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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 지하로 간 폐기물 처리장…노동자 안전은 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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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위험천만' 지하로 간 폐기물 처리장…노동자 안전은 논외?

    편집자 주

    2022년 여름, 서울에서 시간당 100mm가 넘는 물폭탄이 떨어졌을 때, 반지하에서 살다가 침수로 숨진 이들이 있었다. 사건 이후 해당 지자체는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주거 환경을 개선한다는 취지였다.

    이와 반대로 노동자의 인권은 지하로 가고 있다. 전국 지자체들이 필수 시설이자 주민 기피시설인 폐기물 처리장을 눈에 보이지 않는 '지상 아래 두기'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지하 폐기물 처리시설인 경기도 하남 유니온파크가 대표적이며, 전남 순천시도 이를 모델 삼아 폐기물 처리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전남CBS는 지자체들이 열광하는 '지하화' 폐기물 처리시설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화려한 지상 경관에 가려져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노동자들의 권리마저 지하화해선 안되는 이유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지하로 간 노동자…폐기물처리시설 '지하화'가 답인가②]
    2030년 직매립 금지법 적용…전국 지자체, 폐기물 처리장 마련 고심
    시설 지하화한 하남 유니온파크 벤치마킹 줄이어
    노동 환경은 고려 안돼…논의 과정 '맹점'
    종사자들 "근로 여건 최악…타 지자체, 답습 말아야"
    전문가들 "지하화 비용 높고 비효율적…시대 역행"

    하남 유니온파크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물놀이장과 운동 시설 등이 보인다. 박사라 기자 하남 유니온파크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물놀이장과 운동 시설 등이 보인다. 박사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 "비타민D 결핍에 청력 재검만 5년째…화재 나면 다 죽어요"
    ② '위험천만' 지하로 간 폐기물 처리장…노동자 안전은 논외?
    (계속)

    전남 순천시민 500여 명은 지난해 12월부터 5월까지 매주 2차례, 경기도 하남 유니온파크로 답사를 다녀왔다. 폐기물 처리장 건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순천시가 하남시 사례를 벤치마킹 했기 때문이다. 순천시는 폐기물 처리장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하고 주민 여론 형성을 위해 이를 주관해왔다.
     
    105m 우뚝 솟은 타워전망대를 랜드마크 삼아 지상에는 각종 문화 편의시설을, 지하에는 폐기물 처리시설을 갖춘 하남 유니온파크는, 순천시 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2030년 비수도권 쓰레기 직매립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 지자체들은 그 전까지 폐기물 처리장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하루 190t의 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는 왕조동 쓰레기 매립장 사용 연한도 2년이 채 남지 않아 순천시의 사정은 더 급하다.
     
    민선 7기에도 월등 송치로 최종 입지까지 선정했지만 주민 반발에 의해 무산된 전례가 있다.
     
    대다수 기피시설로 여기는 폐기물 처리장을 인근 주민은 물론 관광객까지 찾아오는 '명소'로 만든 하남시의 사례는 그래서 다른 지자체의 부러움을 산다.
     
    하남 유니온파크 견학 중인 순천시민들. 박사라 기자 하남 유니온파크 견학 중인 순천시민들. 박사라 기자
    당초 하남시에도 하수를 내보내는 펌프장과 쓰레기 소각장, 재활용 및 음식물압축시설이 있었다. 인근에 미사지구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시설 노후화로 인한 악취 민원이 빗발쳤고, 하남시는 하수종말처리시설을 지하화한 용인 수지레스피아를 모델로 지하 폐기물처리시설을 건립했다.

    미사지구 개발 주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개발비를 모두 부담했고, 2014년 총 사업비 2730억 원을 투입, 국내 최초 하수 및 폐기물 처리시설을 지하화 했다. 유니온파크를 짓는 과정에서도 주민 민원이 많았지만, 하남시는 그때마다 공청회를 열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폐기물 처리장에서 일하게 될 또 다른 시민,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에 대한 논의는 빠졌었다는 점이다. 주민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처음부터 지하화를 전제로 추진했었기에, 지하에서 일하게 될 노동자들의 인권이 이야기될 틈은 없었다.
     
    특히 수도권과 지방도시는 인구 밀도 대비 유휴 공간 등의 사정이 다르기에, 이후에 추진될 시설들만은 '지하화'라는 전제를 재고해야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남 유니온파크 시설 현황. 하남시 제공 하남 유니온파크 시설 현황. 하남시 제공 
    이재식 하남유니온파크 노조위원장은 "랜드마크다, 성공사례다 하는데 지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최악"이라며 "노동자의 근무 환경을 떠나서도 공간의 확장성, 노후화 됐을 때 교체 등을 고려하면 지하는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소각 파트에서 10년째 일한 A(37)씨 역시 "지하는 지상보다 온도, 습도 등 환경에 훨씬 취약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여름은 벽에 균열이 일어나고 비가 많이 올 때는 물이 새서 오염수가 지하에 고이기 십상"이라며 "겨울에는 더 춥기 때문에 벽에 10m 정도의 고드름이 생기고 바닥에 얼음이 깔려 있어서 장비 운전을 하는 노동자들이 미끄러지기도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지하시설이 가지는 위험성에 대한 대책 마련도 안된 채 대형사고가 예견된 시설을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며 "기본적으로 지상에 만들어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남 유니온파크 재활용품 선별장 노동자가 낡은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일을 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하남 유니온파크 재활용품 선별장 노동자가 낡은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일을 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더욱이 전문가들은 폐기물처리시설 지하화가 지상보다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지하 폐기물 소각로는 건설 비용이 더 높게 책정될 뿐더러 터파기 등 복잡한 지하구조물로 인해 유지보수 및 모니터링 비용도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하 폐기물 소각로 건설로 인해 지하수, 토양 등 오염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기술적, 물류적, 환경적인 잠재적 단점을 종합할 때, 지하화는 비실용적이라는 분석이다.
     
    하남 유니온파크는 지하 특성상 한번 물이 고이면 마르기가 쉽지 않다. 박사라 기자 하남 유니온파크는 지하 특성상 한번 물이 고이면 마르기가 쉽지 않다. 박사라 기자 
    국내 최초로 산업폐기물 소각로 근로자에 대한 혈중 다이옥신 측정 연구를 한 박철용 영남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환경기초시설 노동자의 건강위험에 대해 집중하면서 지하화 시설에 문제제기했다.

    박 교수는 "아무리 시설에 대한 공학적인 대책을 내세워도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지하화 시설은 위험하고 비효율적이다"며 "주민들의 반발 때문에 안전에 대한 대책없이 지하화를 추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후 추진될 다른 지자체라도 지하화 시설을 만들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하남 유니온파크 노동자가 근무하는 모습. 박사라 기자 하남 유니온파크 노동자가 근무하는 모습. 박사라 기자 
    유성규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는 "일상적인 거주시설도 시민의 거주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지상화'도 하는 시기에 유해물질 등 건강을 위협하는 부산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폐기물처리시설을 '지하화'를 하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게 고려돼야 하는 부분은 생명권과 건강권이다"며 "지하화 시설은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인 이러한 권리들을 침해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지양하고, 지자체와 정부에서 이들을 보호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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