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해운대구의회 본회의장에서 김성수 부산 해운대구청장(왼쪽)이 한 구의원에게 화투(빨간 원)를 들어 보이고 있다. 해운대구의회 생중계 화면 캡처부산 해운대구의회 본회의에서 김성수 해운대구청장이 화투를 들고 등장해 도마에 올랐다. 한 구의원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구청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예산까지 대폭 삭감하자 이에 대해 항의성 메시지를 던진 것인데 양측의 반복된 갈등이 표면 위로 드러난 사례라는 분석이다.
지난 18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의회 본회의장. 회의장에 들어선 김성수 해운대구청장이 갑자기 주머니에서 화투를 꺼내더니 중계 카메라 앞에서 쥐고 흔들며 발언했다.
회의를 앞두고 서로 인사를 나누던 구의원들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김 구청장은 회의장 앞쪽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 앉기 전에 의원들을 향해 서서 다시 한번 화투를 꺼내 보였다.
이후 한 구의원이 "오늘 과장들은 안 옵니까"라고 묻자, 김 구청장은 다소 크고 격앙된 말투로 "과장들 안 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구의원들이 "왜 화를 내느냐"고 지적하자, 김 구청장은 "다 들리게 하려고 크게 이야기했다"고 받아쳤다.
김 구청장이 구의회 본회의장에 화투를 들고 나타난 이유는 당일 오전 한 방송사에서 보도한 '운촌마리나 사업' 관련 기사에 등장한 "짜고 치는 고스톱" 표현 때문이었다.
해당 보도에서는 구의회가 운촌마리나 사업 관련 구정 질문을 위해 구청에 질의서를 보냈는데, 구청이 질문 일부를 그대로 운촌마리나 사업자에게 다시 보낸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질의 당사자인 유점자 해운대구의원이 "구정 질문을 사전 유출한 건 답변자인 구청장이 사업자 대변인을 자처한 거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고 사업 공동체라는 증거로밖에 볼 수 없다"고 언급하는 인터뷰 내용이 나왔다.
운촌마리나 개발은 해운대구 동백섬 일대에 다목적 방파제와 요트 계류시설 등을 조성하는 해양수산부 주관 사업으로, 환경 훼손 등을 이유로 주민 반발이 거세자 2020년 사업이 중단됐다. 그러나 지난달 사업자가 공유수면 매립 기본계획 반영 요청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청. 부산 해운대구 제공이날 구정 질문에서도 유 의원과 김 구청장 간에 설전이 이어졌다.
유 의원은 "구정 질문서 일부를 사업자에게 대놓고 사전유출하고, 요청한 자료는 주지 않았다. 구청이 업자의 대변인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구청장은 "질문 내용이 사업자가 행한 조치사항이라 구는 알 수가 없어 사업자에게 물어본 것이다. 조치 사항을 물어본 게 어떻게 유출 개념에 들어가느냐"고 받아쳤다.
관련 질의가 끝난 뒤, 구의회는 김 구청장에게 화투를 흔들고 고함을 친 데 대해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김 구청장은 고함을 지르지 않았다며 사과를 거부했고, 의장은 김 구청장을 퇴장시켰다.
그러나 다음 구정 질문 답변자가 구청장이어서 의장은 구청장을 재차 들여보내 답을 하게 했다. 김 구청장은 이 자리에서 "약간 언짢은 표현을 한 부분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사과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구의원들은 구청장의 행동이 그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의원은 "의원의 '짜고 치는 고스톱' 인터뷰에 대해 구청장이 기분 나빴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발언을 구의회 회의장에서 한 것도 아닌데 회의장에 와서 화투를 내보이고 화를 내는 모습은 황당했다"며 "당사자가 아닌 다른 의원들 모두 너무 놀랐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김 구청장은 구의회가 추경 예산을 대규모 삭감해 일선 직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고스톱' 발언까지 나온 데 대해 항변하는 차원에서 벌인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운대구는 이번 추경에서 예산 385억 상당을 편성하려 했다. 이 가운데 순수 구비는 43개 사업 110억원 가량인데, 구의회는 예산안 심사에서 33%에 달하는 36억 9000만원을 삭감했다. 이런 가운데 구의회는 1억 350만원을 들여 25일부터 6박 8일간 스페인으로 공무국외출장을 떠날 계획이어서 구청 안팎에서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김 구청장은 "짜고 치는 고스톱은 패를 다 보여주고 한다는 건데, 구청이 해수부가 주관하는 운촌마리나 사업 관련해서 한 게 없는데 도대체 뭘 짜고 쳤냐는 취지에서 화투를 들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의회가 예산을 이런 규모로 삭감한 전례가 없다. 일선 과장들은 이에 대해 매우 흥분했고, 이런 이유로 과장들이 스스로 구의회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라며 "예산 삭감에 대한 불만이 구청 내부에 퍼져 있는 상태인데, 본회의 이후 '구청장이 우리를 대변해줘서 감사하다'는 직원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