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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영구정지·수명연장 엇갈린 운명…고리원전을 가다

부산

    [르포]영구정지·수명연장 엇갈린 운명…고리원전을 가다

    편집자 주

    수십 년 전 고리원전이 들어선 부산 기장군은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 지역으로 불린다. 원전 반경 30km 안에는 부산을 포함해 380만명이 모여 살고 있다. 사고 가능성은 희박하다지만, 한 번 나면 대규모 피해로 번진다는 원전을 지척에 둔 불안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기본값'이다.

    고리원전 수명연장과 사용후핵연료 관리 등을 두고 최근 논란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이에 부산CBS는 원전을 둘러싼 부산지역 각종 현안을 점검하고, 원전을 이고 사는 지역 주민들의 거듭된 '희생'은 당연한지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원전 정책 드라이브, 지역 무한 희생은 당연한가①]
    '원전의 역사' 고리1발전소
    가동 멈춘 1호기 터빈 앞 "해체산업, 새 먹거리" 홍보 부스
    2호기 터빈은 '쌩쌩'…한 발전소 건물에 '멈춤'과 '가동' 공존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다가오는 포화…처리 방법 두고 의견차 극명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전경. 한수원 제공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전경. 한수원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르포]영구정지·수명연장 엇갈린 운명…고리원전을 가다
    (계속)

    '우리는 원전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21일 찾은 부산 기장군 고리1발전소 출입 건물 외벽에는 고리원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고리1발전소는 국내 최초 상업운전, 영구정지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쥔 고리1호기, 오는 4월 설계수명 만료를 앞두고 계속운전(수명연장)이 추진 중인 고리2호기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한 건물에 '싸늘함'과 '후끈함' 공존하는 발전소

    고리1발전소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고리1호기 터빈 건물이었다. 원자로에서 생산한 증기로 발전기를 돌리는 시설이다. 굉음을 내며 기계가 돌아가던 이곳은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된 2017년 6월 이후 완전히 멈춰 섰다. 이를 증명하듯 '고리1호기 영구정지 관련 미사용설비'라는 안내판이 설비 곳곳에 붙어있었다.
     
    가동을 멈춘 거대한 터빈 앞에는 고리1호기 해체를 홍보하는 부스가 세워져 있었다. 안내를 맡은 한국수력원자력 고리본부 관계자는 "원전산업의 새 먹거리를 육성하는 차원에서 국내 최초로 1호기 해체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리2호기 '안전 운영'을 전제로, 고리1호기를 '단독으로' 즉시 해체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고리1호기 터빈실 모습. 한수원 제공고리1호기 터빈실 모습. 한수원 제공
    해체 홍보 부스를 지나 2호기 터빈실로 들어섰다. 1·2호기 터빈실은 한 건물에 공간만 나눠 사용하고 있었다. 문을 열자 같은 건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고요하고 싸늘한 1호기 터빈실과 달리, 2호기 터빈실은 들어서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윙~'하는 요란한 기계음 탓에 옆 사람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터빈실을 통해 원전의 조정석으로 불리는 '주제어실'로 들어가자 2호기가 '살아 있는 원자로'라는 사실이 더욱 실감 났다. 공간을 가득 메운 각종 제어반과 방사선 감시장치 등에 붙은 버튼들은 일제히 불이 들어와 있었고, 원자로 제어반에는 '원자로 출력 99.9%'라는 문구가 표시돼 정상 가동 중임을 증명했다.
     
    고리1발전소 원자로의 운명은 여론과 정책에 따라 1호기는 '멈춤', 2호기는 '가동 추진'으로 엇갈렸다. 1호기는 2007년 '10년 계속운전'을 승인받았기 때문에, 2017년 이후에도 가동하려면 그 전에 재승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지역을 중심으로 노후 원전에 대한 우려가 터져 나왔다. 이에 2015년 산업통상자원부는 영구정지를 권고했고, 한수원이 수명 재연장을 신청하지 않아 2017년 국내 최초로 완전히 멈춰 섰다.
     
