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과 흥국생명 아본단다 신임 감독(사진 오른쪽). 한국배구연맹그토록 고대하던 정규 리그 1위로 올라선 가운데 공석이던 감독직까지 채워졌다. 흥국생명이 우승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흥국생명은 지난 19일 새 감독 선임을 발표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명장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53)이 새롭게 흥국생명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구단은 "유럽 유수의 리그에서 활약한 최정상급 감독으로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유럽식 훈련 시스템을 도입해 팀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아본단자 감독은 1996년 이탈리아 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대표팀 코치, 불가리아, 캐나다, 그리스 대표팀 감독을 연임했다. 또 라비타 바쿠(아제르바이잔), 페네르바체(튀르키예), 차네티 베르가모(이탈리아) 등 세계적인 클럽을 이끌었다.
'배구 여제' 김연경(35·흥국생명)과도 인연이 깊다. 2013-2104시즌부터 4시즌 동안 튀르키예 리그 페네르바체에서 두 차례 리그 우승과 준우승, 유럽배구연맹(CEV)컵 우승 등을 함께 일궜다. 아본단자 감독이 2016-2017시즌을 마치고 자국 리그로 돌아간 뒤 두 사람은 흥국생명에서 6년 만에 재회했다.
아본단자 감독은 지난 18일 입국해 흥국생명과 계약을 마무리했고, 이날 선임 발표가 나자마자 GS칼텍스전을 관전하기 위해 서울 장충체육관을 찾았다. 아직 비자 등 등록 관련 절차가 완료되지 않아 경기를 직접 지휘하진 못했지만 경기장을 찾은 흥국생명 팬들과 첫 인사를 나눴다.
흥국생명 선수들은 아본단자 감독이 지켜보는 앞에서 짜릿한 세트 스코어 3 대 1(22-25, 25-18, 25-17, 25-23) 승리를 거뒀다. 승점 3을 따내며 22승 7패 승점 66으로 1위를 공고히 했다. 2위 현대건설(승점 62)와 격차를 4로 벌렸다.
흥국생명 권순찬 전 감독. 한국배구연맹흥국생명은 한 달 넘게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치러 왔다. 권순찬 전 감독이 지난달 2일 돌연 경질된 뒤 선장 없이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처음 대행을 맡은 이영수 수석 코치는 1경기 만에 사의를 표명했고, 새 사령탑으로 낙점된 선명여고 김기중 감독마저 감독직을 고사했다. 이에 김대경 코치가 감독 대행이라는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
당시 팀을 정규 리그 2위로 이끌던 사령탑을 부임 8개월 만에 쫓아낸 것은 납득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일각에서는 구단 윗선이 선수 기용에 개입했고, 권 전 감독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경질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흥국생명의 팀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감독직이 비어 있는 상황에서도 11경기 8승 3패, 김대경 감독 대행 체제에선 10경기 7승 3패로 호성적을 이어갔다.
흥국생명 김연경. 한국배구연맹그 중심에는 김연경이 있었다. 위기에 빠진 팀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들기 위해 코트 안팎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세계적인 선수로 명성을 떨친 그의 영향력은 팀은 물론 배구계 전체에 크게 끼쳤다.
먼저 김연경은 윗선의 선수 기용 개입 논란에 대한 구단의 해명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구단이 덮으려던 잘못을 바로잡고 팀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코트 안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통해 팀의 내홍을 수습하고 상승세를 이끌었다.
그런 김연경이 최근 은퇴를 고민 중이라고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시즌 중 확실한 의사를 전할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을 마치면 FA(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되는 그의 거취에 대한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만약 올 시즌이 마지막이라면 김연경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코트를 떠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흥국생명은 최근 현대건설을 제치고 1위를 탈환해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내홍을 딛고 일어선 흥국생명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좋다. 하지만 언제까지 감독직을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현재 정규 리그 7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우승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인 사령탑이 필요했다.
새 감독이 김연경의 옛 스승인 만큼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아졌다. 김연경이 새롭게 흥국생명의 지휘봉을 잡은 아본단자 감독과 함께 '라스트 댄스'를 화려하게 장식할지 이목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