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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일하러 간 엄마'와 '굶어 죽은 아기'…그날의 법정

법조

    [법정B컷]'일하러 간 엄마'와 '굶어 죽은 아기'…그날의 법정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법정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기사 하나로는 차마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무수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죠.

    오늘 '법정B컷'이 전해드릴 이야기는 영양실조로 짧디 짧은 삶을 살다 떠난 생후 4개월 아기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물리적 폭행은 없었지만, 드러난 여러 증거로 인해 아동학대'살해'가 인정된 20대 친모의 이야기도 함께 전해드리겠습니다.

    끔찍했고, 또 기구했던 그날의 법정으로 가보겠습니다.

    혼자 뿐이었던 20대 母… 아기는 방치됐다

    이달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김승정 부장판사) 법정에 녹색 수의를 입은 20대 초반의 여성 A씨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날은 아동학대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 대한 선고가 내려지는 날이었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재판장을 바라보는 그는 무척이나 긴장한 모습이었습니다. 재판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네"라고 답하던 그는 "매번 대답 안 해도 됩니다"라는 법원 관계자의 말을 듣고서야 말을 멈춥니다. 법정이 참으로 낯설었던 모양입니다.

    A씨는 생후 4개월 아기를 상습적으로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사인은 '영양실조'였습니다. 검찰 수사에서 A씨가 아기를 때리거나 물리적으로 학대한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분유도 샀고, 아기 용품도 사는 등 육아를 위한 지출도 있었죠. 하지만 재판부는 미필적 고의에 인한 아동학대살해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징역 15년을 선고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구체적으로 살펴보죠.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23살인 A씨는 지난해 피해자를 낳았습니다. 아기를 돌 볼 사람은 자신 뿐이었습니다. 가족과는 연락이 끊겼고, 친부는 다른 범죄로 구치소에 수감 중이었습니다. 혼자 생계를 꾸려야 했던 그는 오후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7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문제는 그 사이 아기는 홀로 방치됐다는 겁니다.

    그러던 중 아기가 숨을 쉬지 않자 A씨는 병원에 데려갔고, 병원은 극도로 마른 아기의 상태를 보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A씨는 그렇게 붙잡혔습니다.

    검찰은 아동학대살해로 판단했습니다.그리고 지난 4월 열린 결심공판에서 징역 30년을 구형합니다.

    2023.4.26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 아동학대살해 혐의 공판 中
    검찰
    "피고인은 2022년 출산해 홀로 양육하던 중 아무런 치료 행위도 없이, 필수 예방 접종도 하지 않고 생후 3개월에 불과한 피해자를 홀로 두면서 12시간 내지 24시간 방치해 영양 결핍으로 살해했습니다"

    "23세 불과한 범죄 전력이 없는 피고인은 친부가 구치소에 수감돼 홀로 출산한 딱한 사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4개월 간 먹지도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죽어갔고, 피고인이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특히 반성하지 않는 피고인은 선처할 필요가 없습니다"


    검사도 많이 고민했다고 합니다. 양육의 의지로 보였던 흔적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검사는 "수사 당시 피고인은 분유와 기저귀를 구매한 이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키우려 했던 것인지 검사도 고민했지만 피고인은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 것이라 명백히 예상했을 것이라고 보여집니다"라고 말합니다.

    A씨 측은 혐의를 부인합니다.

    2023.4.26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 아동학대살해 혐의 공판 中
    A씨 측 변호인 "피고인은 비록 잘못된 판단으로 아이를 양육하다 사망에 이르게 한 점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고 한 사실이 없고, 살해 고의도 없습니다. 아들에게 육체적 상해를 가한 사실이 없고,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돼 일을 했습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엔 잘 양육하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기한 사실은 있으나 12시간 정도로 하루를 넘겨 유기한 적은 없습니다. 아동학대 사례 판례를 보면 직접적 유형력 행사가 있고, 또 방치도 24시간을 넘기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유기 사실과 유기로 인한 사망 사실이 인정될 뿐이지 유기 사망의 고의가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A씨도 최후진술 기회를 받았습니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고 있던 그는 한동안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법원 관계자가 휴지를 가져다주고 진정시키고서야 입을 뗐습니다.

