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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조선왕조의 본향에서 걷는 '기독순례길'

    • 2023-06-03 08:00

    [종교문화여행]
    소외된 땅에서 복음화율 1위 지역으로 거듭난 '한국의 갈릴리' 전북으로 떠나는 순례 여행
    전주 한옥마을 인근 예수병원-신흥학교-서문교회로 이어지는 '바이블벨트'
    호남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전킨을 비롯한 선교사와 가족 14명이 묻힌 '선교사묘역'
    최초의 순교자가 발생한 풍남문 등 전주 시내 곳곳에 자리한 복음과 신앙의 유산들

    ■ 방송 : 전북CBS <토요일에 만나요, 유연수입니다>
    ■ 진행 : 유연수 아나운서
    ■ 출연 : 임지훈 학예사
     
    ◇ 유연수> 대한민국 복음화율 1위 전라북도로 떠나는 성지순례. 근대도시와 선교를 테마로 삼아 조선 왕조의 본향 전주와 소설 '아리랑'의 무대인 김제, 또 시간 여행자의 성지 군산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종교문화 힐링여행, 전북 순례길. '토요일에 만나요 유연수입니다'에서는 오늘부터 6월 한 달 동안 전라북도의 순례길을 하나하나씩 걸어보는 특집으로 준비했는데요. 그 첫 번째 길은 조선의 왕조의 본향 전주에서 걷는 기독교 순례길입니다. 후백제부터 조선 왕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을 품은 전주 원도심을 기독교 순례길로 재조명해서 소개해드리도록 하죠. 우리를 순례의 길로 안내할 분입니다. 전주시 기독교 근대역사 기념관 임지훈 학예사님 나와 계십니다. 반갑습니다.
     
    ◆ 임지훈> 네, 안녕하세요.
     
    ◇ 유연수> 지금 전라북도 1호 순례자가 되셨는데 소감은 어떠신가요?
     
    ◆ 임지훈> 사실 전라북도 1호 순례자라고 하시면 뭔가 거창한 타이틀이 저한테 붙는 것 같아서 많이 부담스럽기는 합니다. 다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땀과 눈물로 적시고 또 그들의 기쁨과 그런 웃음으로 쌓았던 그 길을 되짚어보는 여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서 저 개인적으로는 무척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하나의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 유연수> 기대가 되고요. 거룩한 부담감이기 때문에 지금 긴장하신 것 같은데 잘 소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소개를 해 볼 텐데요. 사실 전주를 조선 왕조의 본향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면 이곳에 선교의 흔적이 또 깊게 배어 있다는 말이에요.
     전주풍패지관(객사). 전주시 제공.전주풍패지관(객사). 전주시 제공.◆ 임지훈> 네, 전주는 풍패지향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이 풍패라는 말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중국 한나라의 유방의 고향이 패현 풍읍이라는 곳인데 '패'와 '풍'자를 따서 만든 명칭입니다. 그래서 보통 나라를 세운 건국자의 본향을 일컫는 말로 주로 사용되거든요. 미국 남장로교 선교위원회에서 7인의 선교사를 조선에 파송하였고. 그들이 전라도 지역에 선교부를 세우기 위해서 전주를 방문했는데 은송리라는 곳에 초가집 한 채를 구입해서 그곳이 이후 최초의 예배당이 됩니다. 조선 왕조의 본향에서 선교를 시작한 셈이죠. 그래서일까 조지 톰슨 브라운이라는 사람이 쓴 책에 보면 이 지역이 조선 왕조를 세운 이성계의 선조가 태어난 성지라서 전주에 있는 관군과 마찰이 발생했다고 얘기를 합니다.
     
    ◇ 유연수> 서양 문물이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 임지훈> 네. 그러니까 그곳이 조선의 성지인데 외국 사람들이 들어와서 활개치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안 좋게 보는 시선들이 많았던 것이죠.
     
    ◇ 유연수> 그랬나요? 
     
    ◆ 임지훈> 네, 조지 톰슨 브라운이 쓴 기록뿐만 아니라 마티 잉골드가 쓴 일기라든지 애나벨 니스벳 선교사가 썼던 기록에도 이런 선교사와 전주 당국과의 마찰에 대한 얘기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결국에 그 당시 고종 황제는 전라북도 관찰사, 오늘로 따지면 도지사급 되는 이완용을 파송해요.
     
