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팔달구 못골시장. 이준석 기자"사람은 확실히 늘었는데, 손님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니 오히려 매출은 떨어졌어요. 이제 명절 대목은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에요."
설 연휴를 앞둔 20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못골시장. 4m 가량의 통로는 시장을 찾은 인파로 발 디딤 틈도 없었다. 곳곳에서는 물건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와 각종 음식 냄새가 새어 나왔다.
한 반찬가게 상인은 인파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계속해 가격만 물어보고 발길을 돌리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한 주부는 잠시 망설인 뒤 결심한 듯 자리를 떠났다.
그는 "명절을 맞아 전이라도 사 먹을까 했는데, 가족 4명이서 먹으려면 1만5천원짜리 모듬 전으로는 어림도 없겠다 싶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반찬가게 사장 강모(63·여)씨는 "한파로 채소 가격이 폭등해 반찬 가격도 많이 올랐다"며 "아까는 명절 때마다 오던 단골이 왔는데, 이것저것 사갈 것처럼 가격을 묻더니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곡물가게 상인 한모(64)씨도 "이전에 두되를 사갔던 사람도 한되만 사가니 매출이 오를리 있겠냐"며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 장사할 마음도 사라진다"고 토로했다.
엎친 데 덮친 고양시…지역화폐 인센티브까지 사라져
고양시 원당시장. 이준석 기자고양시 전통시장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본예산 처리가 늦어져 올해에는 경기도내 시군 중 유일하게 지역화폐(고양페이) 인센티브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양시 원당시장에서 10년 넘게 정육점을 운영한 이모(35·여)씨는 "작년에는 대부분이 지역화폐를 썼는데, 올해는 다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내민다"며 "혜택이 줄다보니 손님이 줄고 매출도 덩달아 떨어졌다"고 푸념했다.
소비량이 줄어 가격이 떨어져 매출 상승을 기대했던 과일 가게도 직격탄을 맞았다.
거리두기 해제 이후 첫 설을 맞아 다양한 선물세트를 준비했다는 한 과일 가게 사장은 냉장고에 가득 쌓인 상자를 가리키며 "경기가 안 좋으니 사람들이 선물을 꺼려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인근 과일가게 상인도 "지난해 설날과 비슷하게 물건을 준비했는데, 20%도 팔리지 않았다"며 "준비한 물량을 다 팔지 못하면 손해를 보더라도 헐값에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한숨도 깊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주부 현모(59·여)씨는 "예전에 5만원을 들고 시장에 오면 두 손 무겁게 집에 돌아갔는데, 요즘은 가격이 올라 만족할 만큼 사지 못한다"며 "단돈 만원이라도 혜택이 있으면 그만큼 사겠는데, 그것조차 없어졌으니 부담이 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검은 봉지 하나만 들고 시장을 빠져나온 임모(47·여)씨도 "올해 아파트 대출 금리가 1% 올라 작년 대비 한달에 40만원을 더 내야 한다"며 "지출이 늘어난 만큼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꼭 필요한 물건만 샀다"고 했다.
할인 폭탄 내세운 대형마트와 경쟁까지
못골시장의 환급행사 안내문. 이준석 기자
대규모 할인을 내세운 대형마트와의 경쟁도 전통시장을 더욱 힘겹게 하고 있다.
앞서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3일 국회에서 '설 민생안정 대책 관련 민·당·정 협의회'를 열고 대형마트 최대 50% 할인, 118만 취약가구에 연료비 지원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이에 맞춰 이마트는 2023년 설 세트 가격을 지난해 설·추석 가격으로 동결해 오는 22일까지 판매한다. 홈플러스는 23일까지 선물세트를 구매한 고객에게는 최대 40% 할인이나 최대 50만원 상품권을 증정한다. 롯데마트도 비슷한 내용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전통시장을 돕기 위해 14~21일까지 농·축·수산물을 구입하면 최대 30%'(1인당 2만원 한도)를 온누리상품권으로 지급하고 있지만, 상인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경기도상인연합회 관계자는 "전통시장도 페이백 행사나 할인 행사가 있지만 대형마트와 비교하면 체감이 어려운 수준"이라며 "향후 대형마트 규제가 완화되는 점을 고려해서라도 전통시장을 살릴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