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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최강 한파·난방비에 시름하는 취약계층…내몰린 주거빈곤 아동

사건/사고

    [르포]최강 한파·난방비에 시름하는 취약계층…내몰린 주거빈곤 아동

    영하 10도 넘나드는 한파에 난방비 부담 증가

    전국에 많은 눈과 함께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한파가 시작된 가운데 취약계층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국제 유가 상승으로 기름 및 가스 요금이 크게 오르면서 주민들의 겨울나기는 올해 더 힘들어졌습니다. 지자체나 종교단체·시민단체 등이 한파를 근근이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도우려 나서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은데다 비용도 만만치 않아 고전하고 있습니다. 뿐만 외국인 국적의 취약계층, 한부모 가정 등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이마저도 지원 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최악 한파 속 서울 쪽방촌·달동네 '백사마을' 가보니
    웃풍 막으려 외벽 비닐로 감싸…냉골에 이불도 '역부족'
    불황에 코로나로 연탄은행 후원 '뚝'…목표치의 절반수준
    전국 주거빈곤 아동가구 21만…지하·옥상 거주 4만 가구
    "성장기 건강·학습능력 영향…아동 중심 주거안전망 절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는 건물 61채에 빽빽하게 들어찬 쪽방이 1170칸엔 난방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많아 주민들은 전기장판과 이불에 의지해 추위를 견딘다. 박희영 기자서울 용산구 동자동에는 건물 61채에 빽빽하게 들어찬 쪽방이 1170칸엔 난방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많아 주민들은 전기장판과 이불에 의지해 추위를 견딘다. 박희영 기자
    전국에 많은 눈과 함께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한파가 시작된 가운데 취약계층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특히 국제 유가 상승으로 기름 및 가스 요금이 크게 오르면서 주민들의 겨울나기는 올해 더 힘들어졌다.

    쪽방촌·백사마을…취약계층에 더 가혹한 한파

    23일 오전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한가운데 자리 잡은 새꿈어린이공원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흰 연기를 내뿜는 커다란 냄비에서 호박죽을 퍼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박희영 기자23일 오전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한가운데 자리 잡은 새꿈어린이공원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흰 연기를 내뿜는 커다란 냄비에서 호박죽을 퍼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박희영 기자
    서울 기온이 최저 영하 14도, 체감온도는 영하 22도까지 떨어진 23일 오전,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한가운데 자리 잡은 새꿈어린이공원. 자원봉사자들이 흰 연기를 내뿜는 커다란 냄비에서 호박죽을 퍼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인근 등불교회 정우제 목사는 "호박죽 드시러 나오세요"라고 외치며 주민들을 불러 모았다. 이날 쪽방촌 주민들은 한파 때문에 대부분 외출을 자제한 채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주민들이 나오지 않자 자원봉사자들이 쟁반에 뜨거운 호박죽을 나눠 담아 직접 방까지 날라다 줬다.

    정 목사를 따라 슈퍼마켓 옆 작은 통로로 들어가자 길게 난 복도 양옆으로 나무문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정 목사가 어르신을 부르며 방문을 열자 성인 남성 한명 겨우 누울 수 있는 방이 나왔다. 한기가 가득한 쪽방에 누워있던 김모(68)씨는 패딩점퍼를 입은 채 1인용 전기장판 위에서 이불까지 꽁꽁 싸매고 있었다. 방안인데도 "난방시설 설치가 따로 안 돼 있어 춥다"고 말하는 김씨의 입에선 하얀 입김이 나왔다.

    동자동에만 건물 61채에 빽빽하게 들어찬 쪽방 1170칸. 그나마 난방시설이 설치된 쪽방에 사는 고모(77)씨는 "가스가 비싸서 난방을 못 한다"며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고 잔다"고 말했다. 또 올해만 20%가량 오른 전기요금도 쪽방촌 주민들에겐 부담이다. 고씨는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니 주인 눈치 보여서 전기장판도 오래는 못 튼다"고 말했다.