    ◇ 유연수> 우리가 아는 그 이완용인가요?
     
    ◆ 임지훈> 네, 맞습니다. 그 이완용이 당시에는 전라북도 관찰사직을 역임하고 있었거든요. 
     
    ◇ 유연수> 그랬군요.
     
    ◆ 임지훈> 그래서 이완용이 선교사들과 회담을 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당시 전주의 외곽으로 불리는 곳으로 선교부를 이전하게 됩니다.
     
    ◇ 유연수> 그렇군요. 이렇게 선교부가 이전하게 됐고 그 자리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병원 그 일대, 그렇게 말씀해 주셨고요. 아직도 우리 도시 곳곳에 선교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전북 순례길 첫 번째 도시 전주잖아요. 지금부터 함께 걸어보도록 하죠. 첫 출발지로 꼽은 장소가 지금 근무하고 계신 전주시 기독교 근대역사기념관이에요. 이곳을 첫 출발지로 삼은 배경은 뭔가요?
     
    ◆ 임지훈> 전주 선교부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여기에 교회도 생기고 병원, 학교 이런 여러 건물이 세워지면서 점점 확장하고 전주 선교부가 본격적으로 팽창하게 되는 계기가 돼요. 저희 전주시 기독교 근대역사기념관은 전주에 오신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7분을 기리기 위해서 세워진 건물이거든요. 저희가 전주 순례길을 걷기에 앞서서 사실 전주 선교에 대한 모든 것들을 접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 언제 어디서 와서 이곳 전주에서 무슨 일을 했었고 그로 인해서 전주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먼저 듣고 그다음에 그 순례길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들었던 내용들을 상기하는 그런 것들이 좋지 않을까 하고 사실 생각했습니다.
     
    ◇ 유연수> 우리 전라북도 기독교인이라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정리된 내용을 한자리에서 보는 것은 없었잖아요. 
     
    ◆ 임지훈> 맞습니다.
     
    ◇ 유연수> 지금 우리 기독교 근대역사기념관이 그런 역할을 하고 계시는군요. 
     
    ◆ 임지훈> 네. 저는 저희 기념관을 어떻게 생각하냐면 마중물이라고 생각해요. 
     
    ◇ 유연수> 마중물. 
     
    ◆ 임지훈> 네. 그러니까 전주 선교 역사, 전주 선교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어디서 출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면 먼저 저희 기념관에 와서 간략한 소개를 좀 듣고 복음 선교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면 서문교회에 있는 100주년 기념관에 가시면 되고. 
     
    ◇ 유연수> 인근에 있죠?
     
    ◆ 임지훈> 네, 다 인근에 있습니다. 또 교육 선교에 대해서 더 궁금하신 분들은 전주 신흥고등학교에 있는 100주년 기념관에 가시면 더 자세한 얘기를 들으실 수 있고요. 또 의료 선교는 구바울 기념 예수병원 의학박물관이 저희 기념관 3층에 자리를 해요. 그런 각각의 장소에 가시면 더 깊이 있는 얘기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저희 기념관이 그런 더 깊은 선교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는 마중물 역할로 각각 안내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유연수> 그렇군요. 기념관 뒤편에는 저도 가봤지만 선교사님들의 묘역이 있더라고요. 서울분들한테는 양화진 같은 장소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이렇게 쭉 아래를 내려보면 전주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고 맞은편 언덕에 또 영어로 크게 'god is love',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이렇게 간판이 크게 세워져 있잖아요. 이걸 보면 딱 전주가 '선교의 도시구나' 느끼실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선교사 언덕에서 내려오면 바로 길 건너부터 전주의 바이블 벨트가 이어지는 것이죠?
     
