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북적이는 집에서 사랑 넘치는 8남매…"서로 가장 좋은 친구" ②평균 출산율 3명인 교회…"아이 함께 키워준다는 믿음 덕분" ③다섯 남자아이 입양한 부부…6형제가 만드는 행복의 모양 ④부모는 슈퍼맨이 아니야…'같이 육아'로 아빠도 배운다 ⑤"내 자식 같아서" 온정 전하는 아버지들…"돌봄친화 사회로 이어져야" ⑥신생아 '1만 명' 만난 베테랑 의사가 말하는 '산부인과 의사생활' ⑦"나부터 먼저" 대한민국 1호 민간 출산전도사가 된 회장님 ⑧"아이는 공동체가 함께" 교회가 시작한 돌봄…부산에도 퍼지나 ⑨"한 지붕 아래 이모, 삼촌만 20명 넘어" 돌봄공동체 '일오집' ⑩"아이 가지려는 귀한마음, 비수로 돌아오네"난임여성 고군분투 임신기 ⑪초저출생 위기, '가임력' 높이는 냉동난자 지원 정책 고민해야 (계속) |
미래에 대한 '보험'으로 인식하는 냉동난자 시술
김다영(37세, 가명)씨와 싱글 친구 셋. 이들은 10년 넘게 계 모임을 하면서 목돈이 생기면 함께 여행을 가거나, 맛집투어, 콘서트를 함께 즐기곤 했다.
어느 정도 직장에서 자리도 잡았고, 싱글 친구들과 누리는 생활도 만족스런 요즘이다. 하지만, 지금이야 싱글생활에 부족함이 없지만, 나중에 정말 아이를 갖고 싶으면 어쩌지? 간절히 원하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농반진반으로 친구들과 "다음번 곗돈을 쓸 타이밍에는 같이 건강검진도 받고, 냉동 난자 시술도 받자.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라고 장난삼아 도원결의를 했다.
제법 곗돈이 쌓일 무렵, 건강 상태도 확인하고 상담도 받을 겸 방문한 산부인과에서 예상 밖의 결과를 확인했다.
꾸준히 운동을 해온 터라 건강에는 자신 있었는데, 뜻밖에 난소 나이가 42살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때부터 냉동난자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난임 치료 끝에 출산한 지인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듣고 냉동난자 시술을 결정했다.
어렵게 결단을 내렸지만, 막상 냉동난자 시술을 받으려니 주저됐다. 2~3주 동안 병원을 3~4차례 찾아 검진을 받아야 하고, 매일 같은 시간대에 자가배란 주사를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약품을 냉장보관해야하는데, 회사 냉장고에 보관할 수 없는 노릇. 그래도 35세 이후로는 가임력이 현격히 떨어진다는 의료진 말에 시술을 결정했다. 회사에는 개인사유로 휴가를 몇 차례 냈다.
"결혼과 출산 생각은 분명히 있는데, 한해 한해 나이가 들수록 이성을 만나기 어렵더라고요. 평생 함께할 배우자니 신중해지는 것도 있고. 생물학적 나이는 막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니 결정이 편해졌습니다. 냉동난자는 가족을 꾸리는 미래에 대한 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단 김씨의 사례뿐 아니다. 미혼여성들의 냉동난자 시술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갈수록 결혼, 첫출산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냉동난자 시술로 가임력을 높이려는 미혼들의 문의가 많다.
"결혼 적령기는 없지만, 임신 적령기는 분명히 있다"
난임전문 세화병원 정수전 원장. 세화병원 제공 난임전문 세화병원 정수전 원장에게 냉동난자 시술 현황과 사례, 필요성을 들어봤다.
"결혼 적령기라는 것은 없죠. 하지만, 임신 적령기는 분명히 있습니다"
정 원장은 단호히 말했다.
"보통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안정됐을 때 결혼과 임신을 많이 생각하죠. 생리도 규칙적이고 큰 질병이 없으면 임신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배란 기능은 훨씬 더 빨리 떨어지기 때문이죠. 임신 적령기가 분명히 있고, 그것에 맞춰 대비를 하시라고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부산지역 부부 10쌍 중 2쌍이 난임으로 고통받고 있다. 지난해 부산지역 난임 여성만 1만 5961명으로 집계됐다.
여성의 가임력은 20대에 최고를 보이고 35세 이후 급격히 감소한다. 40대에 접어들면 자연임신 가능성이 5%로 현저히 떨어진다.
