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단독]불법적치까지…'수입차 야적장' 된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경인

    [단독]불법적치까지…'수입차 야적장' 된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물류·제조산업 집적화 목표로 조성
    하지만 입주면적 60% 차량 적치용
    계약 위반한 불법적치 행위 적발도
    땅 사용료 주변 대비 3분의 1 혜택
    수출활력, 고용창출 효과 미비 지적
    특정 업종 치중…실효성 저하 우려
    차량 1대=컨테이너, 물량 수치만↑
    경기도·해수청 "시장원리 따라 최적"
    전문가 "취지 무색, 쏠림 해소해야"

    경기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내 야외 부지에 수입자동차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경기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내 야외 부지에 수입자동차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
    지난 14일 오전 11시쯤 평택·당진항(평택항) 부두에서 3㎞가량 떨어진 한 항만배후단지. 수입자동차를 잔뜩 실은 카캐리어 서너 대가 오갈 뿐, 행인 한 명 없이 한적한 분위기였다.
     
    차량 검사와 세척 작업이 진행 중인 몇몇 단층 건물을 제외하고 야외 부지는 수입차들로 빼곡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이곳은 2009년 지정된 국가 자유무역지역으로, 대부분 땅이 '수입차 야적장'으로 쓰이고 있다.
     
    자유무역지역을 벗어난 인근 항만부지에도 흰색 보호필름이 부착된 브랜드별 수입 승용차와 대형 덤프트럭들이 군데군데 구획을 나눠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항만업계 관계자는 "외화 벌이의 관문인 항만 주변이 수입차 야외 전시장처럼 돌아가고 있다"며 "주차타워라도 늘려야 할 수준인데 그런 투자는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수입차' 점령 지대?…불법 적치 현장 적발도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전체 입주 면적 중 대부분이 수입차 야적장으로 쓰이고 있다. 박창주 기자평택항 자유무역지역 전체 입주 면적 중 대부분이 수입차 야적장으로 쓰이고 있다. 박창주 기자
    항만물류 활성화로 외화 유치와 지역경제 시너지를 내기 위해 조성한 '평택항 자유무역지역'이 상당수 수입차 업체들의 야적장으로 채워지면서 당초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입차 업체 외에 다른 일부 입주기업까지 불법으로 차량 적치를 하다 적발되는 사례가 되풀이되면서 항만 당국의 관리·감독이 느슨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16일 경기평택항만공사와 평택지방해양수산청 등에 따르면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입주기업 15곳 중 9곳은 수입차 PDI(출고 전 보관·검수 작업) 관련 업종으로 차량 야적장을 운영 중이다.
     
    CBS노컷뉴스 요청으로 경기평택항만공사가 전수 조사한 결과,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입주 면적(89만여m²) 중 축구장 72개와 맞먹는 60%가량이 수입차 적치 공간인 것으로 집계됐다.

    더욱이 전수조사와 함께 진행된 현장점검에서는 나머지 업체 6곳 중 일부 부지도 수입차(450여 대) 야적장으로 사용돼 온 사실이 확인돼 1차 계도조치가 진행 중이다. 자유무역지역법에 따라 맺은 계약 조건을 어기고 부지를 무단으로 수입차 보관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시정명령 기간(1년) 안에 차량 이동을 하지 않으면 입주계약 해지 검토 대상이 된다.
     
    이 같은 불법 야적장은 전수조사 면적에 포함되지 않았다.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내 수입차 야적장 규모가 실제로는 더 클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위치도. 해양수산부 제공평택항 자유무역지역 위치도. 해양수산부 제공
    위법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해양수산부와 경기도의 현장 점검 과정에서 PDI 업체가 아닌 입주기업 2곳이 수입차 무단 적치를 하다 적발된 바 있다.
     
    항만법의 '항만배후단지관리지침'도 '입주계약 기업은 그 재산(시설물 포함)을 다른 이에게 사용·수익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어, 자유무역지역을 포함한 항만배후단지 일대의 수입차 야적 행위에 대해 위법성 여부를 점검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실제 기자가 돌아본 평택항 항만부지에는 곳곳에서 수입차 야적장이 눈에 띄었다.
     
    자유무역지역의 수입차 야적장은 땅 임대료가 인접 항만부지의 3분의 1 수준(월 500원/㎡)이다. 평택항 부두를 통해 수출하는 국내 자동차기업들의 부지 이용료보다 훨씬 저렴하다.
     
    또 자유무역지역에서는 관세가 유보되고 부가세 영세율이 적용되는가 하면, 법인세 감면과 최장 50년까지 장기 임대도 가능하다.
     
    애초 수입차 업체들은 이런 이점과 수도권 시장과의 접근성 등을 염두에 두고 평택항 자유무역지역에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자유무역지역에 대한 지원책이 수입차 업종에 대한 사실상 특혜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있다.
     