    ◆ 임지훈> 네. 그 선교사 묘역에서 기념관을 향해 내려오시고 바로 가깝게는 예수병원부터 신흥학교, 조금 멀리 나가서 서문교회까지는 반경 1km 안에 다 들어오거든요. 그 안에 선교사님께서 예전에 머무셨던 사택이라든지 현재는 엠마오사랑병원이 들어서 있는 옛날 예수병원 건물이라든지 이런 전주 선교에 관한 많은 장소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아직 계획 중에는 있지만 언젠가는 저희 전주의 선교 역사를 아우를 수 있는 벨트,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바이블 벨트가 구성된다면 이번에 시작하는 순례길과 함께 전주의 근대역사를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되지 않을까, 저 개인적으로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주 신흥학교. 전주시 제공.전주 신흥학교. 전주시 제공. ◇ 유연수> 기념관이 마중물이라고 하셨는데 그 지역을 스팟으로 주변 반경 1km 내에 정말 선교의 어떤 흔적들이 많이 있군요. 아까 우리가 이야기 나눴던 기념관 뒤편에 선교사 묘역이 있잖아요. 거기서 쭉 길을 타고 내려오면 신흥학교가 보이잖아요. 이 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해 주시죠.
     
    ◆ 임지훈> 사실 이 신흥학교는 저희가 보통 근현대사에서도 독립운동이라든지 민주화 운동에 큰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해요. 그런데 이 신흥학교의 원래 터가 조선시대 숙종 때 세워졌던 희연당이라는 서원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처음부터 교육적인 그런 장소 장소였던 곳이 이후에 선교사로 인해서 학교가 세워지고 그 학교에서 이 전주의 근현대 운동들을 일으켰던 곳이라는 것이 사실 오랜 시간 이렇게 연결된 그런 것들을 받게 되었거든요. 먼저 독립운동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를 드리면 1919년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3.1운동 있지 않습니까? 이 3.1운동이 서울에서 있었는데 이곳 전주에서도 사실은 만세운동이 있었어요. 날짜는 3월 13일 하고 14일 양일간에 걸쳐서 이루어졌고 이 이후에도 산발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게 됐는데 이 3월 13일과 14일에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세력이 종교 세력들이에요. 그중 기독교계에서는 전주 서문교회 그리고 신흥학교, 기전학교 이곳이 사실 주축이 되어서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1930년대 가면 아마 1929년 11월 광주에서 학생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학생운동의 그것을 받아서 1930년에 신흥학교에서도 전주 학생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 것이라든지 아니면 1937년도에 일제가 점점 그런 기세를 부리면서 조선을 본격적으로 식민화하려고 하는 정책 중에 하나로 신사 참배가 되는데 당시 전주의 그런 신사가 어디 있었냐면 오늘날 다가공원 꼭대기, 다가공원 정상에 전주 신사가 있었어요.
     
    ◇ 유연수> 지금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나요?
     
    ◆ 임지훈> 네, 지금도 최근까지 사실 그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거기에 세워졌던 돌기둥이 전주 신사의 잔재라고 판명이 되어서 전주 역사박물관으로 옮겨졌던 일도 있죠.
     
    ◇ 유연수> 그 돌기둥이 대한민국의 어떤 정기를 막는다, 이런 얘기를 들었던 것도 같아요. 그렇군요. 뭐 기독교적이지는 않지만. 
     
    ◆ 임지훈> 그래서 신사가 있었는데 그 신사에 당시 신흥학교하고 기전학교 학생들이 강제로 끌려가게 된 것이죠. 1937년 9월 6일입니다. 그래서 그때 끌려가서 거기서 강제로 참배를 강요받았는데 학생들이 끝까지 참배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것을 일본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폐교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얼마 안 있어서 신흥학교와 기전학교가 폐교되죠. 보면 신흥학교 학생들이 그때 폐교 당시 운동장에 알파벳 'S'자 신흥학교의 이니셜인 'S'자를 그리는 퍼포먼스가 담긴 사진이라든지 또 폐교 기념으로 신흥학교하고 기전학교 학생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학교 이름을 새긴 목재 화병대가 있어요. 이렇게 대를 세워서 그 위에 화병을 올려서 기념하게 하는. 그 위에다가 호롱불을 켜놓고 마지막으로 예배를 드려요.
     
    ◇ 유연수> 예배를. 수업이 아닌 예배를.
     
    ◆ 임지훈> 네, 맞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그것을 서문교회에 기증했다든지 이런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사실 남아 있는 그런 폐교 사건이기도 해요.
     
    ◇ 유연수> 그러면 그 호롱불 그것은 지금 서문교회 가면 볼 수 있는 거예요?
     
    ◆ 임지훈> 사실 호롱불을 어디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는 청동으로 된 화병을 같이 기증했는데 1941년에 일제가 본격적으로 공출하게 되면서 그 이전에 전킨 선교사, 그러니까 전킨 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해 해왔던 그런 종하고 이 화병들 같은 이런 쇠붙이들을 다 공출해 가요.
     
