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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핀 풀꽃이 일으켜줬죠" 어느 정원해설사의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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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바닥에 핀 풀꽃이 일으켜줬죠" 어느 정원해설사의 화양연화

    편집자 주

    10년 만에 열리는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이하 정원박람회)를 앞두고 순천 전역은 박람회 준비가 한창이다. 이런 가운데 7개월간의 대장정에 앞서 전국에서 몰려들 손님 맞이에 분주한 이들이 있다. 바로 관람객의 눈과 귀가 되어줄 정원해설사이다. <2023정원박람회를 준비하는 사람들> 두 번째 순서로 관람객과의 소통, 교감을 먼저 생각하는 10년차 정원해설사 강미숙(64)씨를 만났다.

    [2023정원박람회를 준비하는 사람들②]
    10년 차 정원해설사 강미숙 씨
    힘들었던 시기, 길가에 핀 풀꽃에 감동…해설사 결심
    일년 중 겨울정원 손꼽아…스며드는 햇빛에 눈물도
    관람객 위해 시 낭송, 노래 불러…매일 '스마일' 연습
    "열심히 살아온 분들, 하늘 보고 큰 힘 내시라"

    관람객들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순천만국가정원 메타세쿼이아 길에 서 있는 강미숙 정원해설사. 박사라 기자 관람객들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순천만국가정원 메타세쿼이아 길에 서 있는 강미숙 정원해설사. 박사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10년 만에 다시…" 87세 자원봉사자의 박람회 도전기
    ②"바닥에 핀 풀꽃이 일으켜줬죠" 어느 정원해설사의 화양연화
    (계속)

    "이건 담양에서 온 메타세쿼이아 길이에요. 나무의 의미도 있지만 그 높은 나무 아래에서 쳐다보는 한 줄기의 빛, 이런 것들이 정말 아름답죠."

    순천만국가정원 해설사 강미숙 씨는 국가정원 내 메타세쿼이아 길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러면서 나무 때문에 순천의 인구가 늘었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국가정원은 여러 곳에서 나무들을 가져와 만들어졌는데 나무들이 온 이후로 순천의 인구가 많이 늘었다는 거 아니예요. 이유를 알고 보니까 담양 메타세쿼이아를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오고 또 천안의 능수버들을 보기 위해서 오고 이렇게 정원 안에서 잘 자라 순천이 정말 살기 좋은 곳인가 해서 이사를 오게 되거든요. 인구도 늘고 일석이조의 기쁨이 있는 것 같아요."

    강 씨는 8년 차 정원해설사이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평범한 주부였다. 한때 전국 여성 최초로 전라남도배드민턴협회장을 맡을 만큼 바깥 활동에 적극적이었지만 불현듯 찾아온 우울증 때문에 긴 터널 안에 갇힌 듯한 시간을 보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강 씨는, 인생이란 화려한 화양연화 같은 시절이 있다가도 한 고비 고통이 뒤따라오는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다 어느 날 창문 너머로 들어온 햇빛 한 줄기를 따라 '밖에 나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승강장에 앉아 있는데 길가에 작은 풀꽃들이 시들어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침 가지고 있던 생수를 한줌 부어주었다. 집에 오고 나서도 한참 생각이 나서 다시 그 자리로 가보니 반짝반짝 고개를 들고 예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자신도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때마침 순천시는 정원해설사를 모집하고 있었다.

    그는 "평범하게 살아온 주부가 나이 50이 넘어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교감할 수 있는 직업이 어디 있겠냐"며 "처음에는 정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너무 힘들었지만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장점이 나한테는 있었다. 더 배우고 노력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이후 매일 도서관에 나가 순천의 역사부터 정원과 화훼에 관련한 책들을 읽고 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사비를 들여 친한 해설사들과 정원이나 생태관광에 대한 교육을 들으러 전국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또 정확한 전달력을 위해 볼펜을 입에 물어 발음을 연습하거나 해설했던 내용을 녹음해 교정하기를 수십 번씩 했다. 수험생과 다름없는 생활이었다.

    "머릿속에는 다 있어서 필기를 보면 100점을 맞을 텐데 말로 풀어내기가 너무 힘들었다"며 "정원해설사가 천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욕심을 냈고, 무엇보다 관람객들에게 정확하고 재미있는 정보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미숙 정원해설사. 강미숙 씨 제공 강미숙 정원해설사. 강미숙 씨 제공 
    정원해설사가 되고 난 뒤에는 정원의 사계절을 경험하는 '호사'를 누렸다. 사시사철 꽃과 나무들이 어떤 옷으로 갈아입었는지, 하루 새 키는 얼마나 자랐는지를 지켜봤다. 그중에 백미를 꼽아달라고 하자 망설임 없이 '겨울정원'을 택했다. 인적이 드물어 황량함마저 느낄 수 있는 겨울정원에서 그는 하얀 눈 속에 핀 '복수초'를 봤다고 했다. 바깥의 차가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땅 속 뿌리 힘으로 피어난 꽃 한 송이를 만났을 때 그 감격은 절대 잊을 수 없단다.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스며드는 광경은 눈물이 날 정도였다.

    겨울에 찾는 관람객들에게 그는 시를 읊어준다.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대목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얼마나 하늘을 올려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땅만 보고 살아왔는지요. 이렇게 하늘을 보는 순간이 황홀한 시간인지 여러분 모르셨죠"고 말한다.

    그는 가끔 정원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선곡은 관람객들의 연령대에 맞춘다. 특히 영국정원 앞 마로니에 나무를 지날 때는 '마로니에 가수'로 알려진 박건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을 부른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에게는 순천을 대표하는 막걸리와 고들빼기 김치를 소개한다. 순천에는 볼거리도 많지만 해설사가 있어 다시 와보고 싶은 국가정원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게 그의 목표다.

    국가정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강미숙 정원해설사. 강미숙 씨 제공 국가정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강미숙 정원해설사. 강미숙 씨 제공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스마일' 연습이다. 국가정원 안에 새로 생긴 키즈정원, 노을정원 등에 대한 해설 공부는 진즉에 마쳤다. 다른 23명의 해설사와 함께 이틀에 한번씩 해설을 맡게 됐다.

    "나이가 들어 정원해설사 일이 끝난다면, 공공정원이나 남들이 가꾸기 힘들어 하는 정원들을 조용히 가꾸는 일을 해보고 싶다"며 '바닥에 난 들풀이 나를 정원해설사로 이끌어 줬듯 이런 생명의 신비를 다른 이들도 경험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한다면 참 보람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 하늘 한번 바라보면서 큰 힘 한번 내보시라"고 권한다. 오는 4월 순천에 가면 국가정원 입구 목련나무 앞에서 관람객을 기다리는 그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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