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지난 10월 20대 노동자가 식품 혼합기에 끼여 숨지는 사고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SPC 그룹 계열사에 대해 노동부가 '기획감독'을 벌였다.
그 결과가 27일 발표됐는데 전체 사업장의 약 90%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게다가 총 12억 원을 넘는 임금체불 사실도 확인됐다.
기획감독은 한마디로, 노동부가 작정을 하고 조사에 나섰다는 얘기다.
지난 10월 15일 SPL 제빵공장에서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일주일여 만인 같은 달 23일 샤니에서 40대 노동자가 박스 포장기에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또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허영인 SPC 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안전관리시스템 재점검 다짐이 있었는데도 연이어 중대 사고가 터진 것이다.
이에 노동부가 SPC에 엄중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지난 10월 28일부터 지난달 25일까지 근 한 달간 대대적인 안전관리 실태 점검을 벌였다.
그랬더니 조사 대상 58개 사업장의 무려 86.5%인 45개 사업장에서 277건의 산업안전법 위반 사항이 드러났다.
전체의 90%에 육박하는 사업장에서 또다시 비극적인 산재사망사고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사망사고 유발 '식품혼합기' 40대 자율안전확인신고 없이 사용
20대 근무자 사망사고 발생한 평택공장 내부. 연합뉴스우선, 지난 10월 20대 노동자 목숨을 앗아갔던 위험기계 식품혼합기가 자율안전확인신고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었다.
노동부가 사용중지 조치를 했는데 사용중지된 식품혼합기가 마흔 대나 된다.
기계 덮개 등 방호장치를 설치하지 않는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도 지키지 않았고, 안전·보건관리자를 선임하지 않거나 선임했더라도 다른 업무를 시킨 사례도 있었다.
또, 산재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살펴야 재발을 막을 수 있을 텐데 관련 기록을 남기지 않은 사업장도 적발됐다.
산업안전을 챙기려면 당연히 비용이 소요되는데 산업안전관리비를 계상하지 않는 등 갖가지 법 위반 사항이 드러났다.
노동부는 이와 관련해 총 6억여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26개 사업장 대표 등은 사법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산업안전 방치뿐 아니라 임금체불, 모성보호 외면까지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지난 10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마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박종민 기자노동부는 산업안전 분야뿐 아니라 근로기준 관련 분야 감독도 벌였다. 15개 계열사 33개 사업장이 대상이었다.
감독 결과, 체불임금 규모는 12억 원을 넘었다.
체불임금 대부분은 노동자 약 3만 명에게 지급됐어야 할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으로, 모두 11억 5600만 원이다.
연차수당과 상여금, 퇴직금 등 체불 규모도 각각 수천만 원이다.
배우자 출산휴가 10일을 제대로 부여하지 않거나, 출산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노동자에게 주 6시간인 연장근로한도를 넘어 일을 시킨 사례도 있었다.
노동부는 임금체불 등과 관련해서도 총 7천여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사법처리 등 후속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다.
산업안전 방치에 임금체불, 모성보호 외면 등 SPC 행태를 보면 '악덕기업'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별로 없을 지경이다.
SPC뿐 아니라 전국 위험기계 사업장도 안전불감증 심각
연합뉴스
노동부는 SPC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식품 혼합기 등 위험기계 집중단속을 벌였다.
지난 10월 24일부터 이달 2일까지 6주 동안 전반 3주는 계도기간으로, 나머지 3주는 불시감독으로 나뉘어 단속이 이뤄졌다.
계도기간은 2899개 사업장, 불시감독은 2004개 사업장이 단속 대상이었다.
먼저, 계도기간에는 법 위반 사업장(15712개) 비율이 54% 정도였다.
그런데 계도기간을 거치고 이뤄진 불시감독에서도 위반 사업장(1073개) 비율이 여전히 54% 수준이어서 산업안전 불감증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