    당시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탈핵'을 선언하며 원전 설계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이 정책대로라면 2호기 역시 40년 설계수명을 채우고 올해 4월 영구정지될 처지였다.
     
    하지만 지난해 '탈원전 폐기'를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2호기 영구정지는 없던 일이 됐다. 한수원은 윤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해 4월부터 현재까지 2호기 계속운전을 위한 절차를 진행해오고 있다. 나아가 고리 3·4호기 역시 계속운전을 추진,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을 앞둔 상태다.
     

    포화 다가오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처리 방법은 '안갯속'

    마지막 장소인 고리2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조로 향했다. 원자로에서 실제 사용한 핵연료를 보관한 장소인 만큼 출입은 매우 까다로웠다. 큼지막한 방사능 마크가 박힌 갈색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면장갑, 면양말, 안전모를 착용한 뒤 개인 피폭량을 측정하는 자동선량계(ADR)와 열형광선랑계(TLD)를 왼쪽 가슴에 넣었다.
     
    건물 안에는 푸른색 물이 가득 담긴 수조 형태의 '습식저장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가로 16.7m, 세로 7.9m, 깊이 12.7m 규모의 수조 안에는 사용후핵연료를 세워 꽂아두는 벌집 형태의 '저장랙'이 보였다.
     
    사용후핵연료 습식 저장조. 연합뉴스사용후핵연료 습식 저장조. 연합뉴스
    2호기 저장조는 사용후핵연료 920다발을 저장할 수 있다. 현재 약 760다발을 저장하고 있다. 이렇게 사용후핵연료를 발전소 내 수조에 '습식저장'하면 고리원전 저장조는 2032년 포화에 이를 전망이다. 수조 앞에 선 한수원 관계자는 "지금은 다소 느슨한 형태로 보관 중인데, 간격을 촘촘하게 해주는 '조밀저장대'를 설치하면 포화 시점을 늦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수원은 수조 포화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 내 별도의 시설에 저장하는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7일 한수원 이사회는 고리3발전소 주차장 부지에 사용후핵연료 2880다발 규모의 건식저장시설을 2032년까지 건설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현재와 같이 '습식저장' 방식을 유지하면 2032년에는 수조가 가득 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안내를 맡은 한수원 직원들은 "고리1호기 해체를 위해서라도 건식저장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동을 멈춘 1호기 저장조에 현재 사용후핵연료 485다발을 보관하고 있는데, 이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향후 20년 동안 해체 작업에 착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건식저장시설은 미국·독일 등 24개국에서 운영 중인 만큼 안전성 역시 국제적으로 입증됐다는 부연 설명도 뒤따랐다.
     
    21일 부산지역 139개 시민단체가 모인 '부산 고리2호기 수명연장·핵폐기장 반대 범시민운동본부'가 부산시청 광장에서 발족식을 열고 있다. 김혜민 기자21일 부산지역 139개 시민단체가 모인 '부산 고리2호기 수명연장·핵폐기장 반대 범시민운동본부'가 부산시청 광장에서 발족식을 열고 있다. 김혜민 기자
    지역에서는 이 시설이 들어서면 사용후핵연료를 향후 수십 년간 보관할 거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고리원전 건식저장시설은 중간저장시설이 마련될 때까지만 운영한다는 게 한수원의 계획이다. 하지만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은 부지확보부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따라서 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은 사실상 영구저장시설이 될 확률이 높고, 이렇게 되면 원전으로 인해 40년 넘게 안전을 위협받은 시민들에게 또다시 과한 부담을 안긴다는 주장이다.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할 법적 근거는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과 관련해 3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해당 법안들은 원전 부지에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중간저장시설이나 처분시설을 확보한 시점에 반출할 것인지, 혹은 부지확보부터 처분시설 마련까지 시점을 명확히 명문화할 것인지 등에서 내용에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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