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매일 아침 30분씩 백악관에서 '대통령 일일 브리핑(daily briefing)'이라는 정보를 보고받는다.
이 일일 정보보고의 60% 이상은 '시긴트(SIGINT)' 정보로 알려져 있다.
'시긴트' 정보란 미국 정보기관이 해외 인사들의 전화, 이메일 등 전자신호를 도청해 수집한 정보를 말한다. 이번에 유출된 미국 정부의 기밀 다수에도 이 '시긴트'라는 약어가 인쇄돼 있었다.
미국 특수부대는 지난해 이 '시긴트' 정보를 활용해 알카에다 수장인 아이만 알자와히리를 암살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미국 정보기관의 해외 도청 활동은 불법인가?
놀랍게도 합법이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해외정보감시법(FISA) 702조에 따라 해외에서 자유롭게 도청 활동을 하고 있다.
FISA 702조는 9.11 테러 이후 진행된 도청 프로그램에 유래한 한시법으로, 미국 정부에게 외국에서 영장 없이도 외국인의 통신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2008년 제정된 이후 두 차례 연장돼 올해 말 자동 폐기 예정이었지만, 이번 기밀유출 사건으로 미국 정가에서 되레 법 연장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해당 법 조항은 국가안보국(NSA)에게 구글(지메일), 페이스북, MS, 애플 등 미국 소유 플랫폼을 통한 외국인의 의사소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미국 정보 수집의 상징은 CIA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미국 대외 정보 수집의 대표 기관은 NSA다. NSA는 CIA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과 예산을 쓰는 조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FISA 702조는 '외국정보 특별 법원'이 감독하지만, 이 조항의 세부규칙을 승인할 뿐 개별 사례를 승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NSA가 법원의 영장 승인 없이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자유롭게 도청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정부의 이 같은 대담한 도청과 그에 대한 투명성 부족 때문에 미국 안에서도 FISA 702조는 상당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를 간파한 듯 국가정보국(DNI) 애브릴 헤이긴스 국장도 FISA 702조에 대해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면서도 "그러나 솔직히 말해 이 조항의 연장은 극히 희박하다"고 실토한 바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어 보인다.
기밀이 상당수 위조됐고, 따라서 미국의 도청에는 악의가 없어 보인다고 했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15일 미국 귀국길에도 이번 사안이 다음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의제로 다뤄질 계획은 없다고 확인했다.
더 나아가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양국은 신뢰와 믿음이 흔들리지 말자. 더 굳건히 하는 계기로 삼자'는 부분에 대해 (양국 간에) 인식이 확고하게 일치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이날 기사에서 "이번 기밀유출에서 보였듯이 미국정부의 도청의 규모(haul)는 가히 충격적으로 광범위했다"면서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대상의 첫 사례로 '대한민국 국가안보실'을 꼽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정보기관의 도청 행태를 폭로한 직후 당시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그해 10월 예정된 미국 국빈방문을 취소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