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은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네 번째 단독 콘서트 '알 투 브이'를 열었다. 레드벨벳 공식 트위터"혹시 이런 거 좀 상상해 보셨어요? 생각해 보셨어요? 이런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저희가 양일 다 오셔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하루는 '레드'(RED)고 하루는 '벨벳'(VELVET)인가 이렇게 생각하신 분들도 있더라고요. 아닙니다. 우린 다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웃음) 우린 레드벨벳이잖아요." (슬기)
2014년 데뷔한 여성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은 데뷔 때부터 강렬한 '레드'와 우아한 '벨벳'을 모두 소화해내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명랑하고 긍정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던 데뷔곡 '행복'(Happiness)으로 첫발을 뗀 후, 바로 다음 활동에서 같은 소속사의 선배 그룹인 S.E.S.의 '비 내추럴'(Be Natural) 리메이크 버전을 냈을 때 호응도 물론 있었으나 '벨벳' 스타일이 과연 레드벨벳에게 어울리는 옷인지 물음표를 찍는 반응이 뒤따랐다.
레드벨벳은 '레드'와 '벨벳'의 특징이 또렷한 곡을 차근차근 들려줬고, 이후엔 '레드'로도 '벨벳'으로도 볼 수 있는 경계의 곡까지 선보이며 음악의 폭을 넓혀나갔다. '덤덤'(Dumb Dumb)과 '빨간 맛'(Red Flavor)이 그렇듯, '배드 보이'(Bad Boy)와 '사이코'(Psycho)도 팀을 대표하는 곡이다. '레드'도 '벨벳'도 모두 '가능'한 것을 넘어, 높은 완성도에 개성을 더한 것이 지금 레드벨벳의 음악이다.
'알 투 브이' 이틀째 공연날이었던 2일 첫 곡은 '포즈'였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케이스포돔)에서 열린 네 번째 단독 콘서트 '알 투 브이'(R to V)는 레드벨벳이 무려 3년 5개월 만에 여는 콘서트였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국내에서만 세 장의 미니앨범을 내며 곡을 쌓아온 레드벨벳은 무대를 향한 목마름을 이날 공연에서 폭발시켰다.
필 마이 리듬'(Feel My Rhythm)으로 시작한 첫날과는 달리, 둘째 날 공연의 첫 곡은 미니 6집 수록곡 '포즈'(Pose)였다. 이틀 공연이 조금 다를 거라는 멤버들의 귀띔처럼 첫날은 '레드'→'벨벳', 둘째 날은 '벨벳'→'레드' 순이었다. 곡 순서를 다르게 한 것만으로 신선함을 주는 데 성공했다. "이거 레드벨벳만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라는 슬기의 말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포즈'를 시작으로 '베그 포 미'(Beg For Me) '줌'(ZOOM) '바이 바이'(BYE BYE) '인 앤 아웃'(In & Out) '아이 저스트'(I Just) '피카부'(Peek-A-Boo) '배드 보이' '사이코'까지가 '벨벳' 파트였다. 이번 콘서트에서 최초 공개된 '베그 포 미' 무대에서는 누워 있는 조이를 슬기가 감싸는 듯한 안무에서 긴장감을 극대화한 점과 웬디의 낮은 랩톤이 인상적이었다. '배드 보이' 때 아이린-슬기-조이-예리-웬디로 이어지는 댄스 퍼포먼스는 본 무대를 향한 기대감을 끌어올리기 충분했다.
