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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펜션 환불에 정신 없어"…'강릉 산불'에 우는 이재민들

사건/사고

    [르포]"펜션 환불에 정신 없어"…'강릉 산불'에 우는 이재민들

    '강릉 산불' 이튿날…망연자실한 이재민들
    문화재 '방해정'도 불타
    101개 시설 피해…주택 59채, 펜션 34채 등 소실
    전소된 펜션 주인들 "손님들 피해 보상·환불하랴 바빠"
    지원 절실한 이재민들 "특별재난지역 선포 환영, 신속·실질적 지원 원해"

    지난 11일 발생한 '강릉 산불'로 인해 강원도 유형문화재 '방해정'이 불에 탔다. 민소운 기자지난 11일 발생한 '강릉 산불'로 인해 강원도 유형문화재 '방해정'이 불에 탔다. 민소운 기자
    '강릉 산불'의 주불이 100% 진화되고 잔불 정리도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피해 복구'가 가장 큰 과제가 됐다.
     
    화마가 할퀴고 간 이튿날. 이재민들은 재난의 아픔에 망연자실하면서도,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한 정부의 신속하고 실질적인 지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165살 문화재도 피하지 못한 산불


    12일 오전 9시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찾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방해정'도 불에 탔다. 방해정은 원래 삼국시대의 고찰인 인월사 터였는데, 1859년(철종 10년) 당시 청안 현감과 통천 군수를 지낸 이봉구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객사를 헐고 지은 정자다.
     
    방해정 소유주인 박연수(87)씨는 이곳까지 불이 붙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결국 요사채(승려가 거주하는 집)와 정자가 대부분 불에 탔다. 정자 내부는 검게 그을린 채 화재의 파편들로 뒤덮여 있었다.

    박씨는 타버린 정자에 걸터앉아 "25년 전 방해정을 일본 여행사 사장 딸이 사려고 했었다"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왜 일본 사람한테 팔아야 되냐'는 생각이 들어 (내가) 사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문화재이기도 하지만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곳을 관리해 왔기 때문에 마음이 더 아프다"고 털어놨다.
     
    박씨의 딸 권성자씨는 "우리가 식구가 많은데, 전부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며 "어린 애들도 여기서 다 놀았는데 이제 추억이 없어지니까 가슴이 아프다"며 "엄마가 '천재지변인 것을 어쩌냐,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여기서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걸로 위로를 삼자'고 하셨다"고 전했다. 권씨는 "안에 있는 나무들도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불기가 지나가면 다 죽는다던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읊조렸다.
     
    주택과 펜션을 잃은 다른 이재민들도 재난의 아픔에 말을 쉬이 잇지 못했다. 저동 골프장 인근에 살던 박명복(68)씨가 살던 주택은 완전히 불타서 재만 남았다. 박씨는 작년에 거금 수천만 원을 들여 주택을 전부 수리한 지 얼마 안됐다며 아쉬워했다. 심정을 묻자,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냐"는 답이 돌아왔다.

    40년 가까이 레슬링 선수와 감독으로 활동했다는 박씨는 "40년 간 천장 서너 칸에 모아둔 훈장이고 메달이고 뭐고 싹 다 없어졌다"며 "집은 새로 지으면 되는데 그건 원상복구할 수 없지 않냐"고 안타까워 했다.
     
    운영하던 펜션이 전부 불에 탄 사장 A씨도 "뒷쪽에서 불길이 (우리 펜션까지 다가오는 게) 보이니까 물만 뿌리다가 정작 아무 것도 못 챙기고 나왔다"며 "차라리 물만 안 뿌렸어도 물건을 좀 챙겼을 텐데, 나중에 생각하니 물 뿌릴 필요도 없었다는 후회만 든다"고 했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막막한 이재민들