    매서운 한파를 피할 쪽방 한칸마저도 지원받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중국 국적의 80대 여성 김모씨가 동자동 한 폐건물 옥상 계단을 판자와 비닐 등으로 허술하게 막아 만든 보금자리를 찾았다. 겹겹이 쌓인 이불과 비닐 등을 걷자 김씨의 1평(약 3.3㎡) 남짓한 안식처가 나왔다. 정 목사는 "한국 국적을 얻지 못해서 병원비, 기초생활수급 등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달한 23일 찾은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달동네 '백사마을'은 집집마다 처마 끝에 고드름이 길게 달려있었다. 군데군데 주민들이 떠난 빈집에 표시한 빨간 동그라미가 마을에 한기를 더했다. 박희영 기자 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달한 23일 찾은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달동네 '백사마을'은 집집마다 처마 끝에 고드름이 길게 달려있었다. 군데군데 주민들이 떠난 빈집에 표시한 빨간 동그라미가 마을에 한기를 더했다. 박희영 기자 
    서울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로 불리는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은 집집마다 처마 끝에 고드름이 길게 달려있어 한기를 더했다. 군데군데 세입자들이 떠나고 남은 빈집 대문엔 빨간 페인트로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마을 초입에서 뻥튀기·곡물가게를 운영하는 80대 여성 황모씨는 가게 안 2평(약 6.6㎡) 남짓한 좁은 방구석에서 연탄난로와 전기장판에 의지해 추위를 이기고 있었다. 근처 작은 방에서 혼자 지낸다는 황씨는 "세입자들이 많이 이주해나갔다"며 "용돈이나 벌려고 나와 있는데 오늘은 추워서 (사람들이 안 나와) 1000원도 못 팔았다"고 했다.

    백사마을에서 아내와 성년이 된 미혼 아들과 함께 사는 80대 남성 김모씨는 "집안에 세 군데에 연탄난로를 땐다"며 "방안에서도 목에 (넥워머까지) 감는데, 아파트 같은 데선 누가 옷을 목까지 올리고 있겠냐. 그래도 춥다. 이불 덥고 있는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기름값이 너무 비싸 연탄만 때면서 버틴다"며 "세수도 난로 위에 큰 대야를 놓고 데운 물을 쓴다"고 말했다. 김씨의 아내 박모(81)씨도 "기름값 아끼느라고 목욕도 잘 안한다"고 덧붙였다. 연탄을 아무리 때도 바닥은 차갑다는 박씨는 "구에서 지원해준 전기장판도 1인용이라 (함께 사는 막내아들과) 세 식구가 쓰기에는 너무 작다"고 말했다.

    백사마을을 돌며 집집마다 쓰레기봉투를 나눠주고 있던 통장 김모(60)씨는 "날이 추워 보일러를 계속 틀어놔야 하는데 기름값이 너무 비싸다"며 "한 달도 안 돼 (등유) 1드럼을 다 썼다"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지자체나 종교단체·시민단체 등이 한파를 근근이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도우려 나서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은데다 비용도 만만치 않아 고전하고 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서울역쪽방상담소 직원들이 순찰을 하며 지원이 필요한 주민들에 후원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원구청 관계자도 "경로당에 11월부터 3월까지 5개월간 난방비를 지원하고 있다"며 "주말에도 경로당을 열어 어르신들이 계실 수 있는 한파쉼터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어 한국에 정착했지만 외국 국적을 가진 이들은 이마저도 지원받지 못한다. 용산구청 측은 "(동자동에 거주하는 중국 국적 김 할머니에 관해서는) 노숙인복지법에 외국인 지원책에 관한 법적 근거가 없어 대사관 등에 연결해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경기가 좋지 않아 연탄 기부 등 각종 후원이 감소한 것도 쪽방촌 등 주거빈곤층의 고통을 키우는 요인이다.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연탄은행에 따르면 올해 전국 쪽방촌 등에 연탄 300만 장을 배포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재까지 배포한 연탄은 약 170만 장에 불과하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코로나 전에는 500만 장 이상 나눴다"며 "3월까지 뗄 수 있는 연탄을 방 안에 좀 채워드려야 되는데 그러지 못해서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또 허 대표는 "요즘 같은 겨울엔 가정당 등유 1.5드럼(300ℓ)이 필요한데, 약 40만원 정도 된다"며 "월 소득 30만원이 넘지 않는 주민들이 부담하긴 어렵다"고 전했다. 연탄은행에서 등유를 지원하려고 해도 가구당 40만원이 들어 장당 800원인 연탄에 비해 부담이 크다. 그는 "연탄은행 재정상 등유는 약 30가구밖에는 지원을 못 했다"고 말했다.