    '수출' 국부창출 취지 무색, "주차장 장사 독점뿐"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외 인근 항만부지에도 수입차량들이 곳곳에 야적돼 있다. 박창주 기자평택항 자유무역지역 외 인근 항만부지에도 수입차량들이 곳곳에 야적돼 있다. 박창주 기자
    문제는 '자유무역지역법'의 지향점이 '수출' 중심의 무역 활성화를 통한 국부 창출에 있는 반면, 평택항 자유무역지역은 '수입차' 업종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이 법을 근거로 2009년 입주기업 공고문에는 첫째 조건으로 '수출 주목적 업종'이 명시됐다. 다만 수입차 PDI 업체들은 외국인 투자와 국제물류 활성화 명목 등으로 입주권을 얻었다. 입주 조건을 갖추긴 했지만, 사업 근본 취지에 최적화된 업종은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 국토해양부는 "국내외 대형 물류기업들과의 투자양해각서 체결은 물론, 사전설명회에서도 입주희망 기업들이 높은 관심을 보여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수입차라는 특정 업종으로 치중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자유무역지역을 운영하는 취지는 통관절차와 부지 이용료 등의 부담을 줄여 양질의 원자재를 싸게 들여온 뒤, 지역에서 조립·가공 후 해외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있다는 게 항만업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지정 때 배포된 보도자료에는 '물류·제조산업의 집적화를 통한 항만 고부가가치 창출'이 목표로 적혀 있다. 물동량을 64만TEU(20피트 컨테이너)로 늘리고 1조 3천억 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비롯해 △1만여 명의 고용 △수출경쟁력 증대 △원자재의 저렴한 확보로 국내 제조업 진흥 등 세부 목표도 제시됐다.
     
    이를 통해 평택시의 지역경제도 활성화하는 등 상승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를 모아 왔다.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일대에 수입차를 잔뜩 실은 카캐리어 화물트럭들이 오가고 있다. 박창주 기자평택항 자유무역지역 일대에 수입차를 잔뜩 실은 카캐리어 화물트럭들이 오가고 있다. 박창주 기자
    하지만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내 15개 업체 고용인원은 최근 5년간 평균 870명으로 미비한 수준이다. 물동량의 경우도 5년간 평균 34만여TEU로 기존 목표치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마저도 평택항 자유무역지역은 차량 1대를 컨테이너 1TEU로 취급해 물량적으로 무역효과가 커 보이지만, 정작 큰 이익을 내는 건 국내 시장에 진출한 수입차 업체와 야적장 운영사 뿐이라는 게 업계 일각의 판단이다.
     
    또한 차량 대수 기준의 물동량으로 입주기업 심사에서 수입차 업체는 타 업종보다 평가를 받는 데 더 유리했을 것으로 해석된다.
     
    또 다른 한 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플랜트 산업 등 덩치 큰 수출용 구조물을 지어 바지선으로 서남아시아나 중동을 공략하는 게 고부가가치가 더 큰 사업일 것"이라며 "재벌이 나라 땅 싸게 빌려서 '주차장 장사'하려고 자유무역지역을 독점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라고 반문했다.
     

    당국 "입주조건 충족, 시장원리 결과"…구역 확대 전망도

     
    이에 대해 평택항 자유무역지역 운영·관리를 맡은 경기도와 경기평택항만공사는 수출이 사업 취지에 더 적합하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수입차 PDI 업체 역시 외국인투자로서 입주조건에 부합하는 데다 공모 당시 해당 업체들이 들어와 오히려 조기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수출이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건 맞지만, 항만물류 특성상 수출·수입이 다 포함될 수밖에 없다"며 "초기엔 임대가 잘 안 돼 빈 땅이 많았는데 수입차가 들어오면서 배후단지가 활성화된 측면도 있다"고 했다.
     
    해양수산부. 연합뉴스해양수산부. 연합뉴스
    평택지방해양수산청도 수도권 시장과의 접근성과 차량 수출입 항만 기반시설 등을 갖춘 곳으로서 시장 원리에 따라 수입차 업종이 몰린 것으로, 단순 보관만이 아닌 차량 점검과 외장·옵션 보완 작업 등 부가가치 효과도 있다고 밝혔다.
     
    평택지방해양수산청 관계자는 "부두 배후에 차량을 적치하며 검수작업 등을 기다리기에 유리하다"며 "모집 단계부터 참여 업체가 적었고, 고용이 활발한 업종을 유치하려 노력하지만 업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수입차 PDI 업계는 지난해 평택지방해양수산청을 상대로 자유무역지역의 확대 필요성을 건의하면서, 향후 수입차 야적 실태가 더 심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단 관련 보고를 받은 상급 기관인 해양수산부를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별 협의·검토 절차가 많고 까다로워 구역 확대가 현실화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공공성 대전제…"업종 쏠림 해소, 불법 임대 엄단"

     
    시민단체와 전문가는 국가 항만 배후단지의 자유무역지역인 만큼 특정 업종에 치우치지 않는 '공공성'을 우선시하고,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유무역지역 효과를 높이도록 수출 중심의 입주업종을 다각화해 기반시설 투자와 고용 창출, 수출 증대로 지역경제까지 활성화하는 선순환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뒤따른다.
     
    평택항 배후단지 일대에 수입차들이 야적돼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평택항 배후단지 일대에 수입차들이 야적돼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
    평택당진항발전협의회 공성경 정책국장은 "조성 목적에 부합하려면 배를 댈 수 있는 부두(선석)를 포함한 자유무역지역을 만들었어야 했다"며 "원자재를 수입해 조립, 가공하고 수출로 연결시켜 외화도 벌고 인력도 창출해야 항만 지역경제가 제대로 살아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평택항 자유무역지역은 물류형으로만 조성돼 처음부터 자유무역지역의 궁극적인 목적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며 "차량 1대를 컨테이너 1개로 여겨 단순 물동량 늘리기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내실 있는 고부가가치와 외화 창출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불법 야적 행위까지 만연해 있는데 당국의 처분은 계도뿐 솜방망이에 가까운 것 아니냐"며 "위법한 현장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경상대 스마트유통물류학과 이태휘 교수는 "평택항은 국제물류형으로 수입차는 물량이 많으니 자유무역지역 입주 경쟁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기능 종합항만이라는 점에서 지원 혜택을 받는 특별구역이 특정 업종에 쏠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일부 비율만큼 일종의 '수입차존'을 설정하고 컨테이너, 철재, LNG 등 다양한 물류 업종들도 고르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춰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