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류영주 기자 정부와 국민의힘은 14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야당이 강행 처리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수용해 이르면 1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이 법안의 거부권을 심의·의결할 것으로 보인다. 간호법 제정안의 거부권 행사 시한은 19일까지다.
대통령실은 여야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고심 끝에 거부권 행사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사회적 논란이 되는 법안이나 여야 합의가 아닌 일방 처리로 통과한 법안 등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원칙을 강조해 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부 여당의 건의를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직역간 협업과 권익 보호 통해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법안인지 조금 더 지켜보겠다"며 "간호사를 의료인에서 떼내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법안, 간호조무사에 대한 차별 명시, 요양업 종사자 등 약소층 생계를 박탈할 수 있는 등 갈등의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어 우려스러운 점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거부권이 행사될 경우 간호법 제정안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윤 대통령의 '거부권 2호' 법률안이 된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 공관에서 열린 제9차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국민의힘과 정부·대통령실은 이날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지난달 27일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했다.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당정은 간호법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입법독주법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라는 점에 공감했다"며 "간호법안은 보건의료인 간 신뢰와 협업을 저해하여 국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심대하다"고 했다. 이어 "간호법안은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의료체계 붕괴법'"이라며 "'간호조무사 차별법'이자 '신카스트 제도법'"이라고 했다.
당정은 이날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해 법률적 근거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처우 개선은 정부 정책으로 가능한 만큼 간호사 처우 개선은 간호법안 없이도 가능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지난달 25일 정부가 발표한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착실히 이행해 나가기로 했다.
당정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법안이 국무회의에 부의되는 만큼 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여당의 입장이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의료시스템 붕괴로 인한 국민들의 건강권 위협 등을 감안할 때 이제 입장을 정리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 공관에서 열린 제9차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대통령실 김대기 비서실장도 "법안 내용을 떠나서 절차에 있어서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이 충분히 수렴되지 못하고 힘에 의해 어느 일방의 이익만 반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라고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15일 간호법 제정안이 관련 직역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의료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윤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에 있는 간호사 업무 규정을 별도 법안으로 분리해 업무 범위, 처우 개선 등을 담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난달 27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됐다. 간호사단체는 처우 개선을 이유로 법안 제정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지만 의사단체 등은 '단독 개원' 가능성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12일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 대한간호협회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본격적인 단체 행동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