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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단독]미사일 내열 재료 국산화 성공?…"사실 수입산 박스갈이" 폭로 파문 (계속) |
미사일발사체 내열 재료에 사용되는 리오셀계 탄소 직물에 대한 국산화가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연구과정에서 수입산을 보고용으로 둔갑시켰다는 해당업체 출신 복수 관계자의 폭로가 나왔다.
국방과학연구소(ADD)의 국가보조금을 받은 연구 업체 내부에서 허위 보고를 했다는 내용으로, 사실로 드러날 경우 '방산 비리'라는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벨라루스 직물로 직접 박스갈이했다" 내부 폭로
1일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국방과학연구소(이하 국과연)는 지난 2017년부터 약 4년간 국내 대기업 H사와 전북 전주시 덕진구에 소재했던 D 연구 업체에 '리오셀 탄소섬유 및 직물용 연속식 치구(흑연화 열처리 설비) 설계'와 '리오셀 탄소섬유 직물 개발' 연구 용역을 맡겼다.
복수의 전문가에 따르면 그동안 국내에서는 섭씨 30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뎌야 하는 미사일발사체 추진기관에 벨라루스산 폭 55cm 규격의 '레이온' 탄소 직물을 수입해 사용해 왔다.
이런 가운데 '레이온' 탄소 직물이 공해를 유발하는 문제 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산화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재료의 개발, 여기에 스펙까지 키운 폭 1m 규격의 '리오셀' 탄소 직물 연구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초고온 단열재 개발에 29억 원이 투입된 연구의 핵심은 흑연화 처리를 위한 설비를 만들고, 이 장비를 통해 폭 1M 리오셀계 탄소 직물을 개발해 1식으로 보고 및 납품하는 것이다.
2017년 12월 26일부터 D 업체는 국과연으로부터 사업비를 받아 연구를 진행했고 2019년 말 국과연에 자체적으로 만들었다며 탄소 직물 박스가 담긴 사진과 함께 납품을 완료한 것으로 최종 보고했다.
다른 업체가 직물을 받아 다음 과업을 거쳐 최종 성능 평가까지 이어지는 계획의 중요한 보고였다.
주식회사 D연구 업체가 2019년 12월 H업체와 국방과학연구소에 납품 처리가 완료됐다는 제품 보관증, 사진 왼쪽은 나무 상자 20박스와 20개 롤로 감긴 탄소 직물이 찍힌 보고용 사진. 오른쪽 사진은 제품 보관증에 대한 구체적인 탄소직물의 리스트가 1번부터 20번까지로 구분되어 있는 리스트로 무게와 길이 별로 세분화되어 있으며 총 무게는 427.4kg 으로 적혀 있다. CBS노컷뉴스 단독 입수 자료D 업체에서 근무한 전 관계자 A씨는 "지난 2019년 12월 27일 H사와 국방과학연구소에 보고할 당시 연구에 성공했다고 알려진 리오셀 탄소 직물을 박스에 담아놓은 것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A씨는 "N업체를 통해 국내로 들여오는 벨라루스산 레이온 탄소 직물을 D업체 로고가 새겨진 리오셀 탄소직물 개발 완료 보고용 박스에 옮긴 뒤 사진을 찍어 보고했고 이후 벨라루스 탄소 직물을 N업체에 다시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미사일발사체의 경우 내열 소재는 3000도 이상의 고열에서 버틸 수 있는 소재가 필요한데, 국내에서는 이미 벨라루스산 레이온 탄소 직물을 전량 수입해 의존하고 있다.
A씨는 "쉽게 말해 수입이 아닌, 국산화를 위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었다"며 "그런데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자 기존에 수입해 오던 레이온 탄소 직물을 리오셀 탄소 직물로 개발이 된 것처럼 속이고 사진을 찍어 허위 보고가 이뤄진 것"이라고 폭로했다.