    2023.4.26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 아동학대살해 혐의 공판 中
    A씨 "피해자 아동에게 먼저… 미안하다는 죄책감이 듭니다. 하지만 전 먹고살기 위해 노력했고 제가 가장이 돼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죄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 살인 의도는 없었고 살리고 싶었습니다"

    "아동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꼈고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너무 힘들고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 아동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인정된 아동학대살해…"아이돌보미 없었고, 아기는 말라갔다"

    약 한 달 뒤 열린 선고 기일에서 재판부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아동학대살해를 인정합니다.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또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병을 앓았습니다. 출생 당시 의사는 아기가 '폐동맥 고혈압'을 앓고 있다고 A씨에게 말했지만, 아기가 숨지기 전까지 A씨는 어떠한 치료 행위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B형간염 등 국가에서 정한 필수기초접종도 하지 않았죠. 물론 피해자가 이런 질환으로 숨진 것은 아니지만 A씨가 얼마나 부주의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이는 방치됐고, 직장에서 집까지는 도보로 10분 거리에 불과했죠. A씨가 아기를 생각했다면 중간중간 돌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입니다. 특히 재판부는 수입이 있는 상황에서 아이돌보미를 고용하지 않은 점도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2023.6.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 아동학대살해 혐의 선고 中
    재판부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피해자의 친모로 피해자의 법익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생후 4개월 아이로 스스로 자기를 보호할 능력이 없고, 피고인 외엔 보호해줄 아무 사람도 없었습니다. 피고인은 주변 지인에게 출생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아이돌보미도 구하지 않아 스스로 이런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피고인은 경제적 이유로 아이돌보미를 구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피고인의 수입과 지출 내역, 아이돌보미 비용을 종합하면 위 주장을 믿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피해자를 보호할 사람은 피고인만 있는 상황을 만든 피고인은 일하는 중간 잠깐이라도 피해자를 돌볼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고, 노력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A씨는 피해자의 출생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A씨만 알겠지만 드러난 사실은 그가 이전에도 출산한 적이 있다는 겁니다. 여아를 출산했지만 당시에도 육아에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는 모친이 양육하고 있다고 합니다.

    2023.6.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 아동학대살해 혐의 선고 中
    재판부 "피해자는 다른 원인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굶주림과 영양 결핍으로 사망했습니다. 이는 쉽게 회피할 수 있는 피고인 지배 범위의 일입니다. 피고인이 조금만 주의했다면… 먹이고, 돌봤다면 사망이란 결과는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중략) 결국 아동학대 살해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유죄로 판단합니다"

    미필적 고의를 인정한 재판부는 A씨에게 검찰 구형량의 절반인 징역 15년을 선고합니다.

    2023.6.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 아동학대살해 혐의 선고 中
    재판부 "피고인 스스로 이런 상황을 자초했고, 사람의 생명은 한번 침해되면 다시는 돌이키지 못하는 가장 존엄하고 근본적 가치이자 최고의 법익입니다. 피고인의 죄책은 매우 무겁습니다"

    "다만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려는 확정적 고의는 없었고 미필적 고의를 가지고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점, 양육을 근본적으로 포기한 것은 아니고 피해자에 대해서 물리적, 직접적, 유형력의 학대를 못 찾은 점,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이고 나이와 가정환경, 범행 동기, 범행 정황 등 모든 양형 요소를 고려해 형을 정했습니다"


    "피고인을 징역 15년에 처한다"

    이날 선고기일에도 A씨는 혼자였습니다. 법정은 텅텅 비었고, A씨 홀로 눈물을 흘리며 선고를 들었죠. 하지만 재판부가 밝힌 것처럼 피해자는 최고의 법익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을 잃었습니다. 사망 당시 아기는 태어났을 때보다 몸무게가 줄었다고 합니다. 또래 남아 평균 몸무게의 절반에도 달하지 않았죠. 가장 보호받아야 할 시기, 4개월이란 짧은 시간 동안 아기는 아마 홀로 있던 시간이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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