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중인 콜센터 상담사들▶ 글 싣는 순서 |
①5년 전 가계부 비교해보니…'벼랑 끝' 최저임금 노동자 (계속) |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상담사로 일하는 김금영(32)씨는 지난달 30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공단이 하루 75콜 이상 응대치를 성과상여금 지급 기준으로 정했지만, 하청 용역업체가 임의로 80콜로 기준을 높였기 때문이다.
공단은 상담사 1인당 임금을 기본급 203만 4500원, 성과금 8만 원, 식대 10만 원, 수당 11만 3천 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용역업체 기준대로면 상담사 112명 중 60여 명이 받던 성과금을 앞으로는 17명만 받게 된다.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용역업체의 일방적인 결정에 공단은 "월급 체계에 관여하면 불법 파견"이라고 발을 뺐다.
김씨는 "1인당 8만 원씩인 인센티브를 모아서 상위 몇 명에게 40~50만원을 몰아서 줘버리는 것"이라며 "물가에 비해서 최저임금이 너무 낮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서 단돈 1~2만 원도 아깝다"고 설명했다.
"생활비도 부족한 저임금에 출산 꿈도 못 꿔"
단돈 1~2만 원에 파업까지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낮아도 너무 낮은 최저임금 때문이다. 올해 월 최저임금은 201만 580원. 김씨가 일용직 노동자인 남편과 맞벌이로 번 돈 한 달 400만 원 안팎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시절 대출한 생활비 탓에 매달 이자 30만 원을 내고, 여기에 전세자금 대출과 도시가스요금 등으로 87만 원, 식대 60만 원, 교통비 30만 원, 통신비 16만 원 등 줄일 수도 없는 고정 지출만 계산해도 김씨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40만 원 남짓. 게다가 지난달에는 양가 부모님에게 어버이날 용돈 80만원을 드렸으니 이번 달은 10만 원 적자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식대로 많게는 65만원까지 들더라고요. 쌀값도 오르고 채솟값도 오르고… 소형차라도 끌고 다니려면 기름값도 나가고. 400만 원으로 둘이 살아가기도 어렵죠" 김금영씨의 2018년 5월과 지난달 가계부. 최저임금이 치솟았다는 일각의 주장과 달리 정작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졌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언론에서는 최저임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는데 정작 김씨의 생활은 한치도 나아지지 않았다. 결혼 전 혼자 살았던 김씨의 2018년 5월 가계부를 찾아보니 월세·관리비 등 주거비로 66만 원, 통신비 8만 원, 교통비 15만 원, 식비 30만 원, 보험료 13만 원을 지출했다. 부모님 용돈으로 20만 원을 쓰면 남는 돈은 6만 원. 예나 지금이나 화장품 하나 본인을 위해 쓰기 아깝다.
치과 치료도 받지 못해 치아 4개가 없다는 김씨는 한 달에 13만원씩 넣던 민간보험도 보험료를 내지 못해 최근 자동 해약됐다. 아끼고 아꼈지만 결혼식 비용 1천만 원도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마이너스 아니면 다행"이라는 김씨에게 자녀 출산 등 미래 계획은 꿈도 꿀 수 없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성장시켜서 대학까지 보내려면 집도 사야 하는데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요. 단순히 그냥 돈을 올려달라는 게 아니에요. 실제로 생활할 수 있게 해주든지, 사회복지가 잘 돼서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할 비용을 낮춰주든지. 실제 아이가 태어나면 내 아이 먹고사는 게 또 고정 생활 지출비가 되는 건데 지금 수준으로는 아이를 절대 낳을 수 없는 수준인 거죠"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후보 모두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재인·유승민·심상정 후보는 2020년까지, 안철수·홍준표 후보는 임기 내인 2022년까지 시급 1만 원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23년인 현재, 최저시급은 여전히 1만 원에도 못 미치는 9620원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은 7.2%로, 박근혜 정부 때 평균 7.4%보다도 0.2%포인트 낮았다.
"월급 받아 계산기 두드리는 빠듯한 삶 벗어나고 싶어"
장명숙(가명·55)씨 가족은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생일이 아니면 외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 지난겨울에는 난방 대신 전기장판을 틀며 버텼다. 경기도에 있는 한 초등학교 청소노동자인 장씨의 월급은 140만 원 안팎. 은퇴 후 재취업한 남편과 맞벌이해 월 460만원가량을 번다.
그런데도 저축은커녕 월 10만 원씩 적자가 날 때도 부지기수다. 슬하에 20대 자녀 2명을 둔 장씨에게 냉난방비 몇만 원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그나마 두꺼운 옷을 껴입으면 버틸만했던 겨울과 달리 여름은 두렵기까지 하다.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로 일했던 장씨는 코로나19 사태로 수업을 못해 청소노동자가 됐다. 학교에서는 청소 면적당 필요한 근로시간을 정하는데 장씨의 근로시간은 6시간이다. 3년 차지만 근속수당은 없다. 기본급과 식대가 전부다. 장씨는 한 끼에 4천 원 하는 학교 급식비를 아끼기 위해 매일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장명숙(가명)씨의 지난달 가계부. 박희영 기자장씨 가족의 지난 5월 가계부를 보면 식비 55만 원, 주택자금 대출과 관리비·보험료 등으로 200만 원, 교통비와 통신비로 60만 원, 의료비로 30만 원, 자녀 교육비·월세 지원으로 100만 원, 부모 용돈으로 20만 원, 경조사비로 20만 원 등을 썼다. 옷은 한 벌도 사지 않았고, 술 담배도 하지 않는다. 장씨가 월급을 받아 자신을 위해 쓴 돈은 3천원짜리 매니큐어가 전부였다. 지난달에는 청소 일로 어깨 통증이 심해져 도수 치료받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장씨에게는 의료비 지출도 큰 부담이다.
