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거미의 20주년 전국 투어 '비 오리진' 서울 공연이 4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렸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제 음악 들어보셨다면 오늘 공연이 절대 힘들거나 어렵진 않으실 겁니다. 조정석의 와이프, '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 이런 식으로 저를 알고 계신 분들도 있을 거예요. (일동 웃음) 그렇지만 전 괜찮습니다. 20주년 기념 콘서트이다 보니까 어떤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도 중요하지만 제 음악을 들어주신 많은 분들을 위해서 이분들에게 제 음악과 관련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다, 그런 시간을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 공연은) 최대한 저의 대표곡들로 이루어져 있을 거예요."
본인을 잘 모르더라도, 어떤 노래가 있는지 잘 모르더라도 결코 다가가기 어려운 공연이 되지는 않을 거라던 거미의 말은 맞았다. 더불어 "저 어렵거나 무서운 사람 아닙니다"라고 했던 말도 이해가 됐다. 2003년 데뷔해 올해 20주년을 맞은 거미는 조금만 들어도 '아, 이거!' 할 만한 노래를 대거 보유한 가수였고, 노래만큼이나 유머 감각과 진행 능력도 갖춘 프로였다.
4일 저녁 6시 4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장내가 어두워졌다. 거미의 20주년 투어 '비 오리진'(Be Origin)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거미는 풍성하면서도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데뷔곡 '그대 돌아오면'을 불렀다. 다음 곡은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였다. 거미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가장 유명하고 널리 사랑받은 곡이 처음부터 등장했다. '이 노래 나올 때 나 뭐 하고 있었지' 하는 관객들의 개인적인 추억을 상기하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해, 발표순으로 공연 순서를 짜 봤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거미는 이날 콘서트에서 몇몇 곡의 피아노 연주를 직접 했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이날 공연에서 거미는 자신이 '어렵거나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 번 언급했다. 관객에게 최대한 친근한 곡 위주로 준비한 것은 물론, 스스럼없이 관객과 대화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오프닝을 마치고 선 무대에서 팬들의 함성이 예상보다 길게 이어지자 더 마음껏 해 보라고 권하는가 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손 들고 해도 된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물을 마시는 모습에 터져 나온 환호를 듣고는 "소리 질러주는 거 좋아!"라며 웃었다.
거미 노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곡이 너무 빨리 등장한 게 아닐까 싶었으나, 이후 노래들도 만만치 않았다. '기억상실' '어른아이' '미안해요' '그대라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억상실' 무대 때는 거미가 마이크를 넘겨 '보이지 않아 아직도 더듬거리는 손으로'라는 부분은 관객 몫이 됐다.
미러볼에서 착안한 듯한 반짝이 수트 차림으로 한 '어른아이' 무대에서는 흥이 달아올랐다. '착한 아이처럼 시키는 대로 했는데'라는 도입은 공연장을 채운 관객들과 함께 채웠다. 곡의 마지막 가사인 '울고 웃네'는 고음인 데다가 어느 정도 기교도 필요한 고난도 파트여서 한 차례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관객들의 떼창으로 끝맺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이날 공연의 첫 곡은 거미의 데뷔곡 '그대 돌아오면'이었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맑은 피아노 연주로 귀를 사로잡았다가 사뭇 다른 분위기로 편곡한 '미안해요' 무대에서는 직접 랩을 선보여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단순히 '소화'하는 수준을 넘어, 발음과 전달력, 감정 표현까지 삼박자가 맞았다.
밴드의 생생한 라이브 연주는 공연에 더 몰입하게 하는 일등공신이었다. 기타(2), 키보드, 베이스, 피아노, 코러스(2), 퍼커션, 드럼은 물론 14인의 오케스트라가 노래에 맞게 수준급의 연주를 들려줬다. 각자의 장기를 뽐낼 수 있었던 밴드 소개 시간이 새삼 반가웠던 이유다.
그동안 낸 곡 중 이별 노래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기에, 거미는 스스로를 '이별 노래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별 노래는 다채로웠다. 전자 기타 소리가 귀를 때리는 느낌이었던 '사랑은없다'는 강렬한 록 트랙 그 자체였다. '눈꽃'은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특히 거미의 '여린' 음색을 감상하기에 맞춤한 곡이었다. 그의 장기는 폭발적인 고음만이 아니었다. 음량의 크기의 세기, 감정 표현까지 강약 조절 능력에 감탄이 나왔다.
