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안 발표를 보류한 채 본격 한국전력공사 때리기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감사원의 감사 착수에 이어 산업통상자원부의 자체 감사를 통해 한전을 조준했지만 요금 인상안 발표를 앞두고 여론몰이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산업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산업부는 이날부터 '한국에너지공과대(KENTECH·한전공대)'에 대한 자체 감사에 착수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지난 주말에 한전 공대 측에 현장 감사 일정을 통보했고 오늘부터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지난해 9월 한전 감사실이 내놓은 업무 진단 컨설팅 결과에 대한 검증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앞서 한전 공대 관련 도덕적 해이 등을 언급하며 한전을 압박하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지난 18일 국민의힘 이철규 사무총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컨설팅 결과에서 한전공대 임직원들은 정부 등 출연금 391억원 중에서 208억원을 무단 전용해 인건비를 올리는 등 부당하게 전용한 위법이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산업부의 자체 감사와 별개로 감사원 역시 한전을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 중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일부 한전 직원들이 자신의 가족 명의로 태양광 사업을 하거나 법인카드 전용 등 내부 비리 문제를 감사 중"이라며 "한전 공대에 관한 것은 감사원은 설립 과정에 대한 부분을 보는 것이고, 산업부는 설립 이후 운영 차원에서 살펴보는 것"이라고 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한전 공대' 설립 과정에서 비리나 의혹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감사원이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지난해 말부터 이미 감사원은 태양광 사업 비리 의혹 등에 대해 조사 중이다. 감사원은 산업부에 비해 전임 정권과 관련된 다소 정치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는 셈이다.
산업부의 자체 조사나 감사원의 감사 모두 어느 정도 의혹이 있는 부분에 대해 진행한다는 측면에선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문제는 전기요금 인상안 가능성이 거론된 상황에서 한전 등 에너지 공기업들에 대한 압박 공세가 여론몰이의 일환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 속에서 큰 폭의 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정부와 여당 입장에선 '공기업 때리기'를 통해 여론의 분노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관련 산업계 민·당·정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20일까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민‧당‧정 또는 당‧정협의를 열었지만 요금 인상과 관련해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반면 인상안 발표 시기와 인상 폭 등을 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에너지 공기업인 한전과 가스공사를 향한 공세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내부적으로 선(先) 자구책‧후(後) 요금인상 기조를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요금 인상안 발표 전에 한전과 가스공사 측에 뼈를 깎는 자구책 발표를 주문하며 국민들과 함께 고통을 분담하는 모습을 연출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한전은 이미 지난해 32조7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들어 발행한 한전채만 9조원3천억원을 초과한 상태다. 지난해 말 한전채 발행 한도를 대폭 늘리는 안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통과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속도가 지속될 경우 자본잠식 위기설까지 나오고 있다.
현행법상 한전채의 경우,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친 금액의 5배를 초과한 발행은 불가능하다. 발행 한도(약 104조원)의 약 75%를 이미 발행한 상태로, 신규로 발행이 가능한 한전채는 약 28조원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 중에서 9조원, 다시 말해서 약 33%를 이미 발행했기 때문에 위험 수위에 근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여론몰이 대신 여름철로 접어들기 전에 큰 폭의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빅 스텝' 요금 인상을 통해 사전에 국민들에게 가격 시그널을 주며 에너지 절약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한전은 매년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 공기업인데 전기요금 인상을 앞둔 시점에 하필 이런 문제가 커진 것에 대해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게 된다"며 "'빅 스텝 요금 인상'이라는 본질 대책을 눈앞에 두고도 너무 멀리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