    ◇ 유연수> 전쟁 물자로 약탈해 갔구나.
     
    ◆ 임지훈> 맞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목재이기 때문에 남아 있고 그 외의 것들은 다 사라져 있죠. 
    전주 서문교회. 서문교회 제공.전주 서문교회. 서문교회 제공. ◇ 유연수> 그렇군요. 그것도 아픈 역사인데 방금 말씀하신 서문교회 또 이곳은 호남의 장자교회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잖아요. 건축학적으로도 완성도가 굉장히 높은 교회라고 들었어요.
     
    ◆ 임지훈> 네. 서문교회가 제가 알기로는 1983년도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정림건축의 김정철 건축가의 설계로 세워진 건축물이라고 해요. 이것이 1984년에 한국 건축가 협회상 본상을 수상할 정도로 굉장히 디자인이 아름다운 건물인데 건물 외형을 보면 사실 저희가 여기가 딱 입구다, 뒤쪽이라고 하는 뭔가 구분이 되는 것들이 있는데 이 서문교회를 보면 대표적으로 정면이라 하는 곳이 사실 없어요. 
     
    ◇ 유연수> 그러더라고요. 
     
    ◆ 임지훈> 그래서 매우 특이한 인상을 주는데 이것이 사방이 평등한 교회 공동체를 상징한다고 하는 그런 뜻이 담겨 있다고 해서 한번 놀랐습니다.
     
    ◇ 유연수> 설명을 듣고 그 교회의 모습을 떠올려 보니까 그런 것도 같네요. 
     
    ◆ 임지훈> 네, 맞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을 보면 딱 한 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여러 건물이 사실 서로 연결이 되어서 하나의 그런 교회를 이뤄요. 이것들이 마치 서로 다른 우리가 모여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그런 것들도 또 보여주는 것 같아서 되게 많이 놀랐습니다. 또 실제로 내부로 들어가면 예배당 앞에 종탑이 있거든요. 그 종탑에서 들어온 빛하고 옆에 측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굉장히 이 안에 공간 연출을 되게 멋있게 해요. 그래서 되게 안정되고 차분함을 주어서 마치 초대 기독교 동굴교회 있지 않습니까? 그 동굴 예배 공간을 연상하게 하고요. 
     
    ◇ 유연수> 그래요? 지금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예요? 
     
    ◆ 임지훈> 네. 서문교회와 관련해서 제가 최근에 검색을 해봤는데 1983년 세워졌을 당시에 그 서문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집에서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메타버스 전시관 구축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들어가서 관람했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 물론 직접 오셔서 보시는 것이 사실 가장 더 인상이 깊고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다고 하면 온라인으로 관람하면서 서문교회의 그런 건축학적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남부시장에 자리한 '전주 3.1운동' 기념비. 전주시 제공.남부시장에 자리한 '전주 3.1운동' 기념비. 전주시 제공.◇ 유연수> 미리 한번 이 방송 듣고 서문교회 메타버스 검색하셔서 좀 들어오셔서 예습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고요. 서문교회의 모습은 그렇고 다음 장소로 또 이동해 보는데 매곡교와 싸전다리 뚝방길이에요. 서문교회를 나와서 이곳까지 걷는 코스가 아주 일품이에요. 지금은 유명 관광지가 된 남부시장도 여기에 자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또 어떤 복음의 스토리가 담겨 있어요?
     
