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제보 사항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내용이 있었다." 감사원이 엄중한 비위를 암시하면서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을 감사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빈손이었죠. 전현희 위원장 개인에 대해선 아무런 책임도 묻지 못했습니다. 무리한 감사였다는 비판과 함께 그 과정에서 감사원 내부도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의 전횡에 대한 불만으로 흔들리고 있다는데요. 자세한 내용 [권영철의 Why뉴스]에서 알아보겠습니다.
권영철 대기자! 전현희 위원장이 결국 3년 임기를 다 마치고 퇴임했군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임기를 마치고 어제 퇴임했습니다. 전 위원장은 퇴임사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초유의 감사원 사퇴압박 표적감사의 대상이 되었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으며, 고뇌에 빠진 적도 많았다."고 토로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의지로 중심을 잡고 버텼다는 소회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전 위원장은 공자가 제자 자공의 '정치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즉 '백성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나라가 존립하지 못한다'는 말을 인용하는 걸로 퇴임사를 마쳤습니다.
◇정다운> 이 감사에 착수할 때부터 말이 많았는데, 유병호 사무총장이 '묵과할 수 없는 내용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거든요. 전현희 위원장은 중도에 물러나게 될 것이란 시각이 많았는데 어떻게 임기를 마친거죠?
◆권영철> 결론은 전현희 위원장 개인에게는 책임을 물을 만한 비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감사원이 권익위와 전 위원장 개인에 대해 10개월여 감사를 해왔지만 결과는 빈손이었던 겁니다.
이달 초 6월 1일 감사원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에서 대부분 불문 결정을 내렸습니다. 검찰 수사로 치자면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과 마찬가집니다. 단 한 가지 권익위 고위간부의 '갑질' 징계에 대해 집단으로 탄원서에 서명한 것에 대해서만 '기관주의' 처분이 의결됐습니다.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고나 할까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엄청난 비위가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렸지만 결과는 허무했던 겁니다.
2022년 7월 29일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유병호 사무총장이 했던 말 들어보시죠
"권익위원회는 내부 제보 사항입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다운> '내부 제보'였다는 것이죠? 누군지 드러났나요?
◆권영철> 유병호 사무총장이 국회에서 직접 답변하면서 밝힌 것이니까 내부 제보가 맞겠죠?
국회에서 여러 차례 본인을 상대로 제보 당사자가 맞냐고 따진 적이 있습니다. 권익위 임윤주 기조실장인데요, 유병호 사무총장과는 행시 동기고, 국민제안비서관실 행정관과는 대학동기이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 국장에서 실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래서 제보자라는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감사원 조은석 감사위원이 권익위원회 사건의 주심위원인데, 감사원 사무처에서 제출한 감사결과보고서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작성해 감사위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140쪽 분량입니다. 이 보고서가 국회에 제출됐고요, CBS가 입수했는데 마지막 부분에 "제보자, 즉 신고를 한 사람이 임윤주 국장이라면, '무고로 고발할 것'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정다운> 이 사건에 대해서 조은석 위원 혼자 140쪽을 쓴거네요.
◆권영철> 책 한 권이죠, 이것만 봐서는 알 수 없어서, 감사원이 공개한 감사결과보고서, 첨부 문서를 제외하고 53쪽이나 됩니다. 또 조은석 위원이 감사원 홈페이지에 올린 열람결재 패싱에 대한 입장문, 등등 감사원의 권익위 감사와 관련해서 엄청난 양의 문서를 봐야 합니다.
◇정다운> 권 대기자는 다 보셨죠? 일각의 표현대로 표적감사라는 정황이 엿보이나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감사원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게 물어보니까 '처음부터 전현희 위원장을 쫓아내기 위해 무리하게 감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전현희 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는 제보로 시작됐습니다. 제보 내용은 단 두 가지였습니다. 당시 제보를 정리한 문건에는 '위원장 출퇴근 시간 상습 미준수', '차명 변호사 사무실 운영'이라고 단 3줄로 되어 있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감사정보'인데도 구체적인 내용이 없고, 제보자와 제보를 받은 직원에 대한 내용도 없었다는 겁니다. 제보 내용은 감사원 규칙과 훈령에 따라 담당 부서인 디지털감사담당관실이 관리해야 하는데, 감사전략담당관이 관리하고 있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도 마찬가지지만 제보 내용이 익명이거나 구체적이지 않으면 단순불문 종결 처리합니다.
