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태평양, 민은경, 김준수(왼쪽부터) . 연합뉴스/국립창극단 제공국립창극단이 신작 '베니스의 상인들'을 6월 8일부터 11일까지 서울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1596~1597)을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우리 고유의 언어와 소리로 풀어냈다.
이성열 연출은 18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베니스의 상인들' 기자간담회에서 "원작이 수 백 년 전 작품이라 현대인의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도 있다. 김은성 작가가 원작이 지닌 종교적·인종적 편견을 과감하게 탈색해서 동시대 관객의 감수성에 맞는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고 말했다.
원작의 유대인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독점적 자본을 운용하는 노회한 대자본가로, 베니스의 낭만적 무역상인 안토니오는 소상인 조합의 젊은 리더로 탈바꿈시켰다.
이 연출은 "샤일록은 악인이라기보다는 철저한 자본가다. 3대에 걸쳐 부를 물려받은 재벌 3세 같은 인물로 기득권을 발전·확장시키려 한다. 반면 흙수저인 안토니오는 기득권을 무너뜨리려는 민중의 주축 세력이다. 역경 속에서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모습으로 이들과 대결 구도를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국립창극단 대표 스타들이 총출동한다. 샤일록은 김준수가, 안토니오는 유태평양이, 벨몬트의 주인이자 지혜로운 여인 포샤는 민은경이, 사랑에 빠진 젊은 청년 바사니오는 김수인이 연기한다.
이 연출은 "샤일록은 간교하고 영리한 이미지, 안토니오는 강직하고 우직한 이미지를 떠올렸다"며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세상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샤일록의 대사가 있는데 요즘 세상이 그런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준수는 "샤일록이 희극 속 비극적인 인물이라 마치 비극을 공연하는 느낌이다. 증오가 증오를 부르고 복수심이 스스로를 파멸시킨다는 교훈을 주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작품은 공동체의 연대와 희망에 방점을 찍는다. 이 연출은 "젊은이들의 사랑과 패기, 시민들의 연대로 벽을 뚫고 장애물을 걷어내는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긍정적 에너지와 희망을 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원작 제목에 '들'을 붙인 것도 베니스의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젊은 상인들이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처음 창극 대본을 쓴 김은성 작가는 "고박 1년을 매달렸다. 우리 말맛을 살리는 운율과 시적 가사를 쓰기 위해 몸부림쳤다"며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작을 다시 읽었다. 종교적 이유로 모두 기피하는 고리대금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샤일록이 사회적 약자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를 혼내는 안토니오와 친구들이 야속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원작의 희극성은 우리 소리와 만나 극대화된다. 한승석이 작창, 원일이 작곡을 맡았다. 두 예술가가 완성한 음악은 총 62곡으로, 국립창극단 역대 작품 중 최다곡이다.
작곡가 원일은 "저는 이번 작품에서 한 곡도 만들지 않았다. 100% 작창이다. 한승석의 작창은 판소리 원형의 힘을 그대로 가져간다. 대중적 음악의 프레임 안에서 작창의 힘을 녹여내는 것이 제 역할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록부터 전자음악, 팝, 헤비메탈 등 다양한 음악 장르가 섞여 있다. 샤일록은 록적인 사운드, 안토니오는 목소리와 리듬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