    지난 11일 발생한 '강릉 산불'로 인해 주택, 펜션 등 시설 101곳이 피해를 입었다. 민소운 기자지난 11일 발생한 '강릉 산불'로 인해 주택, 펜션 등 시설 101곳이 피해를 입었다. 민소운 기자
    이재민들은 화마가 휩쓸고 간 보금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경포호 인근 B펜션도 전부 불에 탔지만, 펜션 주인인 C씨 부부는 이른 아침부터 펜션 앞을 지켰다. 불에 탄 펜션 앞 텃밭에서 산불에 그을린 고구마의 싹을 다듬던 C씨는 "와보니까 이렇게 다 타버렸다"며 "어떻게 하겠냐.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나온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저동 펜션가에 나란히 붙어있던 펜션 3채도 모두 불에 타 앙상하게 뼈대만 남아 있었다. 유리창은 모두 깨져 파편이 나뒹굴었고, 어디선가 새어나온 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지난 11일 발생한 '강릉 산불'로 인해 주택, 펜션 등 시설 101곳이 피해를 입었다. 민소운 기자지난 11일 발생한 '강릉 산불'로 인해 주택, 펜션 등 시설 101곳이 피해를 입었다. 민소운 기자
    때마침 서울에서 내려온 독립 손해사정사가 도착해 마을을 돌아다녔다. 손해사정사는 "조금이라도 더 보상 받으실 수 있게 도와드리겠다"며 펜션 주인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 펜션을 바라보던 손해사정사는 "그냥 눈대중으로 봤을 때 저 펜션을 새로 지으려면 최소 5억은 들 것으로 보인다"며 "보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험금이 나와봤자 1억 정도 밖에 안 나온다"고 귀띔했다.
     
    이어 "특별재난지역 선포돼서 지원금이 나와도 얼마 안 될 거고, 5천만 원을 받는다 해도 다 합쳐서 최대 2억인데, 그 돈으로 5억짜리를 어떻게 다시 짓냐"면서 "그러면 저분(피해 주민)들은 그냥 내몰리는 것"이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그곳에서 22년간 펜션을 운영해온 김성수(72)씨는 자신의 펜션이 다 탈 때까지 길 건너 호수에서 2시간 가량 지켜봤다고 했다. 나중엔 결국 자신의 펜션이 타는 것을 보고, '타는구나'하고 체념하고 피신했다고 한다.
     
    김씨는 펜션을 다시 짓고 싶다면서도 아직 계획을 세울 엄두는 못 내고 있었다. 김씨는 "지금 예약 들어온 것들을 다 취소해주고 환불해주느라 정신이 없다"며 "며칠 묵던 손님도 짐을 안 빼고 나갔다가 불이 났는데, 우리가 손해배상까지 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피해 당사자인 김씨는 자신이 입은 피해를 헤아리거나 도움을 요청할 새 없이, 펜션에 묵거나 예약을 했던 손님들에게 피해를 보상해주느라 바빴다.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은 시설 101곳 중 34채가 펜션인 만큼, 김씨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이 상당수일 것으로 보인다.

    특별재난지역 선포…이재민들 "신속·실질적 지원 원해"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강릉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행정안전부는 강원도 강릉시 산불피해의 조기 수습을 위해 특별교부세 10억 원과 재난구호사업비 6400만 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산불 발생 이튿날까지도, 이재민들은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앞으로 대피소에 얼마나 머무를 수 있는지 안내 받지 못했다. 이재민 임호성(58)씨는 "다른 산불 때는 하루 이틀 있다가 바로 컨테이너라도 지원해줬던 것 같은데 아직 그런 내용들은 전달을 못 받았다"고 말했다.
     
    임씨는 "모든 산불이 다 피해가 크지만, 이번 산불은 짧은 시간에도 집중적으로 타서 피해가 더 크다"면서 "이전 산불보다 더 큰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씨는 또 임시 대피소를 마련하는 것보다, 이재민들이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임씨는 "자기 집이 불타 있는데 그 자리에 컨테이너만 가져다 놓으면 거기서 제정신으로 살겠냐, 트라우마가 생길 것"이라며 "처음부터 실질적으로 거주할 수 있고 마음을 편안히 갖고 쉴 수 있는 거주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재민들은 하나같이 정부의 신속하고 실질적인 지원을 바랐다. 이재민 이남선씨는 "펜션이 완전히 전소가 되다보니 지금 어디에 어떻게 자문을 구해야 할지 많이 막막하다"면서 "전문적으로 지원을 받아야만 앞으로의 대책을 세울 것 같은데, 지원 대책이나 계획을 (정부나 지자체에서) 발표 해줄지 기다려지기도 하고 그렇다"고 말했다.
     
    운영하던 펜션이 다 타버린 최상봉(72)씨도 "펜션을 생계수단으로 삼았는데 지금 당장 큰일이다. 여름 한 철 벌어서 다 먹고 살았는데 이제 (산불 때문에 관광객들이) 안 올까봐 걱정"이라며 "정부에서 저리로 지원도 해주고 생활 대책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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