◇정다운> 그런데 감사원은 감사를 통해서 전현희 위원장의 비위혐의사실 9가지를 감사위원회에 부의했잖아요?
◆권영철> 그랬습니다. 6월 1일 감사위원회의가 예정돼 있었고, 감사원 사무처는 전현희 위원장의 비위혐의 사실 9건을 특정해 부의안건으로 올리기로 하고, 전 위원장에게 통지했습니다.
9가지 비위혐의는 아래 표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감사원은 이 중 출퇴근 미준수와 탄원서 제출을 제외한 7가지 혐의로 전 위원장을 대검찰청에 수사요청 했습니다.
◇정다운> 비위혐의를 9건이나 적발해서 감사위원회의에 부의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결과 이렇게 빈손이 된 건가요?
◆권영철> 감사원 사무처가 감사위원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에 6가지를 철회 했습니다.
조은석 위원이 감사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입장문에 따르면 "회의 하루전인 5월 31일 오후 수정.변경하였고, 변경된 부의안 내용은 전 위원장에 대한 개인주의와 인사자료 통보 의견을 철회하고 기관주의로 변경했다"는 겁니다.
비위혐의 내용 9가지 중에서 ① 출퇴근 미준수 ② 보도자료 허위작성 ③ 탄원서 제출을 제외한 다른 비위혐의사실은 모두 철회한 겁니다. 조 위원은 "이는 사무처가 스스로 국민권익위원장 전현희에 대한 개인 문책을 철회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다운> 묵과할 수 없는 내용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권영철> 감사원 스스로 무리한 감사였음을 시인하는 결과가 되는 거겠죠? 감사원내부에서는 해서는 안되는 감사를 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3가지 비위혐의가 회부됐잖아요? 감사위원회의에서 이중 '출퇴근 미준수'와 '보도자료 관련'은 감사위원 6명 전원 만장일치로 불문결정을 했습니다. (감사위원이 7명인데 6명이 어떻게 만장일치냐? 의문이 생길수도 있겠습니다만, 감사위원회의의 진행방식은 감사원규칙에 따라 임용이 늦은 순서대로 의견을 말하도록 되어 있고, 의장인 감사원장이 마지막에 의견을 말하는 구조입니다. 의장이 의견을 밝히기 전 감사위원 6명의 의견이 일치하게 되면 의장은 별도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확정되었다는 취지로 정리하거나 특별히 회의록에 의견을 남기려는 경우에는 그 취지를 말합니다.)
다만, 탄원서 부분은 갑질한 간부를 위해 집단으로 탄원서를 제출한 것이 2차 가해에 해당해 부적절 하다는 사유로 기관주의로 의결이 됐습니다.
전 위원장에게 제기되었던 비위혐의는 모두 감사원 사무처가 스스로 철회하거나 감사위원회의에서 불문으로 의결이 되었습니다.
◇정다운> 그런데 감사 결론이 나기도 전에 수사요청을 한건가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감사원은 감사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부터 일관되게 '수사요청'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은석 위원의 검토보고서에서 드러났습니다.
조 위원은 "감사원이 감사를 실시하면서 범죄사실이 발견되면 고발이 원칙이고, 수사요청은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 사유 발생 당시 시점을 기준으로 그때그때 판단하여 예외적으로 하는 것임에도, 7월 27일 전현희 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계획을 수립하면서, 8월과 9월 두 차례 감사 기간을 연장하면서 계획서에 일관되게 '수사요청'을 기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감사원의 권익위에 대한 감사가 처음부터 전현희 위원장을 겨냥한 '표적감사'라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지적한 겁니다.
