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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47초와 7년…강남 스쿨존 가해자의 '몹쓸' 선택

법조

    [법정B컷]47초와 7년…강남 스쿨존 가해자의 '몹쓸' 선택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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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주운전을 하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스쿨존에서 9살 초등학생을 쳐 숨지게 한 고모(39)씨가 지난달 31일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른바 '민식이법(어린이보호구역치사·상)'을 적용받은 사건 중 가장 높은 수준의 형량이지만, 여론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공분하는 모습입니다. 당초 검찰의 구형은 징역 20년이었거든요.

    재판부가 고씨에 대한 도주치사 혐의, 즉 뺑소니 부분을 무죄로 본 결과인데 검찰이 공판 과정에서 완벽하게 고씨의 뺑소니 의사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도주치사 혐의가 인정되려면 사고를 인식했는지, 또 도망갈 의사가 있었는지 이 두가지가 모두 증명돼야 합니다. 고씨가 사고를 인식하긴 했지만 도망갈 의사는 없었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한번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날 오후 무슨 일이…가능성과 사실의 차이


    참극은 지난해 12월 2일 오후 4시 57분 5초쯤 발생했습니다. 고씨는 피해자와 충돌한 즉시 차를 멈추지 못한 채 그대로 지나쳐 버렸습니다. 오르막길을 서행해 사고 현장으로부터 16미터 거리에 있던 자신의 집 주차장 입구에서야 멈춰섰습니다. 개폐문이 열리고 고씨의 차는 CC(폐쇄회로)TV에서 사라집니다. (※고씨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구역에 주차했습니다)  

    오후 4시 57분 53초쯤 주차장에서 현장으로 뛰어나오는 고씨가 다시 CCTV에 포착됩니다. 현장을 이탈한 시간은 45초에서 47초. 이 47초 때문에 고씨에게 뺑소니라는 아주 무거운 혐의 하나가 더해진 겁니다.
     
    현장으로 돌아온 고씨는 뒤따라오던 차량 차주와 근처 꽃집 주인에게 자신이 아이를 차로 쳤다며 119 신고를 요청합니다. 목격자들은 오후 4시 58분에 신고했고 119 구조대는 오후 5시 9분 현장에 도착합니다. 고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자수하고 현행범으로 체포됐고요.  

    '47초 이탈'이 뺑소니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47초 일찍 구조가 이뤄졌더라면 아이가 살았을지 여부일 겁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47초는 영겁의 시간이었을 수 있으니까요. 당시 구조 현장에 있던 구조대원의 증언 보시죠.  

    2023. 4. 23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공판 中
    검사: 신고 당시 피해자 호흡이 있었다는 전달을 받고 출동했다고 했는데, 출동하셔서 피해자 상태를 봤을 때 호흡 상태는 어땠나요
     
    대원: 도착 당시 맥박이 미약하게 뛰는 것 같아서 필수 응급 처치를 한 뒤 빠르게 구급차로 이동했습니다. 구급차 안에서 다시 호흡 여부를 평가했을 때 호흡이 없었습니다.

    검사: 병원 도착 당시 피해자 상태는 어땠나요?

    대원: 병원 도착 시에는 호흡이 없었고 심장이 뛰지 않는 심정지 상태였습니다.

    검사: 가정적 질문인데 답변 곤란하시면 곤란하다고 하면 됩니다. 신고가 빨랐다거나 현장에 빨리 도착해서 이송했다면 피해자를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지 생각해 봤나요?

    대원: (답 없음)

    검사: 판단하시기 어려우시면

    대원: 어렵습니다.

    변호사: 구급차에서 이미 아이 맥박이 만져지지 않고, CPR 하면서 심장 수축도 잘 안되고,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거죠. 사고 발생 후 피고인이 현장 이탈한 시간이 40초인데, 40초 먼저 신고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요?