    한파에 내몰린 주거빈곤 아동…"아동 중심 주거대책 마련을"

    23일 서울의 한 옥탑방에서 초등학생 아이와 5살 아기를 키우는 한 가정은 거실 바닥에 전기장판을 깔고 두꺼운 외투를 입고 생활한다. 단열이 안 돼 집안 온도는 14도를 가리켰다. 박희영 기자23일 서울의 한 옥탑방에서 초등학생 아이와 5살 아기를 키우는 한 가정은 거실 바닥에 전기장판을 깔고 두꺼운 외투를 입고 생활한다. 단열이 안 돼 집안 온도는 14도를 가리켰다. 박희영 기자
    추위를 막지 못하는 열악한 주거환경은 자라나는 아동에겐 훨씬 악영향이 크다. 관악구 신림동에서 아이 셋을 키우는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30대 여성은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해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구옥이라 난방비가 많이 나가는데 2살짜리 아기가 있어 난방을 계속 돌려야 한다"며 난방비에 대한 부담을 토로했다. 창문마다 웃풍을 방지하기 위해 담요를 덧대어놨지만 침대 머리맡엔 한기가 들어왔다. 집안 온도계는 14도를 가리켰다.

    노원구 상계동 반지하방에서 고3 아들을 홀로 키우는 우모씨는 "단열이 안 돼 추운 방 쪽에 뽁뽁이를 붙였다"며 "올겨울 가스값이 올라서 (난방비) 더 나올 것 같은데 아껴 쓰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 사회에서 아동과 청소년의 돌봄을 책임지는 지역아동센터도 한파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았다. 서울의 한 상가건물 3층에 자리한 지역아동센터에는 25명의 초등학생이 다닌다. 센터장 김모(60)씨는 "냉난방비 명목으로 40만원을 받았는데 이미 다 썼다"며 "1~2월 한달에 난방비가 40~50만원씩 나온다"고 말했다. 센터를 찾은 아이들 중에는 방바닥이 차갑다며 연신 뛰어다니는 아이와 외투를 그대로 껴입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통계청이 지난 2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21만 아동가구(아동 35만명)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 조건'을 뜻하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했다. 이들 중 지하·옥상에 4만 가구, 주택 이외의 거처엔 3만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주거빈곤 아동가구는 서울 9만 가구(아동 13만명), 경기 6만 가구(아동 10만명), 인천 2만 가구(아동 3만명)로 전체 주거빈곤 아동가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돼있다.

    또 '2020년 서울시 아동가구 주거실태조사 및 정책개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겨울에 적정 실내 온도를 유지하지 못하는 비율이 주거빈곤 아동가구는 34.3%에 달했다. 특히 지하·옥상 거주할 경우 겨울철 적정 실내 온도를 유지하지 못하는 비율이 62.4%로 크게 높았다. 주요 이유는 △난방비용 절약(16.9%) △단열 안 됨(16.8)이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추위 등 열악한 주거환경이 성장기 아동 건강·학습기회·교우관계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신혼부부·청년 등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원받지 못했던 아동이 중심이 된 주거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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