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평 브런치 스토리 캡처코로나19가 덮친 세상은 단절을 선택했다.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를 했고, 병약한 노약자들은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 아이들이나 가족이 코로나에 걸리면 긴 시간 격리되어 고통과 우울감(코로나블루)을 감수해야 했다.
'띵동~'
식물이 도착했습니다.
태초의 인간이 그랬던 것처럼 고립된 세상에서 현대인은 본능적으로 식물 키우기를 선택했다.
노인들은 지자체나 복지기관에서 보내온 식물을 키웠고, 재택근무가 많아진 직장인들은 집안 분위기를 바꾸려 식물을 사들였다. 특히 공기정화 식물이 인기가 많았다. 아이를 키우는 집은 어린이집이나 학교, 학원에서 보내온 식물을 키웠다.
아이들은 회사 일에 집안 일에 바쁜 나머지 조금이라도 자기 이름이 붙어있는 식물에 소홀할라 치면 물을 주거나 화분 옮겨심기를 해야 한다며 닥달을 해댔다. 집사가 따로 없다.
코로나블루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부담이 적은 '원예치료'(horticultural therapy)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쉽게만 봤던 식물 키우기는 '반려동물 집사'처럼 손이 많이 가자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키우는 족족 죽어나가는 이른바 '연쇄 살식마'가 속출했다.
대부분 물만 잘 줘도 알아서 잘 크는 식물이지만 상호작용이 없는 무관심의 결과는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그나마 방울토마토, 상추, 허브와 같은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소확행'이라도 누릴 수 있었다.
농부나 원예사 할 것도 아닌데 식물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니, 어떻게 교감해야 잘 클까.
브런치 스토리에서 아기자기한 그림체와 따뜻한 메시지로 인기를 끈 '식집사' 일러스트레이터 김태평의 '슬기로운 식물생활' 에피소드가 '안녕, 나의 식물 친구'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발견하고 경험하는 즐거움을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것으로 나를 채우는 일에 열심인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작가가 초록빛으로 일상을 채워나가며 식물과 함께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을 글과 그림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문학수첩 제공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작가 역시 재택 근무가 길어지고 외부와 단절된 생활이 계속되자 취미로 다니시 시작한 피아노 학원에서 만난 유칼립투스 나무에 반해 무작정 키워보기로 했다. 초보답게 키우기 쉬운 식물을 찾았고 현명한 쇼퍼답게 중고마켓에서 입양하기로 한다.
그렇게 선택한 식물은 '여인초'라고도 불리는 부채파초(traveller's palm). 여성을 뜻하는 '여인'(女人)이 아니라 '여행객'(旅人)을 뜻한다. 과거 목마른 여행자들이 물을 담아 마시거나 맺힌 이슬로 갈증을 해소하는 넓은 잎을 가진 식물이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작가는 3만5천 원에 입양한 이 여인초에게 '티파니'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후 피아노 선생님에게 입양소식을 전하자 자신이 키우던 스타티필름과 산세베리아까지 덤으로 얻게된 작가의 '식집사' 생활이 펼쳐진다.
조금씩 늘어나는 식물들을 키우며 작가는 "식물은 고마운 존재다. 새잎을 내어주며 나를 기쁘게 했고, 의외로 강인한 모습으로 위로와 용기를 심어주기도 했다"며 "식물의 죽음을 맞주하면서 미련보다 더 의연하게 나아가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됐다"고 고백한다.
식물을 돌보는 사람은 책임감을 배우고 희망적인 느낌과 양육한다는 느낌을 경험하며 사회적 통합, 상호작용 및 집단응집력을 높인다고 한다. 근육 회복과 균형과 힘을 회복하는 신체적 재활훈련에도 사용되며 면역력 향상, 심박 감소 등의 입증된 효과도 있다.
미국원예치료협회(AHTA)에 따르면 식물 키우기는 원예치료(horticultural therapy) 효과가 있다. 식물은 어떻게 돌보느냐에 따라 직접적으로 반응하는데, 이러한 피드백은 올바른 행동을 촉진하고 자기가치감을 증대시킨다는 것이다.
식물은 실패에 대해서도 쉽게 용서하는데 생존 능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라고. 생명체로서의 식물의 반응은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현실 인식을 할 수 있게 돕고 돌보는 사람에게 부담을 덜어준다.
AHTA는 특히 우리가 다른 생명체인 식물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운다면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의 큰 보답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작가는 충분한 지식이 부족한 나머지 식물의 상태가 이상해질 때마다 식물이 직접 말을 해줬으면 했다며 답답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이번엔 물 주기가 조금 빨랐어, 참고해" 내지는 "요즘은 통풍이 부족한걸? 신경 좀 써줘"라고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말이다. 적어도 식물이 아파하는 이유를 속시원하게 알고 싶었다고. 상호작용과 교감 현상이다.
문학수첩 제공작가는 식린이(식물을 처음 키우는 초보)에서 식집사(식물을 가족같이 돌보며 애정을 쏟는 사람), 가드너(Gardener)로 거듭나는 과정에 입양한 다양한 식물들과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에 웹툰 형식의 그림과 일러스트를 더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사전적 식물도감이나 원예에 대한 학술적, 전문적 지식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식린이와 식집사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더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는 이 책에 대해 자신의 브런치 스토리에 쓴 글에서 "식물을 키우기가 망설여지는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부족한 사람도 식물을 키운다'는 용기를 주는 희망곡이, 이미 식물을 잘 키우는 분들이라면 '식린이의 삽질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강 건너 불구경 하는 기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책 보기를 유혹한다.
지금은 '연쇄 살식마'의 시기를 지난 책 속 저자의 경험들은 식물을 키우는 방법보다 식물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방법이 무엇인지 일깨운다. 그 뒤에 따르는 마음의 보상 크기도 달라질 수 있음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식물을 키운다는 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중략)… 그(식물)가 원하는 정도의 관심을 주고, 심지어 좋아하는 분위기(환경), 취향을 모두 알고 있다면? 아주 훌륭하다!" -책 속에서.
김태평 지음ㅣ문학수첩ㅣ212쪽ㅣ1만 5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