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최근 경찰이 '소송전'까지 불사하며 시민사회의 집회·시위 틀어막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번번이 법원에 제동이 걸리면서 경찰의 대응이 '무리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퇴근길 집회·금속노조 행진 '불허'한 경찰…법원만 가면 '집회 허용'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박정대 부장판사)는 지난 11일 민주노총이 서울 용산경찰서의 옥외집회 금지통고 처분 효력을 멈춰달라고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앞서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전날(12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서문 맞은편에서 용산 대통령실 인근인 전쟁기념관 북문까지 행진하기로 했다. 경찰은 차량 소통 방해, 교통사고 등 안전사고 우려, 시민단체 간 마찰·충돌 우려 등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민주노총의 행진을 허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신청인(민주노총)이 오후 3시부터 오후 5시까지 행진할 기회를 상실함으로써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면서도 "행진을 전면적으로 혀용하는 경우 교통소통에 장애를 발생시키는 등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고 인용 취지를 밝혔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앞서 지난 4일에도 서울행정법원 제1부(판사 강동혁·서동민·정세영)가 '민주노총 2주 총파업'과 관련, 서울 남대문경찰서의 '퇴근길' 집회 금지 처분에 대해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민주노총은 지난 4·7·11일과 오는 14일 오후 5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는데, 이번에는 경찰이 평일 퇴근 시간대 차량 통행이 어렵고 시민들의 불편이 초래된다는 이유로 집회를 막아세우려 한 것이다.
법원이 민주노총의 손을 들자 경찰은 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항고했지만, 이번에는 지난 10일 고등법원조차 경찰의 항고를 기각했다.
헌재 '헌법 불합치'도 모르쇠로 일관…무분별한 금지통고 '집회 자유' 막는다
이처럼 경찰의 '집회·시위 틀어막기'는 윤석열 정권 초반부터 반복됐던 일이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서울 용산구로 옮기면서, 시민단체들은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부근, 용산구 전쟁기념관 등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 집회를 열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은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에서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11조 2항을 근거로 이들 집회를 금지하려 했다. 과거 청와대와 달리 대통령실 이전으로 집무실과 관저가 분리됐는데도 대통령 집무실을 관저로 취급한 것이다.
황진환 기자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고, 이후 법원에서도 헌재 판결을 토대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헌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뿐 아니라, 여전히 용산 대통령실 인근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실제로 인권단체 공권력감시대응팀이 지난 4월 대통령실 인근 집회를 신고했지만, 용산경찰서는 위의 조항을 근거로 금지 통고해 논란을 빚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변호사 "법원에서 이미 집무실을 막을 근거가 없다고 반복적으로 판단하는데 경찰은 최종 판단이 없으니까 모른다면서 금지 통고를 하고 있다"며 "작은 단체는 소송 비용을 지불할 돈이 없고 변호사도 없으니까 (집회를) 포기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법원의 결정도 무력화시키면서 (소송으로) 갈등과 논란을 만들고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집회 자체를 포기하도록 만들어 집회 자체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집시법 시행령 개정 '코 앞'…경찰 '집회 금지' 움직임 강화될까
집회·시위를 옥죄고 있는 경찰의 태도가 정부·여당과의 '코드 맞추기'라는 비판은 이미 수 차례 제기됐다. 건설노조 '1박2일' 집회 이후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불법집회'로 규정하자, 경찰은 6년 만에 '불법 집회·시위 해산 및 검거 훈련'을 재개하고 캡사이신 분사기를 현장에 투입해 논란을 불렀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 시민단체인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의 3년째 이어온 야간 문화제를 돌연 지난 5월부터 세 차례 연속 강제 해산하면서 경찰의 '강경'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더 나아가 경찰은 대통령실 인근 2개 도로를 집회·시위가 금지되는 '주요 도로'에 포함하는 집시법 시행령 개정까지 추진 중이다.
민주노총 '노동절대회' 행진 당시 모습. 연합뉴스
집시법 시행령 제12조에 따라 교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조건을 정해 주요 도로에서 열리는 집회·시위를 일부 제한할 수 있는데, 경찰이 그 대상을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차량 정체가 심한 주요 도로의 교통량을 조절하고자 마련된 해당 조항의 취지와 달리, 경찰이 용산 대통령실 인근 집회를 틀어막으려는 취지로 해당 조항을 악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이공 양홍석 변호사는 "헌재의 결정은 절대적 집회 금지 장소에 용산 대통령 집무실은 포함되지 않고, 대통령 관저라고 하더라도 그 주변 100m에서 일어나는 집회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위헌적이라는 것"이라며 "경찰이 용산 대통령실 인근 도로를 주요도로에 추가함으로써 사실상 우회적으로 집회를 제한하려고 시도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경찰이 시행령 개정을 추진해서 대통령실 주변에 있는 도로를 주요 도로에 넣고 집회를 금지하려는 시도들이 단순히 대통령의 경호 문제나 경찰 직무의 원활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향한 충성 경쟁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출퇴근 시간 교통 문제도 집회를 제한하거나 금지하지 않고 주최자들이 차선을 열어두게 한다거나 경찰이 우회도로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무조건적으로 집회를 제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