근처까지 가져온다고 해도 결국 축사 안으로 바이러스가 들어가는 것은 방역 허점들을 통해서라면, 멧돼지도 마찬가지로 접근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고병원성 AI 의심 사례가 발생한 가금농장 통제. 연합뉴스 ◆ 선정수 > 그렇습니다. 멧돼지를 다 없앨 수도 없고요.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조태임 > 야생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 선정수 >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고 사람은 사람대로 살고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 되는데요. 인류의 역사는 자연을 상대로 벌여온 투쟁의 역사죠.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서 돼지를 사육하는 인간의 입장에선
멧돼지는 돼지 사육 시스템을 위협하는 전염병 매개체인 것이고요. 돼지 사육장을 지키기 위해서 멧돼지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고요. 멧돼지 입장에선 그냥 살아가는 것 뿐인데 어느날 인간에 의해 전염병 매개체로 낙인찍히고 대량학살을 당하는 겁니다. 결국엔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하는데서 한발 더 나아가서 생명과
자연생태를 사랑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려는 사람들이 더 목소리를 높여야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가령 돼지고기 소비자들이 멧돼지 학살을 멈춰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낸다면 양돈 산업계에선 이를 무시할 수 없겠죠.
◇조태임 > UN생물다양성협약이라는 국제협약이 있는데요. 우리나라도 1994년 이 협약에 가입했습니다. 자연생태계에 대한 국민 인식도 과거보다 굉장히 높아졌고요. 동물권에 관한 논의도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데요. 야생동물과의 공존, 자연생태와 인간의 공존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