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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생산 끝없는 고통에도 같은 전기요금…'차등전기료' 요구 확산

부산

    전력 생산 끝없는 고통에도 같은 전기요금…'차등전기료' 요구 확산

    편집자 주

    수십 년 전 고리원전이 들어선 부산 기장군은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 지역으로 불린다. 원전 반경 30km 안에는 부산을 포함해 380만명이 모여 살고 있다. 사고 가능성은 희박하다지만, 한 번 나면 대규모 피해로 번진다는 원전을 지척에 둔 불안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기본값'이다.

    고리원전 수명연장과 사용후핵연료 관리 등을 두고 최근 논란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이에 부산CBS는 원전을 둘러싼 부산지역 각종 현안을 점검하고, 원전을 이고 사는 지역 주민들의 거듭된 '희생'은 당연한지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원전 정책 드라이브, 지역 무한 희생은 당연한가③]
    전력 발전량 부산의 1/10인 서울, 소비량은 2배
    원전 비중 늘어난다는데…전기요금은 여전히 전국 동일
    법안 발의 등 차등요금제 도입 요구 잇따르지만…정부는 '미온'
    수도권 반대 여론 설득이 관건…"지역서 여론 지속 형성해야"

    계획예방정비 중인 신고리1호기 내부 모습. 한수원 제공계획예방정비 중인 신고리1호기 내부 모습. 한수원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르포]영구정지·수명연장 엇갈린 운명…고리원전을 가다
    ②원전 탄생부터 핵연료 보관까지…지역민 목소리는 '실종'
    ③전력 생산 끝없는 고통에도 같은 전기요금…'차등전기료' 요구 확산
    (계속)

    고리원전 계속운전(수명연장)과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설치가 동시에 추진되자, 부산 등 원전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정 지역이 수십년째 원전으로 인한 위험 부담과 사회적 갈등을 감내하며 전력을 생산하고 있지만, 전기요금은 모든 지역이 똑같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전력 생산은 지역, 소비는 수도권…요금은 동일

    한국전력 통계를 보면 지난해 서울의 전력 발전량은 4337GWh로, 부산 4만 6579GWh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었다. 반면 전력 판매량은 서울 4만 8788GWh, 부산 2만 1493GWh로 서울이 부산보다 2배 넘는 전력을 소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별 전력자립률을 비교하면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가 어떻게 다른지를 더 확연히 알 수 있다.
     
    2021년 기준 행정구역별 전력자립률은 서울 11.3%, 경기 61.6% 수준으로 나타났으나, 부산은 191.5%에 달했다. 전력자립률이 100%라는 말은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이 모두 그 지역에서 소비된다는 뜻이다. 즉 부산은 지역에서 필요한 전력량보다 2배 가까이 더 생산해 수도권 등 다른 지역으로 보내고 있다.
     
    이런 격차는 중앙집중형 전력시스템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지역에 대규모 발전소를 건설하고, 송전망을 이용해 수도권에 전기를 보내고 있다. 특히 원자력발전소는 지역 해안가에만 밀집한 상태다. 국내 원전 25기가 들어선 곳은 부산 기장군, 울산, 경북 경주시·울진군, 전남 영광군으로, 전력 주 사용지역인 수도권에는 단 한 기의 원전도 들어서 있지 않다.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송호재 기자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송호재 기자
    게다가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2030년 원전 발전 비중은 기존 23.9%에서 32.4%로 늘어날 예정이다. 정부 계획대로 고리 2~4호기 등 기존 원전의 설계수명을 연장해 계속 가동하거나 원자로를 늘리면, 원전이 있는 지역과 수도권 간의 전력자립률 격차는 지금보다 더 벌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유독 전기요금은 생산지와 소비지 차이 없이 모든 지역에 같은 기준으로 부과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전력체계를 가진 영국이 지역별 차등요금제를 적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영국은 남부 런던에서 전체 전력의 50%를 소비하고, 생산은 북부에서 담당하는데 남부와 북부에 부과하는 전기요금이 다르다.
     

    거세지는 차등요금제 도입 요구…수도권 설득이 관건

    우리나라 역시 그동안 지역에 따라 전기요금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원전 밀집 지역 등을 중심으로 끊이지 않았다. 국회에서도 국민의힘 박수영, 더불어민주당 양의원영 등 여야 의원들이 지난해 차등요금제 도입의 근거 법안을 잇따라 제출한 상태다.
     
    양이원영 의원은 "인구와 사업장이 몰린 수도권에서 전력 대부분을 쓰지만, 전력 생산은 지역에서 이뤄지는 게 현실임에도 전기요금 차이가 없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도입하면 지자체별로 각자 전력자립을 위한 노력에 나설 것으로 기대할 수 있고, 기업이 전기요금이 저렴한 지역으로 이전하는 걸 유도하는 효과도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정부는 차등요금제 도입에 미온적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한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은 "지역 편중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지역별 차등요금제는 현재 지원하는 제도와의 중복 지원 문제, 지역별 갈등 문제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의 이 같은 기조는 수도권의 반대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력자급률에 따라 전기요금을 차등화하면 전력 생산지 요금은 인하하는 반면, 수도권 요금은 인상하기 때문이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 결과. 부산연구원 제공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 결과. 부산연구원 제공부산연구원은 지난 2018년 전기요금 차등제에 대한 소비자 수용성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수도권(서울·경기)과 원전 인근 지역 주민 각 600명을 상대로 전력자급률에 따른 지역별 차등요금제 찬반 의견을 물은 결과, 수도권은 찬성 21%, 반대 55%로 반대가 2배 이상 많았다. 찬성 41%, 반대 37%로 나타난 원전 지역과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질문을 바꿔 '발전소가 있는 지역은 전기 생산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위험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상으로 전기요금을 낮춰줘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결과가 달라졌다. 원전 지역 응답자 65%가 찬성했는데, 수도권 응답자도 55%나 찬성 의견이 나왔다.

    이를 근거로 부산연구원은 지역에서 원전으로 인한 위험 비용 차원에서 차등요금제 도입을 주장하면 수도권 주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윤찬 부산연구원 연구위원은 "원전이 있는 지역에서 의견을 모아 함께 세미나나 포럼을 여는 등 방식으로 차등요금제 도입에 대한 공감대를 지속적으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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