    ◆ 임지훈> 남부시장과 관련해서 제가 두 가지의 에피소드를 한번 준비해 봤습니다. 먼저 전주의 만세운동에 관련된 얘기를 해 보려고 하는데요. 전주의 만세운동은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3월 13일에서 14일 양일간 진행이 됐는데 이때 사전에 독립선언서와 함께 3.1 만세운동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전달받아요. 그래서 이들이 4,000장 정도 되는 독립선언서를 등사한다든지 그다음에 신흥학교 지하실에서 2,000장 정도 되는 태극기를 만들어서 거사를 준비합니다. 그래서 3월 13일이 되니까 남문밖 장터, 지금은 남문시장이지만 당시에 풍남문 바깥에 있는 장터라고 해서 남문밖 장터라고 얘기를 들었는데 아무래도 장날이다 보니까 사람이 많이 몰려들었죠. 그래서 현재 전주교대 부설초등학교가 있었던 장소가 당시 공립 제2보통학교가 있었는데 그 교정에서 다들 대기를 하고 있었어요. 대기를 하고 있다가 등사한 태극기가 운반되자 채소 가마니 여자들은 채소 바구니 같은 것들을 들고 거기에 태극기를 담아서 전주교, 일명 싸전다리라고 하는 전주교를 넘어서 사람들에게 태극기와 인쇄물을 배부했어요. 오후 1시가 돼서 다들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가두행진을 했고 그때 수많은 사람이 붙잡혔죠. 다음 날 오후 3시경에도 완산교, 완산교가 좀 더 왼쪽에 있지만 완산교 근처에서 가두행진을 했고 결국 주동자들이 체포되면서 만세운동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만세운동이 싸전다리라든지 완산교라든지 이런 남부시장 곳곳에, 여러 장소에 배어 있습니다.
     
    ◇ 유연수>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지나다녔는데 또 이런 스토리를 듣게 되니까 마음이 숙연해지네요. 싸전다리의 의미가 궁금한데 순수 우리 한글이잖아요.
     
    ◆ 임지훈> 싸전다리라고 하면 '뭘까?'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좀 더 쉽게 생각하면 싸전 그러니까 쌀을 판매하는 점포, 쌀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세요. 그래서 당시 이 다리 양쪽에 쌀집들이 이렇게 마련되어 있어서 팔았다고 해서 싸전다리라고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 유연수> 쌀집들이 모여 있는 다리다. 
     
    ◆ 임지훈> 참고로 매곡교, 전주 옆에 매곡교 있고 그 옆에 완산교 이렇게 들어가게 되는데 매곡교 근처에는 설대전다리라고 하는 별명이 붙어 있어요. 
     
    ◇ 유연수> 뭐예요? 
     
    ◆ 임지훈> 이 설대전다리는 담뱃대. 담뱃대를 팔았던 담뱃대 가게가 있고 완산교는 소금전다리 이것은 아시겠죠? 소금을 파는 소금 가게가 있어서 그런 별명들이 붙었다고 합니다.
    ◇ 유연수> 참 쉽고 재미있는 이름이네요. 옛날 풍습을 알 수 있는 그런 이름이고 지금도 쓰고 있다. 우리 두 번째로는 기이한 행적으로 유명했던 이거두리, 이거두리길이 있더라고요. 이거두리가 누군지 이야기 전해 주시죠.
     
    ◆ 임지훈> 이거두리는 사실 원래 양반가의 그 사람이에요. 본명은 이보한이라는 사람인데 전주 이씨인 감찰사 이경호의 장남으로 태어났어요.
     
    ◇ 유연수> 전주 이씨면 왕족이네요? 
     
    ◆ 임지훈> 그렇죠. 당시 전주에서 굉장히 떵떵거리는 하나의 세력가이기도 했던 이 이경호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비록 장남이긴 하지만 사실 본처의 자식이 아닌 첩의 자식이다 보니까 장남이면서도 사실 집에서 굉장히 서러움을 많이 받고 그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기도 해요. 이보한이 기독교를 접한 계기가 여러 가지 설이 있긴 한데 공통적으로는 아버지인 이경호가 선교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약속했는데 당시 양반들의 눈초리라든지 기세상 예배당에 나갈 수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고민하던 아버지를 대신해서 본인이 서문밖교회를 다니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비로소 사람대접을 처음 받게 되는 것이죠.
     
    ◇ 유연수> 첩의 자식이었다가. 
     
    ◆ 임지훈> 네. 양반이고 상놈이고 그런 구분이 없이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는 그런 사람대접을 받게 되면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사실 180도 삶이 바뀌게 되는데 날마다 장터라든지 그런 거리로 나가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찬양 있잖아요. '거두리로다~ 거두로리다~' 이 찬양을 그렇게 즐겨 불렀다고 해요.
     
    ◇ 유연수> 그래서 이거두리로군요. 
     
    ◆ 임지훈> 네. 저 멀리서 그 찬양 소리가 들리면 '저기 이거두리 온다' 이렇게 해서 별명이 이거두리가 되었다고 해요.
     