'박스 갈이' 속내…거듭된 실패와 다가오는 보고 시간
D 업체가 리오셀 탄소 직물 국산화 연구 과제를 기존 사용하던 레이온 탄소 직물 즉 수입산 직물로 대체한 '간 큰' 배경에는 거듭된 연구 실패가 주요 원인으로 언급됐다.
과제에 참여한 또 다른 D 업체 전 관계자 B씨는 구체적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B씨는 "D 업체가 2017년부터 국과연 리오셀 탄소 직물 국산화 공모에 선정돼 연구를 이어갔다"면서 "3년 동안 연구 목표를 달성할 만큼의 진전이 없었고, 해결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연구 특성상 초기 값이 중요한데, 공정별로 중요한 기술을 적용해도 처음부터 목표 직물은 나오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최초 ASTM 규격에 적합하도록 연구개발을 의뢰했다. ASTM은 미국시험재료학회에서 제정한 규격으로, 섬유를 포함해 건설과 환경 등 전 세계 다양한 산업체들이 ASTM 표준규격을 선택하고 있다.
D업체 연구계획서의 연구 목표 양. CBS노컷뉴스 단독 입수 자료B씨는 "D업체 연구계획서 상 ASTM규격에 따라 폭 100cm 리오셀계 탄소섬유 직물 400kg, 편물 200kg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했다"면서 "하지만 ASTM 규격에 따라 보고 당시에 2200도 이상에서 폭 100cm를 넘기며 흑연화 작업을 통해 탄소 함유율이 99.5%를 넘기는 결과물은 얻지 못했다. 이는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것이고, 특히 연속적으로 일정량을 뽑아낸다는 것은 무리였다"고 말했다.
이어 "계획된 보고 일정을 맞추기 위해 이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말한 뒤 "기술도 시간도 부족해 결국 어처구니없게도 벨라루스 산을 우선 보고용으로 썼으며, 시간을 벌어 개발을 더 해보다가 폭과 중량, 탄소함유율이 들쭉날쭉한 결과물을 H사에 보냈고, 이후 성능평가가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지난 2021년 7월 세계 최초로 연속식 초고온 열처리 기술을 적용해 리오셀계 탄소 직물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보도자료를 보면 국내 기술력의 부재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술 개발은 미사일 발사체 및 유도무기체계의 추진기관에 핵심 요소인 내열재료를 국내 기술력으로 확보한 성과라고 자평했고 국내 주요 매체와 국방일보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국산화의 첫발은 물론 해외 수출의 단초 제공도 시사했다고 알려졌다.
내부 폭로인데…업체 대표와 국과연 "모른다"
전북의 한 대학교 공과대학 교수인 D업체 대표는 2019년 말 보고 당시에 나무 상자 20개와 탄소 직물 20롤, 427.4kg의 중량에 맞춰 흑연화율 99.5%의 폭 1m 리오셀 탄소 직물 개발에 성공도 했고 납품이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벨라루스 박스갈이 폭로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답했다.
D업체 대표는 "벨라루스산 탄소 직물을 대체하기 위한 연구이고 경쟁사가 되는 곳이기에 더더욱이 벨라루스산 직물을 받을리 만무하다"면서도 "왜 당시 공장에 벨라루스에서 탄소 직물이 왔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어 "연구가 초기부터 잘 된 건 아니지만 2019년 보고 당시 어느 정도 탄소 직물이 설비를 통해 나왔고 국과연도 어느 정도 만족하고 추가 사항을 요구하기도 해 연구를 이어 나갔다"고 해명했다.
국과연도 D업체 대표와 비슷한 입장이다. 국과연은 폭로의 핵심인 '벨라루스산 탄소 직물의 박스갈이 의혹'에 대해 "처음 들은 이야기이며 해당 사항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수준으로 답하는 데 그쳤다.
그러면서도 "폭 1m, 탄소함유율 99.5%라는 탄소 직물 제조에 필요한 핵심 기술 획득이 최종 목표였고, 보고 직후 서류 등을 통해 확인했다"면서 "현재 D업체의 김제공장에서 당시 납품된 1식의 탄소직물 재고를 확인했다"고 덧붙였다.