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전 보조관 박용수씨가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2021년 더불어민주당 불법 금품 살포·수수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보좌관 박용수씨가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발생한 컨설팅 비용을 후원조직에 떠넘기고, 증거인멸을 주도한 핵심 피의자로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김영철 부장검사)는 박씨의 구속영장에 이런 내용을 적시하고 구속 필요성을 주장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3일 정당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씨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거쳐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씨는 2021년 5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송 전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 강래구(구속기소)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등과 공모해 5천만원을 받고 6750만원을 살포한 혐의를 받는다. 서울지역 상황실장 이모씨에게 선거운동 활동비로 50만원을 주고, 다른 상황실장 박모씨에게 선거운동 콜센터 운영비 700만원을 제공한 혐의도 있다.
박씨는 컨설팅업체 '얌전한고양이'에 의뢰한 경선 관련 여론조사 비용 9240만원을 송 전 대표의 외곽 후원조직인 '평화와먹고사는문제연구소(먹사연)'가 대납하게 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먹사연 사무실 하드디스크를 모두 교체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특히 박씨는 컨설팅비 대납을 모의하는 과정에서 얌전한고양이 대표 전모씨가 '서류를 실제와 다르게 발행할 경우 나중에 정치자금법 위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재고를 요청했지만, 먹사연 명의로 계약서를 만들어 줄 것을 거듭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당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전 보조관 박용수씨가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검찰은 박씨가 2020년 4월부터 송 전 대표, 먹사연의 이모 소장 등과 당대표 경선을 위한 전략 등을 논의하는 '정무기획회의'를 꾸려 본격적인 경선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파악했다.
박씨는 한 달 뒤 송 전 대표의 당선 가능성 점검을 위해 얌전한고양이에 당대표 적합도 여론조사를 의뢰해 '송영길의 당대표 당선 가능성이 높고, 친문(친문재인) 지지도가 매우 중요하며, 2040세대 약세를 극복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분석 결과를 받았다. 박씨는 이 여론조사 비용인 500만원도 먹사연 자금으로 지급했다.
박씨는 애초 전 대표가 '여론조사 견적서'와 관련해 수신자를 '송영길 의원님'으로 하자 특정 정치인을 위한 여론조사 비용을 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신자를 먹사연으로 바꾸도록 요청했다. 견적서 제목도 '여론조사 견적서'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견적서'로 뒤바뀌었다.
박씨는 또 2020년 7~8월 전씨와 송 전 대표 당선을 위한 여론조사 및 선거전략 컨설팅 계약을 맺고 '송영길의 PI(퍼스널 아이덴티티·개인정체성) 전략 수립 및 리더십 강화를 위한 컨설팅 진행계획'을 보고 받았다.
해당 계획은 '민주당 지지층을 상대로 한 조사'를 비롯해 '송영길의 이미지에 대한 분석', '2021년 당대표 또는 2022년 승리를 위한 전략 도출' 등 단계로 세분화됐다. 박씨는 당시 컨설팅 비용으로 9570만원 상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연간 수입 한도가 1억5천만원인 송 전 대표 측 정치자금으로는 부담이 어렵다고 보고 다시 먹사연 자금을 쓰기로 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박씨 등은 이를 위해 컨설팅 계약서도 먹사연에서 진행한 용역인 것처럼 허위로 꾸민 것으로 조사됐다.
'먹고사는문제연구소(먹사연)' 압수수색하는 검찰. 연합뉴스먹사연은 결국 총 8690만원의 컨설팅 비용을 대납했고 얌전한고양이는 '송영길 의원 SNS 활동 분석', 'SYG 의원님 전략조사 결과 보고', 'SYG 좌담회 결과 보고', '송영길 의원님 소셜상황 보고서' 등의 컨설팅을 수행했다.
'SYG 의원님 전략조사 결과 보고'에는 '송영길에 대한 호감도를 재고해 지지율을 상승시킬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SYG 좌담회 결과 보고'에는 노동운동 등 과거 이력을 알리고 인간적인 멘트 이미지를 부각하는 소위 '킬러 콘텐츠'에 해당하는 정책적 이슈를 선점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 등이 각각 담겼다.
박씨의 구속영장에는 법원이 구속 사유로 지목한 증거인멸 정황도 구체적으로 담겼다. 검찰은 박씨가 먹사연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교체되거나 폐기된 데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은 박씨가 지난해 11월 먹사연 김모 사무국장에게 전화해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들을 전체적으로 정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김 국장은 박씨의 지시로 먹사연 관계자들이 사용하는 컴퓨터는 물론, 보관 중이던 2021년 당대표 경선 당시 사용했던 컴퓨터까지 모든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교체하고 기존 하드디스크를 폐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폐기된 자료에는 당대표 경선 기간의 지출내역을 포함해 먹사연이 2021년 기부금을 사용한 내역을 정리한 자료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이정근씨의 숨겨둔 휴대전화 존재가 드러나면서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박씨가 송 전 대표의 당대표 경선 과정으로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미리 알고 증거인멸을 벌였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범죄수익은닉 범행은 '중대범죄'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각 범행 과정에서 확인된 박씨의 주도적 역할을 고려하면 죄질이 매우 무겁다며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박씨 측은 검찰 조사 결과가 "사실과 다르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