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경기 출전에 단 1경기 만을 남겨둔 현대캐피탈 여오현. 한국배구연맹'리빙 레전드' 여오현(45·현대캐피탈)의 대기록 달성이 미뤄졌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아무래도 홈 팬들과 영광의 순간을 함께 하길 바라는 듯하다.
2022-2023시즌 도드람 V리그 현대캐피탈과 KB손해보험의 5라운드 맞대결이 열린 18일 경기도 의정부체육관. 이날 여오현은 역대 V리그 최초 정규 리그 600경기 출전에 단 1경기 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최 감독은 경기 전 여오현의 출전 여부에 대해 "최근 경기력이 좋지 않다. 기록을 위해 경기에 나서는 건 아닌 것 같다"면서 "경기 상황에 따라 판단할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자칫 팀의 패배로 여오현의 대기록이 빛을 바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후배인 박경민이 주전 리베로로 나서 풀타임을 소화했고, 여오현의 출전은 불발됐다. 이에 최 감독은 "오늘 (박)경민이가 너무 좋았다. 경기를 앞두고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현대캐피탈 입장에선 KB손해보험전 승리가 절실했다. 당시 18승 10패 승점 55(2위)로 1위 대한항공(승점 59)을 4점 차로 쫓고 있었다. 최 감독 입장에선 베테랑에 대한 예우도 중요했지만 팀의 선두 도약을 이끄는 것이 급선무였다.
현대캐피탈은 최 감독의 냉철한 판단과 선수들의 투혼을 통해 KB손해보험을 상대로 값진 승점 3을 수확했다. 1위 대한항공과 격차를 1로 바짝 좁히면서 선두로 올라설 기회를 맞았다. 최 감독은 경기 후 "그날이 올 것 같다"면서 역전 우승을 향한 각오를 드러냈다.
이어 여오현의 대기록 달성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홈에서 (대기록 달성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여오현이 홈 팬들 앞에서 대기록 달성을 축하받길 바랐다.
플레잉 코치로 활약 중인 여오현. 한국배구연맹현대캐피탈의 플레잉 코치를 맡고 있는 여오현은 최근 적지 않은 나이 탓에 후배 박경민에게 주전 리베로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그동안 선수로서 쌓아 올린 그의 업적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19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여오현은 홍익대를 졸업한 후 프로 리그 출범 이전인 2000년 삼성화재에 처음 입단했다. 이후 2005년 V리그 출범과 함께 프로 생활을 시작해 12-13시즌까지 9시즌 동안 삼성화재에 몸담았고, 13-14시즌 현 소속팀인 현대캐피탈로 둥지를 옮긴 뒤 지금까지 10번의 시즌을 함께 하고 있다.
리그 최고의 리베로로 활약하며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삼성화재 시절 5번의 정규 리그 1위(06-07, 07-08, 09-10, 11-12, 12-13)와 현 소속팀 현대캐피탈에서의 2번의 정규 리그 1위(15-16, 17-18)를 합쳐 총 7번의 정규 리그 1위를 거머쥐었다. 이는 역대 남자부 V리그 선수들 가운데 8번의 정규 리그 1위를 달성한 대한항공 유광우 다음으로, KGC인삼공사 고희진 감독과 공동 2위 기록이다.
또 삼성화재 시절 7번의 챔프전 우승(2005, 07-08, 08-09, 09-10, 10-11, 11-12, 12-13)에 더해 현캐캐피탈에서 16-17시즌과 18-19시즌 2번의 챔프전 우승으로 총 9번의 챔프전 우승을 달성했다. 역대 남자부 V리그 선수들 중 가장 많은 챔프전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개인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09-10시즌 V리그 역대 1호 수비 5000개, 15-16시즌 역대 1호 수비 1만 개 기준 기록을 달성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2005년 V-리그 첫 리베로상을 시작으로 05-06시즌, 06-07시즌, 09-10시즌 V리그 수비상을 수상했다. 13-14시즌에는 올스타 MVP, 14-15시즌과 15-16시즌에는 V리그 베스트7(리베로)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40대를 훌쩍 넘긴 불혹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올 시즌 리시브 효율 52.72%를 기록하며 쟁쟁한 리베로 후배들을 제치고 남자부 리시브 순위 1위에 올라 있다. 리시브 효율 50%를 넘는 선수는 여오현이 유일하다.
현대캐피탈은 21일 우리카드와 5라운드 홈 경기를 치른다. 승리할 경우 22일 열릴 대한항공-OK금융그룹전 결과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그토록 고대하던 1위에 올라서게 된다.
여기에 여오현의 대기록 달성까지 겹경사를 앞두고 있다. 현대캐피탈이 이날 홈 팬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