"최근 결혼과 첫아이 임신 연령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부산지역에서 난임부부가 가장 많이 찾는 저희 병원에서도 시험관 아기 시술 건수 중 50% 이상이 39세 이상입니다. 임신하려는 연령대가 갈수록 늘어나는게 의료현장에서 느껴집니다"
지난해 부산의 평균 초혼 연령은 여성 31.3세, 남성 33.7세로 집계됐다. 첫아이 출산 연령대는 2021년 기준으로 32.82세인데 이는 2017년 31.91세보다 1살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연령대가 높아지는 추세는 가속화하고 있다.
미혼 가임력 높이는 정책 도입 필요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혼여성들의 냉동난자 시술에 대한 사회적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방송인 사유리씨가 정자공여를 통해 아이를 출산하고, 잘 양육하는 모습이 자주 비치면서 '자발적 미혼모'에 대한 편견도 많이 없어졌다.
실제 결혼 이후 자연임신, 과배란 주사로도 임신이 되지 않자 미혼 때 시술한 냉동난자로 출산까지 성공한 사례가 5건있다.
"2020년 만 37세 여성이 난소검사를 받은 결과 난소나이 지표인 AMH가 43세, 난포자극 호르몬 수치인 FSH가 10.1로 높게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자연임신이 어렵겠다는 의학적 판단에 따라 냉동난자 시술로 난자 9개 동결, 2021년 결혼하고 냉동보관난자로 시험관 아기 시술로 임신에 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밖에 30대 후반 미혼여성도 결혼이 늦어지자, 부모님의 권유로 냉동난자 시술을 받는 사례도 많습니다"
기혼인 경우에도 시험관 아이 시술을 위해 난자를 채취했지만, 남편이 무정자증으로 판명 나 수정하지 못하고 난자를 동결 보존하는 사례도 있다.
외국의 경우 가임력 보존을 위한 시술이 보편화 돼 있다.
"외국에는 미혼여성이 암 등 중증 질환 수술이나 치료를 받기 전 난자냉동보관이 의무사항입니다. 환자에게 정확하게 고지를 해야하고, 이 과정을 건너뛰면 법적 쟁점이 됩니다.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가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의학적 난자 냉동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의학적, 사회적으로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합니다"
저출생 문제가 국가적 난제로 떠오르면서 난임부부에 대한 지원 문턱은 많이 낮아졌다. 하지만, 같은 시술이라도 미혼의 경우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보통 난자냉동 시술 비용은 400~500만원 가량, 기혼은 120만원 상당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미혼여성 지원은 전무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서울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미혼을 포함한 20~40대 여성을 대상으로 난자 냉동 수술 비용을 최대 200만원(첫 시술비용 50%) 지원하는 정책은 눈여겨볼 만하다.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늙고 있는 부산의 경우 난임정책에만 71억원을 책정했지만, 미혼 가임력을 높이는 예산은 전혀 없다.
"저출생 극복을 위해 백화점식으로 다방면에 예산을 나눌게 아니라 실제 임신을 원하는 이들의 가임력을 집중적으로 높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건강검진 항목에 난소 기능 검사, 난소 나이 평가, 정자 검사 등 가임력 검사를 넣는 것도 방법입니다. 또,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대기업에서는 미혼들이 임신에 대비할 수 있게 휴가, 예산 지원도 있는데, 이같은 분위기가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냉동난자 시술 방법? 실제 임신율은?
냉동난자 시술 절차. 자료사진
냉동난자 시술을 받는 절차는 이렇다. 생리가 시작한 직후 병원을 방문해 진찰을 받은 뒤 평균 6~9일간 과배란 유도 주사제를 투여한다. 주사제를 다 맞으면 이틀 뒤 난자 재취 시술이 이뤄진다. 채취한 난자는 유리화 동결법으로 냉동한다.
의료진은 질초음파를 보면서 난자 채취용 바늘을 이용해 난소에서 난자를 흡입해 채취한다. 수면마취로 실시해 큰통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취된 난자는 성숙도에 따라 여러등급으로 분리하고, 성숙된 난자를 선별한다. 유리화 동결법으로 동결해 -196도 액체질소에서 보존한다. 이후 임신을 원하면 난자를 해동하고, 남성의 정자와 수정한 뒤 자궁에 이식해 임신을 유도한다.
보통 냉동난자는 3년 기준으로 보관하고, 최장 5년까지 보존한다. 난자 보존기간은 생명윤리법에 적용되지 않아 본인 의사에 따라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부산지역에는 난임전문 병원이 16개 있다. 이 가운데 규모가 큰편인 세화병원의 경우 2014년부터 2022년까지 미혼 155건, 기혼 61건 등 총 216건의 냉동난자 시술이 시행됐다. 냉동난자를 이용한 임신 이식 프로그램은 24건을 진행했는데, 이 가운데 9명이 임신에 성공하면서 임신율 38%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