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문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建三郞)가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교도통신이 13일 보도했다. 향년 88세. 사진은 2015년 3월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는 오에 겐자부로. 연합뉴스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문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建三郞)가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일본 출판사 고단샤가 13일 별세 소식을 발표했다. 고단샤는 발행인 명의 성명을 통해 "3월 3일 이른 시간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이미 가족들이 치렀다"고 일본 교도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그는 일본의 인권과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2기 아베 정권 때인 2015년 3월 연세대에서 열린 '연세-김대중 세계미래포럼'에 참가해 "일본은 아무리 사죄해도 충분하지 않을 만큼 막대한 범죄를 한국에 저질렀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충분히 사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도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 일본의 후진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나 국민이 충분히 사죄했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 국가가 사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1935년 1월 31일 시코쿠 에히메현의 한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도쿄대학 불문과에 진학해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1957년 전후 패전의 그림자가 지배한 폐쇄된 시대를 담아낸 '죽은자의 사치'를 통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23세 때인 1958년 '사육'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1960년 결혼한 그는 지적 장애를 가진 장남과의 공생을 다룬 '개인적인 체험'으로 인권을 유린당한 전후 세대의 문제를 짚어내 신조샤 문학상을 받았다.
'만연원년의 풋볼'로는 1994년 노벨문학상을 탔다. 일본 사회의 불안한 상황과 정치적 문제에 대한 비판, 천황제와 군국주의, 평화와 공존, 지적 장애를 가진 장남, 고향 시코쿠 숲 마을의 역사와 전통 등을 주제로 수많은 글을 발표했고, 국내외 여러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오에는 그해 10월 일왕이 수여하는 일본문화훈장을 거부했다.
전후 사회에 비판적 지식인이자 행동하는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그는 2004년 군대 보유 금지와 전쟁과 무력행사를 영구 포기하는 내용이 담긴 헌법 9조 등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기 위해 다른 석학들과 '9조의 모임'을 결정해 개헌에 반대했다.
또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일본 정부의 원전 재가동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해 자신의 인생 최종 과업은 핵 없는 세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며 "원전 문제를 젊은 세대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하기도 했다.
1995년 한국을 방문해 "일본에서 헌법 개정 움직임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일본의 이런 움직임에 '절대 반대'한다. 일본은 인류 전체가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 명백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군부 독재도 비판했다. 그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는 와다 하루키 등 15명과 함께 군부 쿠데타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1975년엔 김지하 시인 탄압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한국 소설에 대해서는 "현대소설을 애독하고 높이 평가한다"며 "그중에서 황석영은 현대의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는 큰 소설을 쓴다. 개인의 내면을 그리면서도 사회로 이어지는 인간을 묘사한다"고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