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굣길을 덮친 1.7t짜리 화물. 김혜민 기자대형 화물이 보행로를 덮쳐 초등학생이 참변을 당한 부산 영도구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는 참혹했던 당시 사고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피해자와 인근 주민은 평소에도 불법 주정차와 하차 작업이 반복됐다며, 이번 사고는 명백한 인재라고 강조했다.
28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구의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 좁은 도로 양쪽으로 설치된 노란색 안전 펜스 수십 개가 힘없이 무너져 흔적만 남아 있었다. 보행로에는 길을 막을 정도로 거대한 화물이 덩그러니 놓여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경찰은 현장을 살핀 뒤 사고 목격자와 관계자 등을 상대로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주민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사고 현장을 지켜봤다.
이곳에서는 이날 오전 8시 20분쯤 무게만 1.7t에 달하는 원통형 화물이 굴러 내리면서 보행로를 덮쳤다. 이 사고로 초등학생 A(10)양이 숨지고 아이 2명과 성인 B(30대·여)씨 등 3명이 경상을 입었다.
부산 영도구 청학동의 한 공장에서 하역 작업을 하던 중 1.7t짜리 낙하물을 떨어뜨려 초등학교 등굣길을 덮쳤다. 김혜민 기자거대한 화물이 굴러내려 올 당시 현장에 있다가 가까스로 큰 화를 면한 B씨는 병원 치료를 받은 뒤 다시 현장에 돌아와 사고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B씨는 "8살 아이를 등교시키던 중 뒤에서 갑자기 화물이 굴러와 저와 아이들을 치고 반대편 아파트 단지 벽에 부딪혔다"며 "앞에 두 아이가 쓰러져 한 명을 먼저 일으켰고, 다른 아이는 일어나지 못해 확인해 보니 의식이 없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전했다.
B씨의 남편은 "오전 시간에 초등학교 가는 아이들도 많고 바로 앞에 유치원도 있는데 이렇게 큰 컨테이너 차량이 들어와도 되느냐"면서 "아예 차량 출입을 막아야 하는데 지자체에서 안전 펜스만 설치해 놓고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 안전 펜스와 속도 신호등도 주민들이 민원 넣어서 작년에야 설치됐다"고 토로했다.
인근 주민인 목격자 C(50대·남)씨도 급박했던 사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C씨는 "주변에 차를 세우고 있는데 커다란 이불솜 같은 게 빠른 속도로 계속 굴러갔다. 다른 차에 부딪힐까 조마조마했다. 지게차 한 대도 뒤따라 내려가길래 달려가 보니 사고가 나 있었다"며 "좁은 도로에 커다란 차가 와서 아침마다 수시로 하역 작업을 하고 적재물도 항상 길가에 아무렇게나 놓여있어서 늘 불안했다"고 말했다.
부산 영도구의 내리막길에 원통형 화물 서너 개가 쌓여있다. 김혜민 기자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인근 공장에서 컨테이너에 실린 대형 원재료를 지게차로 내리던 중 발생했다. 1t에서 최대 1.7t에 달하는 화물을 내리던 중 일부가 도로에 떨어져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굴러 내려갔다.
화물은 무려 160m를 굴러가며 더욱 속도가 빨라졌고, 뒤에서 빠르게 굴러오는 화물을 보지 못한 A양이 참변을 당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화물은 보행로를 덮친 뒤에도 반대편 도로로 굴러 벽을 들이받은 뒤에야 멈췄다.
조사 결과 사고가 난 지점과 공장 앞 도로는 모두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확인됐다. 사고 당시 작업 중이던 컨테이너 차량은 불법으로 차를 세운 채 화물을 내려 주변 도로에 쌓아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작업 관계자를 상대로 안전조치 여부 등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영도경찰서 관계자는 "사고 지점 주변에서 불법 주차가 계속 문제가 됐다는 반응을 다수 확보했다. 당시에도 공장 관계자가 컨테이너를 불법으로 세워두고 작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정확한 사고 경위와 안전조치 여부 등을 조사한 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