    대원: (답 없음)

    우리가 고씨에게 분노하는 건 그가 조금이라도 빨리 신고했더라면 아이가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가능성을 사실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족의 분노와 슬픔이 조금이나마 사그라들지 않는 것 역시 감히 짐작컨대 이 때문일 거고요. 하지만 증인신문을 보면 아이의 생존 가능성은 사실로써 입증되지는 않았습니다.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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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씨가 받는 혐의는 도주치사, 어린이보호구역치사, 위험운전치사, 음주운전까지 총 4개나 됩니다. 그렇다면 '민식이법'을 위반한 피고인 중 선고 형량은 어떻게 될까요?

    지난 3년간 민식이법 위반 사건 1심 판결 226건 중 실형은 5%, 집행유예 47%였고 실형 선고 형량은 최소 징역 8개월, 최대 징역 5년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어린이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경우에도 절반 이상은 집행유예에 그쳤다고 합니다. (출처: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실)

    고씨는 평균치보다 무거운 형을 받은 거죠. 그렇더라도 도주치사 혐의가 인정됐더라면 형량은 더 무거웠을 겁니다. 고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즉각적인 구호조치가 필요함에도 피고인이 이러한 조치를 곧바로 취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하여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재판부 역시 2차 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던 점 등을 지적하며 양형 사유로 고려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재판부는 고씨의 혐의 중 가장 무거운 '뺑소니'를 무죄라고 봤을까요? 우선 고씨가 무언가를 쳤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거라고 봤습니다. 고씨는 공판 과정에서 과속방지턱을 넘은 것이라는 취지로 답하며 아예 인식하지 못했다고 항변했는데요.

    재판부가 현장에 직접 나가 검증하고 차량 내 블랙박스를 분석해 봤더니 사고 시각 차량이 심하게 흔들린 영상이 녹화돼 있었다고 합니다. 고씨는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아이씨, 말도 안돼"라고 말했고요.

    2023. 5. 3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선고 中
    재판부:  물건을 친 것으로 인식했다면 위와 같이 매우 놀라면서 사고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격앙된 반응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사고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고, 주차장 입구로 진입하기 위해 좌회전 하면서부터 점점 자신이 친 것이 어린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해가면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고 놀라거나 믿지 못하는 듯한 격앙된 태도가 보입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사고가 나자마자 고씨가 차를 멈추고 차에서 내려 아이의 상태를 살핀 후 119에 신고하지 못한 데에는, 도주 의사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밖에도 고씨에게 도주의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볼 만한 정황에 대해 재판부는 설명을 이어갑니다.

    2023. 5. 3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선고 中
    재판부: 객관적인 증거들을 보면, 만약 피고인이 도주 의사를 갖고 있었다면 이 사건 사고현장 직선거리 16미터 거리에 위치해 발각될 가능성이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기보다 그대로 직진해 사고 현장에서 먼 곳으로 달아나는 게 더 합당합니다.

    개폐시설이 있는 주거지 내 주차장으로 이동해 차를 숨겨놓을 의사가 있었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도주 의사가 있었다면 주차장에서 이를 고민하거나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면서 추가 시간이 소요됐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합니다.

    피고인이 이 사건 직후 현장으로 돌아간 시점은 약 45초에서 47초인데, 피고인이 차를 주차하고 다시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8초가 걸렸습니다. 또 자신의 차량을 숨기려고 했다면 주차장 내 가장 깊숙한 곳에 주차했어야 할 텐데 그런 행동은 보이지 않고 주차장 문이 열림과 동시에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하고 밖으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피고인은 이 사건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어린이를 사상한 것을 명확히 깨달은 것으로 보이고, 사고 사실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당황한 나머지 즉시 차량을 정차 못한 채 주차장까지 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합니다.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사람을 차로 크게 다치게 하는 등의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나면 바로 신고를 하는 등 적극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일부 심리학자들의 의견은 조금 달랐습니다. "너무 놀란 상태에서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모르면 꼼짝 못할 수 있다. 바로 차에서 나와 상황을 살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인 것"이라고요. 심리학자들도 재판부 판단대로 고씨가 사고 사실을 인식한 상태에서 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일종의 '자기부정' 상태가 47초 동안 이어졌다고 보는 거죠.

    재판부는 좀더 세밀하게 고씨의 도주 의사 여부를 따져갑니다.  

