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연합뉴스대법원이 태광그룹 계열사의 "'김치·와인 강매' 사건과 관련해 이호진 전 회장이 개입했다고 볼 여지가 많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6일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이 전 회장에 대한 시정명령을 취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김치·와인 거래는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의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수관계인이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에 '관여'했는지 여부는 해당 행위를 할 동기가 있는지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며 "이때 특수관계인은 기업집단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은 태광의 의사결정 과정에 지배적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김치·와인 거래가 티시스에 안정적 이익을 제공해 이 전 회장의 지배력 강화, 변칙적 부의 이전, 이 전 회장 아들로의 경영권 승계에 기여했으므로 티시스의 이익 및 수익구조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 영향력을 이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 경영기획실이 이 전 회장 모르게 김치·와인거래를 할 동기가 있다고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이 전 회장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거래 경과 등을 보고해 자신들의 성과로 인정받으려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대법원은 김치·와인거래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에 해당해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처분은 정당하다는 1심 판단에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앞서 공정위는 2019년 6월 태광그룹 계열사 19곳이 총수 일가가 소유한 티시스와 메르벵에서 김치와 와인을 고가로 강매한 사실을 적발했다.
조사 결과 태광 계열사들은 2014년 상반기부터 2년간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구매한 김치는 총 512톤이 넘는 규모로 거래 금액은 95억5천만원에 달한다. 또한 비슷한 시기 메르뱅에서 와인 46억원어치를 사들이기도 했다.
이에 공정위가 계열사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21억8천만원을 부과하고 이 전 회장에게도 시정명령을 내리자 이 전 회장 등은 불복해 소송을 냈다.
앞서 원심(서울고법)은 계열사들에 대한 시정명령·과징금은 정당하지만, 이 전 회장에게 내려진 시정명령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 전 회장이 김치·와인 거래에 관여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공정위 처분은 서울고법이 전속 관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