"팔을 올릴 수가 없어서 15만 원짜리 도수치료를 열 번 정도 받으면 150만 원이 그냥 나가요. 3만 원짜리 어깨 주사도 10번 맞으면 30만 원이 나가잖아요"변기는 1.4분, 세면대는 1.7분. 장씨가 청소를 해내야 하는 기준 시간이다. 변기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시간 안에 닦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장씨에게 교육청은 "노무사와 함께 직접 청소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한 시간"이라고 답했다.
강도 높은 청소노동을 하느라 근육통을 달고 산다는 장씨는 "그래도 청소노동자는 필수인력이란 자부심이 있어서, 초등학교 아이들 밝은 모습이 예뻐서, 돈을 벌 수 있어서" 일을 계속한다. 남편과 함께 번 돈은 필수생활비로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바람에 민간보험 등 노후 대비는 꿈도 못 꾼다는 장씨가 최저임금 인상을 바라는 이유는 딱 하나, '계산기 두드리지 않아도 되는 삶'이었다.
"여유 있는 삶이요, 그거를 조금 원해요. 급여를 받았을 때 맨날 계산기 두드리지 않고 내가 일해서 번 정당한 월급으로 조금이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일상생활을 꾸려나가고 싶은 마음 때문에 저는 최저임금이 인상됐으면 좋겠어요"최저임금 노동자 가계부…일해도 '월 10만원 적자'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모두 이렇게 팍팍할까. 민주노총이 최저임금(시간당 9620원) 안팎의 급여를 받는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 등 17명의 가계부를 분석한 결과 월평균 220만 원을 벌지만, 230만 원을 지출해 매달 10만 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해서 임금을 받아도 저축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기는커녕 빈곤에서조차 벗어나기 힘든 '근로빈곤' 상태였다.
민주노총 2023년 저임금노동자 가계부 조사 분석결과.민주노총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는 청소노동자 6명, 제조업 종사자 3명, 경비노동자 1명 등이 응했다. 60대 2명, 50대 5명, 40대 4명, 30대 5명, 20대 1명 등 장년층부터 청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포함됐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의식주·교통·통신·교육비 등 필수생활비에 월 소득의 61%가량을 쓰고 있었다. 특히 공공요금인 주거·수도·광열비가 지난해(22만 원)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45만 9600원으로 월 소득의 약 20%를 차지해 부담을 가중시켰다. 교통비 역시 한 달에 11만 1700원(4.9%) 수준으로 출퇴근 외 지출이 거의 없었다. 전국 가구 평균의 교통비는 23만 9천 원(8.5%)이다.
한편 저임금 노동자들의 문화생활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한 달에 문화비로는 5만 원(2.2%)도 채 쓰지 않아 월평균 19만 4천 원(6.9%)을 쓰는 전국 가구 평균과 대조됐다.
조사에 참여한 저임금 노동자들의 의료비는 월평균 14만 7천 원(6.4%)으로 나왔지만, 의료비 지출이 약 3배 수준에 달하는 노년기를 대비할 여력도 없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 4분기 연속 실질임금 하락
저임금 노동자들의 팍팍한 삶은 비단 문재인 정부 시절 '실패'한 최저임금 실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15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공개한 '4분기 연속 실질임금 하락' 보고서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실질임금 인상률은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가 1인 이상 사업체 월 임금을 조사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이사장은 "지금까지는 실질임금이 지속해서 상승해왔는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직후부터 4분기 연속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있다"며 "실질임금이 하락하게 되면 1차적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수준이 하락하고 분배 격차가 확대된다"고 설명했다.
또 "윤석열 정부는 이중 노동시장 구조를 해소하겠다고 했는데 지금처럼 실질임금 저하가 지속된다면 오히려 이중 노동시장 구조가 확대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실질 최저임금 인상률도 2021년 -1.0%, 2022년 -0.04%로 두 해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김 이사장은 "2018년과 2019년의 경우 최저임금이 예년에 비해서 높게 오른 건 사실"이라며 "그 반작용으로 2020년, 2021년, 2022년에 상당히 낮은 수준에서 최저임금이 책정돼 박근혜 정부 때보다 문재인 정부 때 오히려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이 낮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최근에 물가가 많이 올라 최저임금 같은 경우도 실질임금 개념으로 계산해보면 2021년과 2022년 2회 연속 마이너스"라며 "이는 과거에 볼 수 없는 현상인데 최근에 2~3년 동안 지나치게 낮은 수준에서 최저임금이 책정됐기 때문에 이를 보전하는 차원에서 최저임금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