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투자컨설팅업체 라덕연 대표. 연합뉴스 검찰이 SG증권발 무더기 폭락사태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H투자자문사 라덕연 대표를 주가조작 '주범'으로 보고 체포했다. '시세조종은 없었다'는 라 대표의 해명과 정반대의 판단을 내린 것이다. 라 대표 체포로 동력을 확보한 검찰 수사의 범위가 정‧재계 인사들로 뻗어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합동수사팀은 지난 9일 라 대표를 자본시장법 위반(시세조종·무등록 투자일임업), 범죄수익은닉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검찰은 "(라 대표는) 범행을 주도한 핵심 인물로서 중한 처벌이 예상된다"고 체포 배경을 설명했다. 검찰이 이날 라 대표 신병 확보에 전격 나선 것은 조사 시점이 더 늦춰지거나 미리 통보된 날짜에 소환이 이뤄질 경우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라 대표에게 적용한 혐의에 대한 소명이 일정 부분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라 대표가 시세조정이나 통정매매를 인정하는지 여부는 검찰 입장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객관적인 증거로 따져 볼 부분"이라며 "다만 혐의 소명이 됐으니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하지 않았겠느냐"고 일축했다. 같은 날 검찰은 라 대표 최측근이자, 의사 등 고액 투자자들을 모집했다고 지목된 변모씨와 전직 프로골퍼 안모씨도 체포했다.
라 대표 일당은 투자자들로부터 휴대전화와 개인정보를 넘겨받아 통정거래를 통해 주가를 띄운 혐의를 받는다. 이에 검찰은 지난달 28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과 합동수사팀을 꾸려 라 대표 일당을 입건하는 등 수사를 이어왔다.
지난 4일에는 라 대표 일당의 '비밀 사무실'과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라 대표에게 거액을 맡긴 투자자들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고 있다. 통정매매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 200여 대도 경찰로부터 넘겨받았다.
수사팀은 라 대표 일당의 금융거래와 통신 내역을 추적해 자금 흐름을 분석하는 한편, 구체적 범행 수법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다만 통정거래 여부를 확인하는 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릴 전망이다.
주가 폭락 직전 주식을 처분한 다우키움그룹 김익래 전 회장과 서울도시가스 김영민 회장 등이 이번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이 있는지 여부도 검찰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주가가 시장 원리에 의해 상승하고 폭락한 것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다면 그것은 범죄"라며 "수사 핵심은 경제적인 이득을 취득하기 위한 개입이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 아난티그룹의 이중명 전 회장,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장모씨 등 이번 의혹 연루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유력 인사들까지 검찰 조사 범위가 넓혀질 수 있다.
검찰은 라 대표에게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할지도 검토 중이다. 라 대표는 투자 수수료를 다른 법인을 통해 우회로 받아 챙겨 범죄수익을 은닉하고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투자자들로부터 수익 수수료를 골프연습장, 피부 미용업체, 음식점 등 본인 관계 법인을 통해 받아 정상적인 자금인 것처럼 꾸몄다는 게 의혹 내용의 골자다.
실제로 라 대표와 관련이 있는 피부 미용업체를 살펴보면 수상한 지점이 적지 않다. 라 대표가 사내이사를 맡고 있는 서울 강남구 A 피부 미용업체의 법인 등기상 주소로 찾아가 보니 아파트였고, 이 업체는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류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A 업체의 등기상 대표이사 임모씨는 실제 운영되고 있는 강남구 B 피부 미용업체의 사내이사직도 맡고 있는데, B 업체 대표 C씨는 9일 CBS노컷뉴스와 만나 "임씨는 라 대표로부터 소개를 받은 고객이었으며, 사내이사를 맡고 있는지는 몰랐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을 내놨다. 임씨와 부부 관계로 알려진 김모씨는 라 대표 관련 법인 여러 곳의 감사도 맡고 있다. 임씨와는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C씨는 다수의 투자자들이 라 대표 소개로 이 업체를 찾은 건 맞지만 순수 고객이었고, 투자 수익 수수료와 업체는 무관하다는 취지의 해명도 덧붙였다. 라 대표를 알게 된 경위에 대해선 "고객이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해외 골프장 등 라 대표가 범죄수익을 은닉한 것으로 보이는 재산의 규모를 파악하고 이후 추징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주가폭락 투자자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대건의 공형진 변호사가 9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주가조작 세력으로 지목된 투자컨설팅업체 H사 라덕연 대표 등에 대한 고소장 접수를 위해 청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한편 투자자 60여 명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대건은 같은 날 라 대표와 측근 등 6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배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했다. 이날 고소장을 제출하러 온 공형진 변호사는 "1차 고소인은 66명이고 이들의 피해액은 1350억 원 정도 된다"며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 주가 조작사건이 아닌 가치 투자를 빙자한 폰지사기"라고 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통정거래에 대한 인식도 없었고, CFD(차액결제거래)거래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며 "자기 투자금이 주가조작 원금으로 쓰인 사실을 몰랐다"는 입장을 밝혔다.
투자자 측은 "금융감독원은 3년 전 이미 라덕연 일당이 주가조작, 폰지사기를 시작한 이후 키움증권의 CFD(차액결제거래) 계좌를 조사했는데, 단 이틀 만에 '지적사항 없음'이라는 졸속 행정결과를 발표했다"며 금융당국 책임론도 제기했다. 법조계에선 투자자들이 주가조작 범행을 인지했는지 여부에 따라 공범과 피해자로 구분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