    ◇ 유연수> 이분에 대한 이야기는 또 기념관에 가면 자세히 볼 수 있는데 소천할 때 풍경이 굉장히 이색적이고 숙연했다고 들었어요. 그 이야기 좀 해 주시죠.
     
    ◆ 임지훈> 그러니까 사실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 특히 걸인의 성자라는 별명도 있는데 거지들, 거렁뱅이들에 대한 이거두리의 관심이 특별했다고 해요. 그래서 이거두리가 소천했을 때는 당시 전주에 있었던 모든 걸인이 모여서 이거두리 상여를 따라가면서 함께 슬퍼했고 심지어 자신들이 먹을 밥도 없는 상황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이거두리를 위해서 작은 비를 하나 세워주는 그런 일이 있기도 합니다.
     
    ◇ 유연수> 지금 그러면 이거두리길은 어디를 지칭하는 거예요?
     
    ◆ 임지훈> 저희가 따로 '이거두리길이다'라고 지칭하는 곳은 없지만 당시 이거두리가 남문시장, 남문장터 천변을 따라서 돌아다니면서 걸인들을 모으고 함께 거기서 활동했기 때문에 남문시장 앞에 천변을 이거두리길이라고 불러도 사실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전주남문교회 가는 길에 바라본 전주천. 전주시 제공.전주남문교회 가는 길에 바라본 전주천. 전주시 제공. ◇ 유연수> 이런 길 이야기를 들어봤고 또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천변을 쭉 따라가다 보면 남문교회도 만날 수 있잖아요.
     
    ◆ 임지훈> 네, 맞습니다. 
     
    ◇ 유연수> 이곳이 또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깊은 교회예요. 소개해 주시죠.
     
    ◆ 임지훈> 이 남문교회는 1905년 9월에 서문교회가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완산 은송리에서 화산으로 오게 될 때 전주성 서문 밖에 세워지게 되는데 그때 서문밖교회에서 남문밖교회가 분립해서 나오게 됩니다. 당시 서문밖교회에 출석하던 교인들 중 최국현 장로를 비롯한 20명 정도가 중심이 되고 선문밖교회 그 당의 결의에 따라서 마로덕 선교사님을 모시고 남문밖교회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 남문밖교회는 전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지게 된 교회인데요. 풍남문에서 아까 말씀드린 싸전다리 방향으로 오는 길 좌측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남문밖에 세워진 교회라서 남문밖교회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 유연수> 그렇군요. 전주 원도심 순례길의 마지막 코스가 풍남문과 전동성당이에요. 정말 많은 분이 방문하는 유명 관광지인데 서울에 빗대면 숭례문과 명동성당, 이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독교 역사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죠. 
     
    ◆ 임지훈> 사실 기독교가 지금 제가 소개드렸던 곳은 미국 남장로교를 통해서 들어온 개신교를 말하는 것인데 그 개신교가 전주에 들어오기 100여 년 전에 이미 전주에는 천주교가 먼저 들어오게 돼요. 그때 당시 윤지충, 권상현이라는 천주교 신자들이 현재 전동성당 자리에서 최초의 순교자로 처형됐습니다. 그 당시 한양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을 주로 처형했던 곳이 서소문 밖이라고 서소문이라는 것이 서문의 작은 문 그러니까 서문 밖인데 전주에서는 풍남문 밖에서, 그러니까 남문 밖에서 처형했습니다. 이후에 유항검이라든지 수많은 신자가 전동성당 그다음에 숲정이, 전주병원 앞에 있는 초록바위라든지 이런 전주 천변 같은 풍남문 밖에서 순교를 당했는데 그러고 생각해보면 남문밖 장터가 사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들을 처형함으로써 하나의 본보기를 보이려 하지 않았었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곳 남문밖에는 천주교 관련된 성지들이 많이 남아 있죠. 
     
    ◇ 유연수> 그렇군요.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보이네요. 숲정이, 초록바위 이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그런 장터, 남문밖에다가 처형한 시체를 놨다는 것이 참 잔인한데 또 그 당시 시절에는 그랬다는 것. 
     
    ◆ 임지훈> 맞습니다.
    풍남문. 전주시 제공.풍남문. 전주시 제공. ◇ 유연수> 현재 보물로 지정된 풍남문의 명칭도 알면 굉장히 재미있다면서요?
     
