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탁 기자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사촌 정일선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현대비엔지스틸 창원공장에서 1년도 안 돼 3건의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안전보건 시스템 부실이 여과없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맞춰 손 써 놓은 공동대표가 경영책임자 외에도 산업안전보건책임자로 지정돼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어 정 씨는 법적 책임을 피할 가능성이 보이자 최소한 공식 사과라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일 고용노동부와 민주노총 경남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후 2시 57분쯤 경남 창원에 있는 현대비엔지스틸 창원공장에서 무게 300kg에 달하는 철제 테이블이 소속 노동자 2명을 덮쳤다. 이로 인해 당시 철제 테이블을 보수 작업 중이던 50대 1명은 사망하고 1명은 늑골이 부서지는 등 크게 다쳤다.
지난해 10월 4일 새벽 4시쯤 이곳 현대비엔지스틸 창원공장에서 받침대를 이탈한 11톤 무게의 코인이 넘어지면서 60대 협력업체 노동자가 깔려 숨졌다. 지난해 9월 16일 오전 9시 30분쯤에도 이곳에서 크레인 점검 도중 크레인에 끼여 60대 협력업체 노동자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기도 했다.
이처럼 현대비엔지스틸 창원공장에서 10개월 만에 3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2명이 다친 것으로 공식 집계된 상황이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로 철강 등을 만드는 이곳 사업장은 상시근로자가 500명 가까이 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며, 현대자동차 회장 정의선 씨의 사촌인 정일선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현대비엔지스틸 사내 중대재해 발생 현장. 민주노총 경남본부 제공고용노동부 부산지청 광역중대재해수사과는 지난해 9월 이곳 사업장에서 첫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시점부터 최근까지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를 수사 중으로 경영책임자 등에게 범죄 혐의가 있다고 검찰에 송치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까지 이어진 중대재해 사망사고와 여러 건의 크레인 고장 등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고 이행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씨는 법적 책임을 피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법 시행에 맞춰 현대비엔지스틸은 같은해 3월 이사회를 열어 정 씨의 단독 대표이사 체제에서 이선우 공동대표 이사 체제로 바꿨다. 이 대표는 정 씨와 같은 경영책임자 외에도 중대재해법상 안전보건최고책임자 직책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장에서 사망자 1명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 있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수사 대상자 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수사 중인 이유로 말하기 어렵다"며 "곧 송치하면 알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부는 지난해 2건의 중대재해 건은 곧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노조는 이를 두고 정 씨가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겠지만 대표로서 최소한 고인과 직원들에게 사과를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대비엔지스틸 노조 관계자는 "정일선 대표는 단 한번도 유족은 물론 임직원에게 지난해부터 발생한 중대재해 건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며 "그를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김병훈 민주노총 경남본부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정 대표는 공개적으로 임직원에게 사과와 함께 중대재해 재발 방지 대책을 선언하고 구체적으로 안전보건시스템 방침을 세워야 한다"며 "실질적인 경영책임자로서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했다.
현대비엔지스틸 사측은 이와 관련해 말을 아끼고 있다. 사측 관계자는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