왼쪽부터 레드벨벳 아이린, 예리, 웬디. SM엔터테인먼트 제공'레드'의 문을 연 곡은 지난해 전국에 꽃가루 열풍을 일으킨 '필 마이 리듬'이었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한 '필 마이 리듬'은 클래식 원곡의 섬세함과 우아함을 가져가면서도 멤버들의 개성을 녹여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곡이다. 몽환적인 EP와 신스 사운드 덕에 환상적인 분위기가 도드라지는 '밤볼레오'는 '필 마이 리듬' 바로 다음 곡으로 나오기에 딱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 보이'(Oh Boy)는 '이래서 콘서트 오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듣는 음악'으로 가장 흡족했던 곡 중 하나다. 가창력과 표현력에 많은 부분을 기대야 하는 고난도의 곡임에도 멤버들은 탄탄한 라이브 실력을 뽐냈다. 도입부를 비롯해 곡을 여유롭게 장악한 웬디의 보컬은 발군이었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메인보컬'이 주는 안정감은 상당했다. '눈 맞추고 손 맞대고'(Eyes Locked, Hands Locked)나 '인 앤 아웃' '퀸덤'(Queendom) 무대에서의 웬디 라이브도 기억에 남는다.
대표적으로 웬디를 거론하긴 했지만 사실 레드벨벳은 멤버 전원이 라이브에 강한 팀으로 꼽히며, 이번 공연에서도 그 점을 충분히 경험했기에 관객으로서 반갑고 즐거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멤버는 예리였다. 음색이 두드러지는 편인 예리는 때로는 노래의 맛을 살리는 감초로, 때로는 호소력 있게 끌고 나가야 하는 주역으로서 능숙하게, 또 성실하게 노래했다.
왼쪽부터 레드벨벳 슬기, 조이. SM엔터테인먼트 제공'필 마이 리듬' 콘셉트에 맞는 가로 7.2m, 세로 4.5m 크기의 대형 오르골 세트와, 멤버들의 동선에 따라 각자의 상징색으로 색이 변했던 5m 높이의 오각 집 세트, 본 무대와 돌출 무대에 모두 있었던 원형 구조물을 상황에 맞게 활용해 몰입감을 높였다.
체스 말('베그 포 미'), 커다란 보름달이 뜬 신전('배드 보이'), 위태롭게 부서지는 샹들리에('사이코'), 빨강 주황 노랑 등 알록달록한 꽃('밤볼레오'), 다채로운 음표('LP'), 각종 달콤한 디저트('아이스크림 케이크'), 대관람차가 눈에 띄는 놀이동산('롤러코스터'), 신나게 폭죽이 터지는 성('퀸덤') 등 곡 테마에 맞는 영상을 담아낸 대형 화면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다만 '인 앤 아웃'의 안무는 아쉬웠다. 곡이 지닌 분위기와 동떨어진 발랄함 때문이었다. 강약 조절과 화음, 서로 간의 호흡이 돋보이는 곡이기에 꼭 많이 움직이는 안무가 없더라도 상관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댄서 25인으로 이루어진 메가 크루의 공연은 분명 멋졌지만 4번이나 나오고 분량도 짧지 않은 편이어서 다소 당혹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레드벨벳 단독 콘서트 '알 투 브이'에는 이틀 동안 1만 4천 명의 관객이 함께했다. 아래는 2일 관객들이 준비한 카드섹션 이벤트. SM엔터테인먼트 제공/레드벨벳 공식 트위터'셀러브레이트'(Celebrate)로 시작한 앙코르는 '마이 디어'(My Dear)와 '러시안룰렛'(Russian Roulette)으로 이어졌다. 세트 리스트에 없었지만 팬들의 뜨거운 요청으로 실현된 앙코르곡도 있었다. 바로 '짐살라빔'(Zimzalabim)이었다. 진짜 마지막 앙코르곡인 '유 베터 노우'(You Better Know)까지, 레드벨벳이 준비한 무대는 총 25곡이었다.
"누군가를 이렇게 조건 없이 저희를 사랑해주시는 그 한 분 한 분 예쁜 마음들을 오늘도 감사히 잘 전달받았어요. 그런 마음을 존경하고 감사히 받을 수 있는 예림이가, 레드벨벳이 되겠습니다." (예리)약 2시간 50분가량 진행된 '알 투 브이'는 서울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이틀 동안 총 1만 4천 명을 동원했다. 레드벨벳은 21일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요코하마, 마닐라, 방콕, 자카르타, 파리, 베를린, 암스테르담, 런던 등 아시아와 유럽 투어를 돌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