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신 변호사. 연합뉴스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적힌 학교폭력 기록을 반포고가 삭제하는 과정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충분한 심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드러났다.
7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무소속 민형배 의원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반포고 학폭위 의결서 및 회의록'에 따르면, 정 변호사 아들 정군의 졸업 이틀 전인 2020년 1월 29일, 정군이 민사고 재학시 받은 '출석정지 7일(6호 조치) 및 강제전학 처분(8호 조치)' 학폭 기록의 삭제 여부를 심의하는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는 전체 위원 9명 중 6명이 참석했다.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에는 학폭 가해 학생의 학생부에 적힌 학폭 관련 조치사항 중 출석정지와 전학 처분은 졸업 후 2년이 지난 뒤에 삭제해야 하지만, 학생의 반성 정도와 긍정적 행동변화 정도를 고려해 졸업 직전 학폭위의 심의를 거쳐 삭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런데 A4용지 3장 분량의 회의록을 보면 '졸속' 심의가 의심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학교 측의 경과보고 및 절차 설명에 이어 학교폭력담당교사가 '학생 및 보호자의 10시간 특별교육'이 이뤄진 부분을 설명하고 나서, 생활교육부장이 "학생이 '사건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충동적 행동을 자제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는 의견을 냈다.
2020년 1월 29일 반포고에서 열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회의록 중 일부. 민형배 의원실 제공정군의 반성 정도와 긍정적 행동변화를 판단하기 위해 참고자료로 제출된 '담임교사 의견서'는 네 문장이 전부였으며 내용은 학교관계자들의 설명과 엇비슷했다.
이어 한 학부모 위원이 "학생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반포고에서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적응했다면 학폭 기록을 삭제해 사회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찬성 의견을 냈다.
이후 위원장이 학폭 기록 삭제와 관련해 다른 견해가 있는 위원이 있는지 물었으나 위원들이 "이견이 없다"고 동의하면서 '정군의 학폭 기록 삭제 심의안건'은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순신 자녀 학교폭력 진상조사 및 학교폭력 대책 수립을 위한 청문회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뒤로 한만위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장, 고은정 반포고 교장이 출석해 있다. 윤창원 기자민형배 의원은 "반포고 학폭위 회의록을 보면 정군의 반성 정도나 행동 변화에 대해 위원들 간 충분한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사전에 정군 '학폭 기록 삭제'로 답을 정하고, 거수기 위원들의 형식적 회의가 진행됐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국민의힘 이태규 의원은 지난달 9일 열린 국회 교육위에서 "(학폭) 가해 기록 삭제는 화해와 치유의 과정이 전제돼야 의미가 있는데, (가해기록 삭제에)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