    ◆ 임지훈> 네, 맞습니다. 제가 오늘 방송 초반에 전주를 풍패지향이라고 소개드렸잖아요. 앞에 '풍' 그다음에 한자에다가 이것이 아까 전주성 남쪽에 있는 문이라고 해서 풍남문 이렇게 이름이 지어졌는데 사실 이 전주성은 임진왜란 다음에 일어났던 정유재란에 무너지게 된 것을 영조 때 다시 세우면서 풍남문을 원래 명견루라고 불렀다고 해요. 
     
    ◇ 유연수> 명견루?
     
    ◆ 임지훈> 네. 그런데 같은 영조 때이기는 한데 정유대화재, 정유년에 일어난 대화재로 이 남문과 서문이 소실됩니다. 그래서 이때 새로 지으면서 풍남문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그래서 제가 아까 말씀드린 풍패에서 '풍'을 남문에 썼으니까 나머지 '패'를 아까 말씀드린 서문 그래서 패서문. 당시에 서문은 패서문이라고 하고 남문은 풍남문이라고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 유연수> 두 개가 하나의 쌍을 이루는 것이네요? 
     
    ◆ 임지훈> 네. 생각해 보면 저희가 앞에 쭉 오면서 서문교회와 남문교회를 소개했잖아요. 서문교회가 패서문, 남문교회가 풍남문 이렇게 풍패를 함께 외우면 좀 더 쉽게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 유연수> 그렇군요. 근대와 선교를 테마로 돌아본 전주 원도심 순례길 어떻습니까? 우리 학예사님의 이야기를 쭉 집중해서 따라가다 보니까 벌써 여행을 한 바퀴 마친 기분이 드는데요. 전주라는 도시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 임지훈> 사실 제가 오늘 방송을 준비하면서 기념관에서부터 전동성당까지 이르는 이 순례길을 한번 천천히 걸어봤어요. 대략 2km 정도 되는 구간인데 한 30~40분 정도 걸렸거든요.
     
    ◇ 유연수> 그렇게 길지는 않네요? 
     
    ◆ 임지훈> 네. 실제로 소요되는 시간은 사실 그렇게 길지는 않은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한 번 되새겨보고 '아, 여기가 그곳이구나. 저기가 그곳이구나'라고 하면서 생각하면서 또 걷게 되면 마음으로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 유연수> 저 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좋습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 정도다, 말씀드린 것이고요. 
     
    ◆ 임지훈> 맞습니다. 제가 이 길을 걸으면서 그 생각을 했어요. 요즘 산티아고 순례길이 굉장히 유행이잖아요. 이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한 것이 비단 종교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니라고 해요. 바쁜 일상에서 사람들이 벗어나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서 진정한 자아성찰을 한다든지 또 이런 부분의 사람한테는 '빨리빨리 어디 가야 돼, 도착해야 돼'가 아니라 느리게 느리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사실 그 산티아고 순례길이 비기독교인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하더라고요. 
     
    ◇ 유연수> 맞아요. 
     
    ◆ 임지훈> 저는 전주 순례길이 이 전주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나 또는 이전에 방문했던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100여 년 전 조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역만리 먼 타국에서 온 선교사들의 그런 땀과 눈물이 적셔졌고 또 역사적 순간에 함께했던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그런 피와 노력이 또 스며들었고 이제는 나의 기쁨과 또 묵상이 켜켜이 쌓여서 다음 세대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보는 그런 여정을 보는 것이 어떤가 싶습니다. 물론 맛과 멋의 고향 전주에 오셨으니까 맛집 투어도 빼놓을 수 없겠죠. 
     
    ◇ 유연수> 그렇죠. 산티아고 순례길 말씀하셨는데 우리 학예사님의 노력으로 먼 훗날 전주 선교 벨트가 전주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니고 산티아고 순례길이 전주의 선교 벨트가 되는 그런 날도 오리라 믿습니다. 종교문화 힐링여행, 전북 순례길. 그 첫 번째 길로 전주 원도심 순례길 함께 걸어봤고요. 다음 이 시간엔 BTS 방탄소년단으로 굉장히 유명한 핫플레이스죠. 완주 고종시 마실길을 순례자의 발로 함께 걸어보겠습니다. 전주시 기독교 근대역사기념관 임지훈 학예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임지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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