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상구에 위치한 한 장애인 자립 생활 주택의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 없음. 김혜민 기자부산의 한 공동주택에서 발달장애인 가정의 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갈등이 경찰 수사로까지 번지는 일이 발생했다. 발달·중증 장애인 거주지 주변에서는 이같은 갈등과 논란이 반복되고 있어 공존을 위한 소통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파트 발달 장애인 가정 소음으로 이웃과 갈등…결국 경찰 조사까지
지난해 부산의 한 아파트에 이사 온 A(50대·여)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 졸이는 상황을 겪어왔다. 발달장애가 있는 30대 아들이 큰 소리를 낼 때마다 이웃집으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A씨의 아들은 평소에는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불안을 느끼거나 환경이 변할 때면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등 통제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해당 아파트로 이사 온 뒤에는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졌다. 위층에서는 물이 흐르는 소리 등 각종 생활 소음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들려왔다. 이 소리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A씨의 아들은 더 예민해졌고, 소리를 지르며 돌발 행동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A씨는 이웃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아야 했다. 심지어 A씨 집 소음으로 시끄럽다는 경찰 신고가 올해에만 4건이나 접수되는 등 갈등은 더욱 커졌다.
A씨는 "아들이 비교적 예민한 성향이 강한데 밤에 들리는 물소리나 환풍기 소리에 수면을 크게 방해 받아 처방약도 늘렸다"며 "며칠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자제가 안 되는 날에는 소음 때문에 옆집 할아버지께서 찾아와 항의했다"고 말했다.
이웃의 불만은 결국 위협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A씨 집 소음에 항의하던 이웃 B씨는 A씨 집에 찾아가 욕설을 하며 둔기로 방범창을 긁거나 발로 대문을 차며 위협했다. B씨의 폭력적인 행동은 반복됐고, 결국 지난달 A씨 집의 방충망이 훼손되는 일까지 생겼다.
참다못한 A씨 역시 이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사실관계를 확인한 끝에 재물손괴 혐의가 인정된다며 이웃 B씨를 입건했다. 다만 조사 과정에서 A씨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처벌은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부산 모 경찰서 관계자는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도 심한 소음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긴 했지만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건 인정하고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피해자도 현재 상황을 고려해 처벌이나 피해보상을 원하지 않고 있는 점도 수사에 참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증·발달 장애인 생활공간 곳곳에서 갈등 이어져…"편견 버려야"
부산 사상구에 위치한 한 장애인 자립생활주택의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 없음. 김혜민 기자장애인 관련 단체는 부산지역 곳곳의 장애인 주거지에서 이런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은 A씨 가정과 같은 발달장애인의 돌발행동에 따른 소음으로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최근 사상구의 한 공동주택에서는 발달장애인이 호기심에 창문으로 옆집을 보다가 이웃으로부터 크게 항의를 받은 사례도 접할 수 있었다.
심지어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불만을 표현하거나 기침 소리만 내도 소음이 난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까지 있다는 게 장애인단체 주장이다.
장애인 여러 명이 모여 사는 '자립 생활 주택'의 경우 장애인 사이의 왕래나 모임이 잦은 만큼, 입주 전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다고 단체는 전했다.
사상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전혜주 사회복지사는 "장애인 거주지의 '소음'이 아닌 '존재' 자체에 불만을 가지는 사례가 많다"며 "자립주택의 경우 이웃과 갈등을 빚지 않기 위해 사전에 이해를 구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최근들어 주민과 소통창구가 대부분 사라져 어려움은 더 심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비장애인 거주지 주변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웃 간 소통의 계기를 마련해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혜영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은 "서울 마포구에서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웃이 서로 교류하는 '옹호가게 프로젝트'를 마련해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한 사례가 있었다"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웃이 서로 대화할 기회를 만들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각자 다른 이유로 고유한 행동을 하는 만큼, 장애인에게도 개별적으로 접근해 욕구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장애에 초점을 두고 제도적인 접근만 강조한다면 장애인을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결국 또다른 차별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