◇정다운> 그럼 수사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권영철> 감사원이 고발한 사건은 대검에서 세종경찰서로 이첩했고, 경찰은 수행비서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전현희 위원장과 관련된 사건은 아직 수사에 진전이 없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반대로 전현희 위원장이 자신에 대한 감사가 감사위원회의 의결 없이 이뤄져 절차를 위반한 감사이므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한다며 공수처에 고발을 한 사건도 공수처에서 수사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직 감사원 관계자를 소환하거나 할 정도는 아닌 걸로 파악됐습니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달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감사원 전원위원회(대심)에 출석해 의견 진술을 하기 전 입장을 밝힌 모습. 류영주 기자◇정다운> 궁금해서 그러는데 장관급 공직자에 대해서 출퇴근 미준수를 이유로 감사를 한 전례가 있나요?
◆권영철> 들어본 적도 없는 기이한 감사입니다. 기관의 장은 징계대상이 아닙니다.
조은석 감사위원도 검토보고서에 "정무직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출퇴근시간 준수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적정한지 의문"이라면서, "특히, 독립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출퇴근 시간을 감찰하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공무원 복무규정에는 "행정기관의 장은 공무수행을 위하야 필요한 경우 본인의 판단 하에 출장이 가능하다"고 예외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행정기관의 장은 복무점검의 주체자이지 대상자가 아닙니다. 세종에서 서울로 업무차 출장할 경우 출퇴근 시간이 적용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독립기관의 장관급 위원장에 대해 '세종청사에 출근한 횟수 중 몇%가 지각이었다'까지 밝히는 이유가 뭘까요? 감사원 관계자도 행정기관 장의 출퇴근 문제를 감찰한다는 건 금시초문이라고 말헸습니다.
◇정다운> 감사위원회에서는 불문결정을 했는데 내용을 공개했잖아요. 복무기강이 해이한 게 공개할만한 공익적 사안이라고 본걸까요?
◆권영철> 그게 희한한 겁니다. 수사를 해서 무혐의 결정이 났는데, 그 혐의 내용을 공개한다? 납득이 안 됩니다. 감사원에서는 공개한 이유를 "국민적 관심을 고려해 처분을 요구하지 않은 제보내용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확인결과를 감사보고서에 기재했다"고 했습니다.
감사보고서의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감사원이 전현희 위원장에 대해 이런저런 제보를 받아 조사를 했는데 해보니 문제가 없더라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형식은 전 위원장이 엄청난 문제가 많은 공직자였던 것처럼 포장이 돼 있습니다. 특히 감사원 사무처가 감사위원회의 의결과 다른 내용의 감사보고서를 감사위원들의 열람결재도 없이 전자문서에 탑재해 공개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내일(29일) 전체회의를 열어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을 상대로 전현희 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 내용, 감사위원 '패싱 논란' 등 감사원 관련 현안들을 질의할 예정입니다.
◇정다운> 감사원에서는 유병호 사무총장의 측근들이 '타이거' 또는 '타이거파'라고 불리고, 실력파로 알려지지 않았나요?
◆권영철> 그런 걸로 알려졌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소문과는 달랐나 봅니다.
'타이거(TIGER)'는 호랑이처럼 용맹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유 사무총장이 강조하는 감사관의 5가지 능력(Training·훈련, Intuition·직관, logic·논리, Evidence·증거, Reasoning·추리)을 뜻하는 말입니다. 감사원 내에선 유 총장과 오랜 인연을 맺은 감사관들을 '타이거파'로 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감사결과를 보면 타이거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호랑이가 아니라 고양이도 못되는 것 아니냐? 그런 얘기도 들립니다.
류영주 기자감사원 내부에서도 계속된 '정치감사', '표적감사' 논란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감사원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한 고위공직자는 "최재해 원장이나 유병호 사무총장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은 10% 안팎일 정도"라면서, "인사에서 승진하거나 요직으로 간 일부에서만 따를 뿐, 내부에서 점점 고립되는 걸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왜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졌냐하면 최재해 감사원장이 감사위원들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면서 비서관 역할을 하던 감사관을 무보직으로 좌천시키고, 컴퓨터를 압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