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옥룡동 일대 모습. 냉장고와 세탁기부터 책상, 책장 등 물에 젖은 각종 가전제품과 가구가 도로 가득 널려있었다. 김미성 기자"우리 집 밑층에 살던 아저씨가 다리가 불편하셨는데, 물에 떠내려가서 한참 찾았는데…"
16일 오후 충남 공주시 옥룡동에서 만난 주민 이모씨는 사흘간 이어진 폭우로 인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이웃의 이야기에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13일부터 16일 오후 5시까지 공주시에는 511㎜의 폭우가 쏟아졌고, 불어난 물에 휩쓸린 남성 1명은 심정지 상태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15일 오전 흙탕물로 변한 충남 공주시 옥룡동 일대. 소방대원이 보트를 타고 주민들을 구조하고 있다. 독자 제공당시 옥룡동 일대는 삽시간 만에 흙탕물이 흐르는 강으로 변했고, 소방당국은 고무보트를 타고 주민들을 구조했다.
주민의 발 빠른 대처로 목숨을 건진 사례도 있었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다는 이씨는 "당시 쉼터에 학생 3명과 교사 등 4명이 자고 있었다"며 "아이들은 문을 잠그고 자고 있었고, 바깥의 상황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아침에 상황을 알아챈 목사님이 쉼터로 가서 나오라고 난리를 안 쳤으면, 아무도 안 깼을 것"이라며 "선생님도 아이들을 살리려고 화장실 쪽문으로 들어가다 떨어져서 다쳤지만, 살아서 너무 다행"이라고 했다.
학생들을 대피시킨 이재원 목사는 "어제 오전 7시 30분에 나와 보니 상황이 심각해 아이들을 2층으로 대피시킨 뒤 중요한 물건 몇 개를 가지고 나온 사이, 단 30분 만에 성인 가슴 높이까지 물이 다 차버렸다"며 "여기서 25년을 살았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긴급히 대피해 목숨은 건졌지만,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리고 허망해하는 주민들도 곳곳에 보였다. 전날 이재민 대피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주민들은 날이 밝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수해 복구 중이었다.
물에 젖은 생활 도구들을 정리하던 주민 한혜숙씨는 "침수가 시작되자 얼마 안 돼 사람 키만큼 물이 차올라 거의 몸만 탈출했다"며 "당시 대피소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다리 건너 신관동 모텔로 피신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피소에 구호 물품을 받으러 갔는데,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거주하기 어려워 보여 모텔에 모시고 있다"며 "공주시에서는 안전 문자로 계속 대피하라고 했지만, 정작 본인들은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저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전 재산을 다 잃었다"며 "노후에 편안히 살기 위해 평생 일궈놓은 집을 한순간에 잃었는데, 새롭게 고치는 것도 문제고, 고친 걸 나중에 갚는 것도 문제"라며 한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주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에 털썩 앉아 있기도 했고, 눈이 붉어진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집을 바라보는 주민도 있었다.
옥룡동 일대에는 냉장고와 세탁기부터 책상, 책장 등 물에 젖은 각종 가전제품과 가구가 도로 가득 널려있었다.
건물 내부에도 1m까지 물이 차오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김미성 기자
도로 곳곳은 진흙으로 뒤덮였고, 곳곳에서 배수 지원이 이뤄지고 있었다. 집 내부에도 1m까지 물이 차오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126세대가 사는 빌라 3동이 모두 피해를 본 A 빌라의 통장 송향순씨는 "아침부터 지하에 있는 물을 퍼내도 퍼내도 감당이 안 된다"며 "지반이 푹 파여서 불안한 마음에 집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이어 "옆에 있는 금강물은 넘치지 않았는데, 빌라 근처 공영주차장 쪽에서 한 번, 또 다른 곳에서 한 번 하수관이 터지면서 땅속에서 분수처럼 물이 솟아올랐다"고 주장했다.
폭우로 인해 지반이 푹 파인 A 빌라 모습. 김미성 기자옥룡동의 요양원 주변에 물이 차면서 고립된 입소자 65명이 대피했고, 우성면의 또 다른 요양원 51명도 소방당국의 도움을 받아 대피가 이뤄졌다.
물은 사적 제12호이자 세계문화유산인 백제역사유적지구 내 공산성 바로 밑까지 차올랐다. 공산성 내 만하루는 지붕만 보이는 상태였다. 금서루 앞 토사도 유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