게스트로는 다이나믹 듀오가 등장해 '죽일 놈' '고백' '출첵' '불꽃놀이'를 불렀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중반부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날 게스트는 힙합 듀오 다이나믹 듀오였다. 무대에 모습을 보이자마자 크나큰 환호를 받은 이들은 '죽일 놈'(Guilty)을 첫 곡으로 선보였다. 최자는 "거미 콘서트 분위기는 이런 느낌이구나", 개코 "이렇게 얌전하게…"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세 곡을 붙인 한 곡을 할 거라고 예고한 다이나믹 듀오는 '고백'(Go Back) '출첵' '불꽃놀이'(Fireworks)를 연달아 불러 에너지를 쏟아냈다.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열광적으로 무대를 즐겼다.
다이나믹 듀오 무대가 끝나고 나타난 거미도 관객들에게 일어나서 같이 하자고 유도했고 '러브 레시피'를 불렀다. 이별 노래가 아닌 '사랑 노래'라는 점도 그랬지만 아기자기하면서 산뜻한 화면이 나온 건 '러브 레시피'가 처음이었다. 다음 곡 '스페셜 러브'(Special Love)에서는 거미의 남편이자 배우인 조정석이 화면으로 등장해 거미와 멋진 듀엣 무대를 꾸몄다.
'리무진' '으르렁'(Growl) '거짓말' '하트브레이커'(Heartbreaker) 메들리는 거미의 색다른 모습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본인 곡보다 랩 비중이 컸는데도 조금의 어색함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공연에서) 신나게 할 만한 (제) 곡은 별로 없어서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곡들을 불러봤다"라며 "여러분들 덕분에 잘 놀았다"라고 전했다.
가수 거미.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눈꽃' '그대라서' '죽어도 사랑해' '유 아 마이 에브리띵'(You Are My Everything) 같은 드라마 OST도 세트리스트를 차지했다. 본 공연의 마지막 곡은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2'의 OST '너의 하루는 좀 어때'였다. 거미는 "저도 나이를 먹고 행복하다. 나름 가정을 이루고 아이도 너무 예뻐서 삶의 흐름에 따른 노래를 부르고 싶더라. 그중에서 제가 여러분의 안부가 궁금할 때 찾게 되는 노래"라고 소개한 바 있다.
앙코르는 지난달 27일 발매한 신곡 '그댈 위한 노래'였다. 관객들은 휴대폰 플래시를 켜 눈부신 반짝임을 선물했다. 거미는 "이런 기념일(20주년)에는 사실 정규앨범이나 미니앨범을 발표해야 하는 게 맞다. 근데 그렇게 하자니 제가 너무 여유가 없다. 애 키우느라고. 정말 사실이다. 아이가 아직 너무 어려서 조금은 더 애기한테 신경을 쓰고 싶어서 근데 그냥 지나치기 너무 아쉬웠다"라며 팬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틈틈이 작업한 곡이라고 설명했다.
거미는 "20년 동안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게 제 음악을 들어주시는 분들이 계신 덕이니까, 여러분 덕분에 힘을 얻고 여러분 덕분에 살아간다. 저의 노래를 듣는 순간만이라도 (여러분이) 힘을 얻으셨으면 해서 들려드렸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거미는 '어른아이'를 이날 두 번 선보였다. 한 번은 혼자, 한 번은 듀엣 무대를 꿈꿨던 팬과 함께 꾸몄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가장 큰 호응을 받은 구간은 '즉석 무반주 라이브'였다. 세트리스트에 포함되진 않았으나 관객이 불러달라고 요청한 곡을 한두 소절 짧게 부르는 시간이었다. '비커즈 오브 유'(Because Of You) '날 그만 잊어요' '인연' '혼자만 하는 사랑' '통증' '해줄 수 없는 일' 등 여러 곡을 불렀다.
무대에 설 때 가장 행복하다고 밝힌 거미는 20주년을 돌아보는 셀프 다큐멘터리 상영은 물론,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때론 참여를 유도하며 공연을 치렀다. 생일을 맞은 관객에게는 생일 축하 노래를 들려줬고, 팬들의 사연을 받아 함께 사진을 찍고 영상 편지를 보낼 기회를 마련했으며, 꼭 한 번 듀엣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팬과 함께 '어른아이'를 불러 감동과 웃음을 선사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20주년 전국 투어의 대장정을 마칠 서울 공연 마지막 날 공연은 오늘(5일) 저녁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