    2023. 5. 3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선고 中
    재판부: 피고인은 주차 직후 스스로 사고현장으로 돌아왔고 현행범 체포 전까지 현장을 떠나거나 떠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목격자들에게 자신이 사고 차량의 운전자라는 것을 밝히고 피해 아동이 다녔던 학교 보안관에게 자신의 인적사항과 차량번호를 밝혔습니다. 경찰에게도 자신이 가해자임을 밝히고 음주측정에 순순히 응했습니다.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피고인은 스스로 사고를 신고하지 않았지만 신고를 요청했고, (아이를 옮기는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하기 싫어한 것은 아닌데 무서워서 머뭇거렸다"고 합니다. 소극적 보호 조치로 볼 여지는 있지만 이 점을 근거로 피해자 구호를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피고인이 도주하려던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의심만으로 피고인 도주 의사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유죄를 인정하려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증명되어야 하고, 그런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의 유죄가 의심가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부가 왜 고씨가 '뺑소니를 쳤다'고 결론내리지 못했는지는 납득이 갑니다. 심정적으로 선뜻 공감할 수는 없더라도요.

    용서하지 못한 자와 용서받지 못할 자

    초등학교 앞에 추모메세지가 붙어있다. 연합뉴스초등학교 앞에 추모메세지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4번의 공판이 이어지는 동안 법정에 계속 모습을 드러냈던 한 분, 바로 피해 아동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증인신문이나 피고인이 말할 때, 재판부가 선고할 때, 그 어떤 때에도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습니다. 고개를 들면 피고인석에 있는 고씨에게 시선이 닿았기 때문이었겠죠. 선고 직전 공판에서 피해 아동의 아버지와 피고인이 각각 남긴 마지막 한마디를 읽어보시죠.

    2023. 5. 2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 공판 中
    피해 아동의 아버지: 그날 따라 출근하는 제게 더 큰 목소리로, 더 깊게 고개 숙이며 '회사 잘 다녀오세요'라고 했던 ○○이가 차디찬 주검으로 침대 위에 누워있었고 저는 정신을 잃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아득한 심연에서 아이를 찾는 마음으로 막막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루에 수차례 ○○이 생각이 날 때면 분노가 성난 파도처럼 넘어와서 그 파도가 지나칠 때까지 목놓아 울 수밖에 없습니다. 제 가족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너무나 큰 절망 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이름을 외치면 돌아올 것 같습니다. 피고인은 제대로 차를 운행하지 못할 정도로 만취 상태에서 운전해 학교 후문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우리 아이를 치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아이를 방치하고 떠나는 모습, 아이를 구조하지 않고 방관하는 모습, 재판 중 뺑소니를 부인하며 변명하는 모습이 저희를 너무 고통스럽게 합니다. …(중략)

    피고인(고씨):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부끄러운 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죄송하다'는 말밖에 없다는 것 또한 너무 죄송합니다. 저는 정말 세상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끔찍한 일을 저지른 죄인입니다. 저는 판사님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후회와 반성으로 죗값을 치를 것입니다. …유가족분들에게 정말 아주 조금이나마 위로를 해드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해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제 목숨을 내놓아서라도 아이가 다시 부모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매일매일 생각합니다. 유가족께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에게도 너무나 미안합니다. 평생 사죄하며 살겠습니다.

    고씨가 당황해 사고 현장을 지나 주차장으로 갔던 47초는 피해 아동의 부모에겐 '방치'였고, 아이가 더 다칠까봐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등의 적극적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방관'이었습니다. 법정증거주의에 따라 유죄로 입증되지 못했던 순간이라 하더라도요.

    재판부 역시 이 점을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법대로 판단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는 재판부로서는 나름대로 고씨에게 최고 수준의 형량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 절차가 남아있지만 현재로서는 고씨는 7년만 지나면 법적 죗값을 다 치르게 됩니다.

    그때 그가 피해 아동 아버지의 이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형량이 얼마나 나오든 우리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요. 소설 '속죄'를 쓴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말처럼 "속죄는 불가능한 일로, 시도하는 것이 전부일뿐"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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