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용병회사 바그너그룹 수장의 '무장 반란' 사태가 하루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사태를 놓고 선뜻 이해도 안 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들이 많다는 분들이 계셔서, 이 시간에 이 문제 풀어보려고 합니다. 국제팀 권민철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사태 전개 과정 간단히 짚어보고 갈까요?
[기자]
'서방언론'이 보도한 대로 정리해보면요.
현지시간 금요일, 우크라이나와 전쟁 수행중이던 용병 바그너그룹 대표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 정규군을 비판하며 휘하 부대를 이끌고 러시아로 회군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반역이라고 규정하고 체포 지시했고요. 그럼에도 프리고진은 파죽지세로 러시아 남부 몇몇 도시를 장악했습니다. 러시아가 내전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러시아 국민들은 프리고진에 박수치며 응원했다고도 했습니다. 그에 힘입어 프리고진은 모스크바 200km 가까이 진격했습니다. 그런데 모스크바 함락을 앞두고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안을 프리고진이 받고 갑자기 진격을 멈췄습니다.
이후 벨라루스로 정치 망명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한편의 영화 같은 스토리입니다.
[앵커]
23년 철권통치를 해오던 푸틴이 친위 쿠데타로 실각하는 거 아니냐는 기대도 있었죠?
[기자]
금요일 영국 더 타임스 보도의 제목이 '이것이 푸틴의 끝인가?'였습니다. 이 보도 내용 일부 소개하면, "역사가 푸틴의 몰락을 기록할 때 최후의 게임이 이번 일에서 시작했다고 말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텔레그래프 보도 제목도 '이것은 푸틴의 길의 끝'으로 돼 있습니다. 이 매체는 "많은 사람은 푸틴을 '불굴의 구원자'로서 존경했지만, 이제는 상처 입고 실패한 사람을 보게 될 것"이라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세등등했던 프리고진이 하루만에 철수하면서 이번 사태 초기의 보도는, 현재로선 상당부분 허황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앵커]
어떤 면에서 허황됐다는 건가요?
[기자]
바그너 그룹이 무장 봉기하고, 러시아 도시들을 장악하고, 이어 파죽지세로 모스크바로 진격했다면, 무력 대치가 한번쯤 있어야 했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습니다. 물론 프리고진은 러시아군이 전투기와 헬기로 바그너 그룹을 공격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총 한방 쏘지 않고 도시들을 '장악'하고, 수도를 '함락'할 순 없겠죠. 더욱이 바그너 그룹은 그럴 능력도 갖추고 있지 않아 보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바그너그룹은 최근 탄약이 없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병력도 많아야 2만 5천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핵탄두 보유 세계 1위인 러시아 정규군 입장에선 바그너그룹은 하룻강아지 정도 밖에 되진 않은 거죠.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 방향으로 행진해 나갈 때 러시아 국방부가 별 대응을 안 한 것도 일단은 지켜보자는 판단 때문일 수 있어 보입니다.
[앵커]
해프닝으로 끝나는 분이기지만, 처음에는 쿠데타라고 했었고, 그 원인에 대한 분석도 그럴듯하게 나왔었죠?
[기자]
맞습니다. 영화같은 일이 벌어지니까 서방언론 이런 저런 분석 내놓았습니다. 사업가인 프리고진이 서방에 거액에 매수당해서 이런 일을 벌였다거나 아니면, 푸틴의 자작극이다, 즉 전쟁장기화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권력이 커지니까, 그를 제거하기 위해
프리고진을 시켜 국방장관에게 대들게 했다거나하는 식의 분석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 놓고 보면 모두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고 앞뒤도 맞지 않는 분석들입니다.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연합뉴스[앵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사실 프리고진이 한 말에 모두 담겨 있는 거 아닌가요?
[기자]
이번 사태의 그림은 프리고진의 말을 찬찬히 새겨들었다면 좀더 정확한 윤곽을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먼저 금요일에 프리고진은 러시아 국방부가 바그너 그룹을 공격해 회군을 결심했다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쇼이구 국방장관을 거명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프리고진]
""국방장관이 대통령을 완전히 속이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현실과 동떨어진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기자]
그리고 다음날 국방부 관료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 대목도 들어보시죠.
[프리고진]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도 싸웠지만 탄약과 무기를 위해 써야할 돈을 도둑맞았습니다. 국방 관료들은 꼼짝 않고 돈을 챙겼습니다."
[기자]
결국 이 같은 국방부의 불의에 맞서서 떨쳐 일어났다는 설명입니다. 이 때문에 프리고진은 바그너 그룹의 회군을 '정의로운 행진'이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모두 러시아 국방부 관료들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낸 것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프리고진이 언급한 쇼이구 국방장관, 바그너 그룹을 통제하기 위해 용병들에게 일제 계약을 체결하라고 최근 지침을 내린 바 있는데, 그 계약 체결 마감 시점이 7월 1일입니다. 결국 이 계약 체결 시한을 일주일 남겨 놓고 행동에 나선 겁니다. 따라서 자기와 20년 지기인 푸틴 대통령에게 쇼이구 장관과 자신 사이에 양자택일을 하라고 무력시위를 한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일 거 같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서방 언론이 이번 사태를 입맛대로 재단한 측면도 있다고 봐야할까요?
[기자]
같은 말이라도 '진격'이라는 말 대신 '행진'이라는 말, '함락'이라는 말 대신 '도착'이라는 말을 썼다면 상황은 달리 보였을 것입니다. 러시아 국민들이 프리고진에 박수를 쳤다는 보도 역시, 과잉 해석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마치 프리고진이 푸틴에 대들어 박수갈채를 받았다는 뉘앙스인데, 바그너그룹은 이번 사태 직전까지도 러시아와 대등하게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조직입니다. 전장에서 살인, 강간 등 전쟁범죄를 저지른 조폭과도 같은 무리들입니다. 그 무리가 푸틴에게 대든다고 해서 그들이 하루아침에 천사로 둔갑해선 안되는 일입니다. 물론 푸틴이 이번 사태로 망신당했다는 분석 등 합리적인 보도도 없는 건 아니다.
[앵커]
권민철 기자는 워싱턴 특파원을 역임하고 지난달에 복귀했는데, 워싱턴에 있을 때 전쟁이 일어났는데,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기자]
이번 사태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게다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내부 사정을 외부에서 속속 알기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단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미국 등 서방언론의 보도는 어느 정도 정치화돼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쟁의 '잘잘못'을 논하는 것만큼이나 더 이상의 살상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겠죠. 그렇다면 미국 언론도 국제사회나 러시아-우크라 양측이 평화협상에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해야합니다. 그러나 되레 호전적이고 전쟁지상주의적 보도 행태가 더 많습니다. 전쟁의 당사자인 미국의 눈으로만 보면, 보이지 않은 것들이 가끔씩 있습니다. 이번 프리고진 시위가 딱 그런 사례일 겁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